미 오바마 인수위 합류 최초 한국계 여성 오·드·리·최
미 오바마 인수위 합류 최초 한국계 여성 오·드·리·최
  • 홍준철 기자
  • 입력 2008-12-04 15:22
  • 승인 2008.12.04 15:22
  • 호수 762
  • 6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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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미 월간지 ‘주목 해야 할 100인 선정’
이명박 정부의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과 인맥 찾기가 한창인 가운데 단비와 같은 존재가 나타났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오드리 최’(41, 한국인명 경옥)로 불리는 한국계 여성이다. 오드리 최는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인수위원회에 합류해 향후 각료 인선이 끝날 경우 경제분야에서 요직을 맡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최 씨는 미국인과 결혼한 후에도 성을 그대로 지키는 등 남다른 애국심 소유자로 알려져 이명박 정부를 들뜨게 만들고 있다. 또한 하버드대를 졸업한 수재인 그는 엘 고어 부통령 국내 정책 자문위를 거쳐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인수위 참여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계 여성 최초로 오바마 행정부에 중용될 ‘오드리 최’에 대해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6일 오마바 당선인 공식 웹사이트가 발표한 인수위 조직도에서 한국계 여성 이름이 올랐다. ‘대통령 비서실 인수위’ 위원 21명 가운데 최씨가 비서실 경제자문위원회(CEA) 인수팀 팀장 2명 가운데 1명으로 지목된 것이다. ‘정부 점검팀’에서 미셀졸린과 CEA 공동 인수팀장을 맡았다.


30세 전후의 나이에 앨 고어 부통령 경제 자문

그 인선 배경으로 1998년부터 1년 동안 앨 고어 당시 부통령의 국내 정책 자문위원을 99년부터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2001년 1월까지 CEA에서 일한 경험이 주효했다.

당시 업무는 경제자문위원회 회장이 백악관 경제 정책입안 시 내놓을 의제를 개발하고 그에 따라 체계적으로 입장을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또 경제 정책에 관한 대 언론 설명과 해외 경제회의에 참석하는 미국 경제 대표들의 관리도 최씨 몫이었다.

최씨가 경제자문위에서 다루는 예산도 연간 400만 달러의 큰 규모로 클린턴 행정부에서 막대한 역할을 맡았다. 특히 250쪽에 달하는 대통령 연례 경제 보고서를 작성한 뒤 이를 취재진에게 설명하는 역할도 쉽지 않은 업무였다. 불과 30세 전후의 나이에 겪은 이 경험은 최씨로 하여금 2000년 미 월간지 ‘워싱터니언(Washingtonian)’이 뽑은 ‘미국이 주목해야 할 100인’에 한국 여성으로 유일하게 이름을 날리는 계기가 됐다.

67년 뉴욕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비교문학 전공)을 졸업할 때까지 최씨는 뉴요커로 살았다. 학부 과정에서 그는 독일 문학과 프랑스 문학에 열중하면서 대학신문사인 ‘하버드 크림슨’의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발돼 독일 괴팅켄의 게오르그 아우구스트 대학에서 동.서독의 여성주의 문학을 공부했다. 88~89년엔 동독이 무너지고 독일의 통일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남편 외교팀 최씨는 경제팀 핵심 브레인

그는 훗날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학보와 인터뷰에서 “당시 정치 경제 정책 결정이 개인의 권리와 기회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 엄청난 인상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자신의 인생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회고했다.

이후 경제 전문지 월스트리트 저널(WSJ)과 다우존스에서 기자로 활동했고, 91년부터 5년간 독일 특파원을 지냈다. 뒤셀도르프에 월스트리트저널 지국을 설립한 뒤 지국장을 맡는 등 역량을 인정받기도 했다.

최씨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96년 백악관 연구원(Fellow)이 되면서 부터다. 백악관이 민간부문에서 일하는 30대 10여명에게 1년동안 행정부 정책수립 과정을 체험케 하는 프로그램 수혜자로 선발된 것.

최씨는 상무부 연방통신위원회(FCC)에서 정보통신법 수립 과정에 참여했다. FCC 위원장 특보로도 활동했던 그는 이어 부통령실과 CEA에서 일하게 된다.

2000년에 리처드 홀브룩 당시 유엔 주재 미국대사를 보좌하던 외교관 로버트 캐머런 오르(46)와 결혼했다. 하지만 최 씨는 남편 성을 따르지 않고 그대로 지키면서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다.

홀브룩은 이번 대선 때 오바마의 외교정책팀에서 활동했으며 오마바 행정부에서 중용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미 정가에서는 홀브록이 오바마 행정부에 입성한다면 남편인 캐머런 오르씨와 최씨가 외교와 경제팀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대두되고 있다.


가장 존경하는 인사는 ‘어머니’

2001년에 최씨는 공화당 소속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하자 백악관을 나와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에 진학해 경제.경영 분야를 공부했다. 현직은 대형 투자은행(IB) 모건 스탠리에서 여성 경제 지도자를 양성하고 소기업 대출 기회를 확대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최씨에게 영향을 많이 준 어머니 최숙렬(69)씨는 미국 내 유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평양에서 자란 그는 일본의 역사왜곡 논란을 불러일으킨 ‘요코 이야기’를 읽고 분노를 느껴 대항 소설 ‘떠나볼낼 수 없는 세월(Year of impossible Goodbyes)’를 썼다. 45년 광복 직후 평양에서 열 살 소녀가 동생과 함께 38선을넘기까지 고난의 과정을 그린 이 소설엔 일제시대에 일본 경찰이 조선인들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하고 처녀들을 종군 위안부로 끌어가는 장면 등을 담고 있다.

어머니는 광복 때 월남했다가 6.25전쟁이 발발후 미국으로 유학 뉴욕대학교 대학원에 유학중인 최능호씨를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1980년 남편과 사별한 뒤 최씨와 최씨의 언니를 홀몸으로 키우면서 두 딸을 모두 하버드대학에 보낼 정도로 반듯하게 키워냈다.

한편 ‘요코 이야기’뿐만아니라 ‘할머니와 피크닉’, ‘윤미와 할머니의 여행’, ‘최고 언니’ 등 여러 편의 동화도 써 전국여성출판문화상, 전국 도서관협회상, 최우수 청소년 서적상 등을 받았다.

최씨가 성을 유지하고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을 같고 있는 저간에는 어머니 최숙렬씨의 남다른 조국애가 한몫한 셈이다. 최씨 역시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인사로 주저없이 ‘어머니’를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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