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 능선엔 적이 없다> 펴낸 신·경·식 전 의원 회고록 공개
<7부 능선엔 적이 없다> 펴낸 신·경·식 전 의원 회고록 공개
  • 오경섭 기자
  • 입력 2008-11-06 15:20
  • 승인 2008.11.06 15:20
  • 호수 758
  • 62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DJ, 정보기관 동원 여소야대 바꾸려 의원 빼가”
신경식 전 의원

4년씩 네 번, 16년의 국회의원과 다섯 번의 비서실장.

신경식(70세) 전 한나라당 의원이 정치현장의 생생한 기록을 담은 자서전 <7부 능선엔 적이 없다(동아일보사 발행)>를 펴냈다.

10년의 신문기자 생활을 거쳐 1973년 정계에 입문한 그는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정일권 전 국회의장 등 한국 최고 정치 지도자들의 비서실장만 다섯 번 역임했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편은 아니었지만 늘 주요한 자리에서 역할을 했다. 신 전 의원은 이유에 대해 “10부 정상에 오르는 길은 험하고 위험하다. 7부 능선엔 발목을 잡는 적이 없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관운도 따라 주었지만,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정상에 오르려 무리하게 몸부림치지 않는 대신 중도를 잃지 않고 그때그때 주어진 책무에 최선을 다한 결과란 것이다. 신경식 전 의원의 회고록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크고 작은 정치적 사건과 그 주변에서 일어난 일화를 만날 수 있다. 다음은 회고록의 주요 내용.

제14대 대통령 취임식 전날인 1993년 2월 24일, 신경식 전 의원은 YS를 롯데호텔 35층 스위트룸에서 만났다. YS는 저녁 식사 후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니 행정부에서 일 좀 맡으레이” 신 전 의원은 직감적으로 장관직을 맡긴다는 뜻임을 알았다. 그러나 다음날 정작 문민정부 내각 발표에 신 전의원은 제외됐다. 이유가 뭘까?


■ YS 문민정부 개각1호

당초 YS의 메모지에는 ‘총무처 신경식, 주 유엔대사 최창윤’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박관용 대통령 비서실장이 “최창윤 실장은 고생도 많이 했는데 자리를 하나 줘야 되지 않습니까”라고 보고했고, 곁에 있던 공보수석까지 거들었다. 그러자 YS는 주 유엔대사 명단에서 ‘최창윤’이란 이름을 지웠다. 신경식 총무처장관이 최 장관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문민정부 개각 1호인 셈이었다.


■‘칼국수’ YS의 상도동 단골 메뉴는 시래기 국밥

YS는 집권시절 청와대 ‘칼국수’로 유명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될 때까지 YS집의 주 메뉴는 ‘시래기 국밥’이었다. 신 전 의원은 YS가 3당 합당을 주도해 후보로 정해진 그날까지 일요일 외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마다 상도동으로 출근했다.

아침은 부엌 옆에 있는 식당에서 기자들과 시래기국밥으로 때웠는데 거제도 멸치에 된장을 풀어놓은 그 시래기국은 소문이 났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신 전 의원은 “대통령이 될 때까지 9선 국회의원 동안 YS집에서 끓여낸 시래기 국밥은 아마 몇 만 그릇도 넘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 YS와 박철언 장관의 신경전

3당 통합 직후인 1990년 3월 YS는 소련을 방문 고르바초프와 단독 면담하고, 한소 국교 정상화를 합의한다. 소외감을 느낀 방문단의 박철언 장관은 “노태우 대통령의 친서를 내가 가지고 왔다”며 YS의 면담은 정식 국가 사절단 자격이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박 장관은 귀국 후에도 “소련 방문 때 숨겨진 일을 공개하면 YS의 정치생명은 끝난다”며 YS를 공격한다. 이에 격노한 YS는 박 장관 퇴진을 요구했고 3일 후 노태우 대통령은 박 장관의 사표를 수리한다. 그리고 그해 9월 30일 한소 수교가 체결됐다 신경식 전 의원은 “YS의 소련 방문이 밑거름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 YS, 이회창에게 이인제 방문 권유

신경식 전 의원이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 비서실장을 맡고 있던 1997년 8월 27일, 이인제 경기지사의 출마설이 파다할 무렵 YS는 청와대에서 이회창 후보와 자리를 같이했다. 이 자리에서 YS는 “이인제 지사를 직접 찾아가 출마를 만류할 것”을 권유했다.

YS는 자신이 민자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태준 최고위원의 협조를 얻기 위해 그의 고향집을 찾아갔던 일화를 애기했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는 이인제 지사를 찾아가지 않았다. 이인제 지사는 탈당하고 11월 4일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후보로 나섰다.


■ 이회창의 소신과 눈물

이회창 선진당 총재가 문민정부 총리를 맡던 1994년 4월 하순, 늘 삐걱대던 YS와 이 총리는 청와대 산하 통일안보조정회의체 결성의 총리 인준 여부와 관련 갈등이 폭발했다. YS는 이 총리를 청와대로 불러 “지금 당장 사표를 내지 않으면 대통령으로서 헌법에 따라 해임조치 하겠다”고호통을 쳤다. 이 총리는 청와대가 발표하기 전에 언론에 미리 “소신껏 사표를 냈다”고 알렸다. 신 전 의원은 “해임이었는지 소신이었는지 양쪽의 말이 다르다”고 했다.

1997년 이회창 후보는 YS에게 “탈당하라”고 요구한 뒤 충북 음성 꽃동네를 찾았다. 20대 장애우 여성이 해맑게 웃으며 ‘나는 행복합니다’란 자작시를 낭송하자 이 총재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 DJ의 한나라당 의원 빼가기

1998년 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DJ는 여소야대를 바꾸기 위해 야당(한나라당)의원을 빼가기 시작했다. 이회창 명예총재가 다시 총재로 돌아온 그 시기에 하루 3-4명씩 집권 여당 쪽으로 갔다. 서울출신 K의원은 밤중에 이 총재 집으로 찾아왔다. 큰 생산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K의원은 은행에서 융자한 돈이 많았다. 그런데 갑자기 은행으로부터 부채를 상환하지 않으면 부도 처리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집권당에 입당하면 무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 쪽으로 간다고 했다.

중진급 Q의원은 정보기관원이 좀 보자고 해 단둘이 만났는데 큼직한 보따리를 풀어 놓더니 “이것이 모두 의원님에 관한 비밀자료입니다”했다. 그 한마디에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국민회의 쪽으로 갔다고 한다. 신 전 의원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이 실감 났다”고 회고했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정확한 선거 판세 분석

1996년 4월 15대 총선, 신 전의원의 선거구인 충청도에는 김종필 전 총리의 자민련 바람이 거셌다. 신한국당 후보로 나선 신 전 의원에게 한국갤럽의 최시중(현 방송통신위원장)회장이 전화를 했다. 최 회장은 여론조사 결과 자민련 후보와 막상막하라며 “큰일 났어. 밤새워 뛰어야겠던데”라고 우려했다.

최 회장과는 신문사는 달랐지만 같은 해 견습 기자로 시작해 친분이 두터웠다. 신 전 의원은 상대후보가 지역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개표결과 가까스로 당선했다. 신 전 의원은 “최시중 회장 말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 감방 입구에 자해 대비용 산소호흡기 비치

2004년 초 신경식 전 의원은 검찰의 한나라당 대선자금 수사로 구속됐다. 수감 직전 동갑내기로 가깝게 지내던 고 안상영 부산시장이 검찰조사를 받던 도중 자살했다. 신 전 의원은 일기에 ‘안 시장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이제 와서 범법자로 몰려 10억원을 추징당해 남은 생을 수치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나’고 기록했다. 그러자 서울구치소 부소장은 이 일기를 체크해 상부에 보고했다.

그리고 그 날 밤부터 구치소 측은 신 전의원의 감방 입구 교도관실에 산소 호흡기를 비치해 놓았다. 감방 안에서는 자살할 때 대개 목을 매기 때문에 자해할 낌새가 보이면 산소 호흡기를 비치해 놓는다. 담당교도관은 “신 의원님, 저 산소 마스크 절대 쓰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했다. 신경식 전 의원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으로 당혹스러운 나날이었다”고 회고했다.


■ 부정선수 시비 축구 대항전이 역사를 바꾼 5.16

5·16하루 전인 1961년 5월 15일, 1군 창설 기념 전 부대 체육대회가 1군 사령부 연병장에서 열렸다. 이날 민기식 2군단장은 “군사령부가 서울에서 일류축구선수를 데리고 왔다”며 이들을 제외시킬 것을 이한림 군 사령관에게 항의한다. 그러나 이 사령관은 거부했고, 이에 격분한 민장군은 2군단 선수와 장병을 모두 철수시킨 후, 자신은 참모들과 원주시내 중국집에서 술에 만취해 여관에서 잤다.

다음날 아침 7시경 민 사령관은 박정희 소장의 5.16 쿠데타 소식을 보고받았다. 민 장군은 이한림 사령관으로부터 쿠데타 군을 분쇄하라는 명령을 받지만 이를 거부한다. 그리고 윤보선 대통령의 명령마저 거부한다. 신 전 의원은 “부정선수가 낀 축구대항전이 역사를 바꾼 셈”이라고 밝혔다.


■ 요정<오진암> 에피소드

신경식 전 의원의 회고록에는 서울 종로의 유명한 요정<오진암>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있다. 기자 초년병 시절 <오진암>에서의 회식자리였다. 신 전 의원은 요정 아가씨들이 큰 절을 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머리를 바닥에 대고 맞절을 했다. 신 전 의원은 “충청도 산골에서 자라나 가까스로 대학을 마치고 취직해 몇 달이 되지 않았던 나는 여인들이 정중하게 큰 절을 하는데 가만히 앉아있기가 송구스럽고 더구나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신경식 프로필

▶ 충북 청원군 출생
▶ 청주고, 고려대 문과대 영문과 졸업
▶ 대한일보사 정치부장
▶ 제 13,14,15,16대 국회의원(4선)
▶ 정무장관
▶ 한나라당 사무총장
▶ 한나라당 대통령선거기획단장
▶ 국회 문화체육공보 위원장
▶ YS, 이회창 총재, 정일권 전 국회의장 비서실장
▶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변인
▶ 한나라당 상임고문

오경섭 기자 kbswave@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