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벌집을 쑤신 듯 우왕좌왕하고 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정계개편의 급류 속에 ‘탈당’과 ‘당 잔류’라는 결단을 현역 의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당내 그룹을 양분해온 김근태 의장 그룹과 정동영 전의장 그룹도 저마다의 주판알을 튀기며 손익계산에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최근의 상황은 기존 구도를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여권 관계자들조차 쉽게 전망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새롭게 재편되는 여권 내 그룹 분화를 점검했다.
올 초 강봉균 의원 등 신당파 의원들이 예상한 ‘탈당파’ 수는 50~60여명은 족히 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하지만 2월 전대에 대해 중앙위의 결정이 내려지자 그 수는 30~40여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여권 탈당파의 한 보좌진은 “의원들이 너무 생각이 많다”면서 “이대로 가면 민주당 탈당파와 합쳐야 겨우 교섭단체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올 정도”라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이처럼 탈당파의 세가 현저하게 줄어든 데에는 여론의 동향이 심상치 않은 데다 마땅한 대선 주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큰 이유이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당내 그룹을 양분해 온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의장의 기싸움이 근저에 깔려 있다.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으로 당내 최대 계파를 이끌어온 정 전의장은 지난 해 전대에서 김 의장에게 승리하며 다시 한 번 기선 제압에 성공했지만, 지방선거 패배 이후 기세가 많이 꺾였다는 평가다.
한 때 친정 성향으로 비판받았던 ‘국민참여 1219’는 사실상 분열된 상태로 정청래 의원 정도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역시 친 정동영 그룹으로 평가받아온 ‘바른정치실천연구회’도 35명 안팎의 현역 의원들이 회원으로 몸담고 있지만 회원 전체를 친정그룹으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적지 않다.
이곳 핵심 회원이었던 신기남 전의장은 ‘신진보연대’를 이끌며 당 사수를 강하게 주장하는 입장이고, 천정배 의원은 이미 탈당 대열에 합류했다. 의원연구단체 성격상 정치 성향이나 계파와는 무관한 인사들도 10여명에 이른다.
김 의장의 강력한 지원군인 ‘민주평화국민연대’(약칭 민평련, 구 국민정치연구회)와 겹치기 가입한 인사만 해도 강창일 오영식 임종석 최용규 의원 등 최소한 7∼8명이다.
탈당파들이 예상하는 인원수가 계속해서 줄고 있는 것도 정 전의장의 망설임에 기인한 바가 크다.
현재 정 전의장의 확실한 직계로 구분되는 현역 의원은 20여명 안팎으로 분류된다. 이 중 지역구 의원은 채수찬 최규식 이강래 전병헌 정청래 의원 정도 뿐이고 나머지 상당수는 비례대표 의원이다.
한편 탈당파를 맹비난해온 김 의장은 일단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자신의 직계그룹으로 분류되는 민평연이 40여명에 육박하는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데다 최근에는 ‘재야파’인 장영달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김 의장의 캠프에서 조직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해온 인사는 “기간당원제에서 기초당원제로 변경한 것도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김 의장측이 ‘통합신당’에는 찬성하면서도 2월 전대 사수를 선택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김 의장측은 전대를 통해
당의 기득권을 획득함과 동시에 차기 대권에 대한 꿈도 재점화할 계획이다.
정 전의장과 김 의장의 계속되는 암투 속에 당 사수파의 중심인 친노그룹은 최대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사수파는 친노그룹인 ‘의정연구센터’(약칭 의정연)와 ‘참여정치실천연대’(약칭 참정연), 그리고 신 전의장의 ‘신진보연대’가 기본 줄기를 이루고 있다. 상대적으로 성격이 분명한 그룹들이지만 최근 급류속에서 걸러지는 양상이다.
‘의정연’에선 이계안 의원이 탈당했고 강봉균 의원도 조만간 탈당이 점쳐진다. ‘참정연’ 역시 탈당파 그룹의 몇몇 의원들이 몸을 담고 있다
이광재 이화영 백원우 김혁규 의원이 중심이 된 ‘의정연’은 15명 안팎이고 이광철 의원의 ‘참정연’은 20여명 안팎, ‘신진보연대’는 5명 내외로 구성돼 있다. 2월 전대에서 밀리는 쪽이 탈당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김승현 okkdol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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