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부활’ 깃발 든 정·세·균 신임 민주당 대표
‘민주당 부활’ 깃발 든 정·세·균 신임 민주당 대표
  • 홍준철 기자
  • 입력 2008-07-24 14:24
  • 승인 2008.07.24 14:24
  • 호수 743
  • 6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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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공룡 여당 의회권력 맞설 화합형 리더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소수당의 한계를 딛고 거대 집권 여당을 견제해야하는 무거운 짐을 안고 있다. 박희태 신임 한나라당 대표와 환담하고 있는 정 대표.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지난 6일 전당대회에서 정대철-추미애 연대에 맞서 1차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해 당선됐다. 정 대표는 경선 내내 ‘안정과 통합의 리더십’을 강조해 당원들의 표심을 얻었다. 하지만 민주당 당 대표 앞날은 밝지만은 않다. 지난 2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물리적 결합을 이뤘지만 화학적 결합은 이루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 대표는 당내에서 계파 간 갈등을 잠재우고 당밖으로는 거대 공룡 여당인 한나라당과 정국 현안을 풀어야 하는 등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소수당의 야당 대표라는 한계를 딛고 집권 여당을 견제하고 당 분열로 치달을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을 풀어야 하는 정 대표가 과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지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당 대표로 선출된 정 대표는 수락연설을 통해 “국민들이 민주당을 대안으로 인정해 줄 때까지 국민을 향한 변화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겠다”며 대표 선거 당시 제시한 ‘뉴민주당의 비전과 플랜’을 통해 “당의 쇄신과 발전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암초 계파갈등

하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창출했던 전통 지지지층의 와해 등으로 모처럼 찾아온 정국 주도권조차 손아귀에 쥐지 못할 만큼 대선과 총선 참패 이후 민주당의 세력 약화는 몰라보게 왜소해졌다.

그래서 전통적인 지지 세력을 복원하는 것이 민주당의 당면과제라는 말에 이견이 없다. 참여정부 당시 산자부 장관과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당의장을 두 차례나 지낸 정 대표의 어깨가 무거워 보이는 이유다.

민주당은 당 대표를 선출하기 전 열린우리당계가 지지한 원혜영 의원이 원내대표가 됐다. 이어 벌어진 전당대회에서는 열린우리당 시절 당 의장과 참여정부 때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 대표가 당 대표로 선출됐다.

당초 정대철-추미애 진영은 1차 투표에서 정 후보가 과반 이상 표를 얻지 못할 경우 2위를 지원해 ‘정세균 대세론’을 넘자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정 후보는 결선투표를 허용하지 않고 ‘정-추 연대’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

정 대표는 구민주계와 열린우리당계 양쪽 진영의 골 고른 지지를 받아 대표가 됐다. 압도적인 정 대표의 승리와는 달리 당장 통합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단초는 국회 부의장 선출이 됐다.

지난주 국회 부의장 선거에서 구 민주계가 지지한 박상천 의원이 낙마하고 열린우리당계가 민 문희상 의원이 당선되면서 계파 간 갈등이 폭발 직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당초 구 민주당 측에서는 박 의원을 합의 추대하려고 했지만 뒤늦게 뛰어든 문 의원이 당선돼 구 민주계는 소수파의 설움을 톡톡히 절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구 민주계에서는 원내 대표와 당 대표에 이어 국회 부의장 선출까지 핵심적인 요직에 열린우리당 인사들로 채워졌다며 ‘도로 열린우리당’이라고 강하게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여야정 원탁회의 제의 강한 야당 선언

특히 구 민주계 일각에서는 ‘탈당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로 정 대표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금명간 있을 당직자 구조조정 역시 화약고가 될 수 있다. 반 이상 당직자를 줄여야 하는 민주당 입장에서 특정 계파를 배제하는 식으로 단행될 경우 민주당이 쪼개질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정 대표로서는 최악의 상황인 셈이다.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다시 민주당으로 통합하는 데 지난한 과정을 겪은 바 있다. 다시 민주당이 분열될 경우 정 대표로서는 당 대표직이 오히려 향후 정치 인생에 오점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의 한 측근은 “정 대표 역시 큰 꿈을 꾸고 있는 분이다.

지난 대통령선거 경선 당시에도 전국적으로 조직을 꾸리고 출마 준비를 했다”며 “출마 선언을 두고 깊게 고민하다 차기를 위해 포기했지만 전국 조직은 아직 살아 있다”고 회고했다.

정 대표의 큰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 당내 화합과 안정은 반드시 이뤄야만 한다. 당내가 계파 간 갈등으로 어수선하지만 당밖 상황은 더 암울하다. 소수 야당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152석이던 한나라당 의석수는 171석으로 늘어났다. 한나라당은 지난 16일 친박연대 홍사덕, 친박 무소속연대 김무성, 무소속 강길부 의원 등 19명의 복당 또는 입당을 승인했다.


기업인 출신 경제통 화합형 투사

친박 인사들에 대한 추가 복당이나 입당이 이뤄질 경우 한나라당은 최대 180석이 넘는 거대 공룡 여당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 자유선진당이 동조할 경우 개헌이 가능한 200석 확보도 가능하다.

이 정도면 정 대표가 정국 주도권을 갖고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이에 정 대표가 수락연설문에서 여야정 원탁회의를 들고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아울러 정 대표는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 폭력 사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 경제팀 문책, 언론탄압 중단, 가축전염예방법 개정 등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민주당 일각에서는 소수 야당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당장 FTA 비준에 있어 정 대표는 선대책 마련 후 비준안 통과를 주장하고 있다. 특히나 농업분야나 피해가 반발할 수 있는 산업에 대해서는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FTA 비준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작심하고 국회에서 통과시킬 경우 물리적으로 막는 일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일각에서는 ‘길거리 정치뿐이 할 일이 없다’는 자조 섞인 반응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소수 야당인데다 국민들의 시각이 민주당을 대안정당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도 정 대표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으로 분화되고 지지세력이 분열을 가져와 급기야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참패했다. 참여정부의 공과를 그대로 안고 있는 정 의원의 이력 역시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정 대표가 처한 정치적 상황이 오히려 정 대표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호재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 대표가 여러 차례 당을 구원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의 이름 앞에 ‘구원투수’, ‘화합형 투사’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2005년 10·26 재선거 패배 이후 3개월 간 임시 당의장과 원내 대표를 겸임하며 대표적 개혁입법인 사립학교법 개정안 통과를 이끌어낸 예가 있다. 사학법 통과를 기점으로 분열 직전의 열린우리당은 위기를 벗어났지만 한나라당은 사학법 파동의 후폭풍에 휩싸여 강재섭 원내 대표가 낙마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정 대표는 기업가 출신의 경제통으로 통한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쌍용그룹에서 임원을 지냈고 미국 페퍼다인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따 실물과 이론에 두루 밝다.

정치권 입문 후에는 국회 재정경제위원을 거쳐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국회 예결특위위원장을 거치며 경제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그런 그가 리더형 정치인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2005년 1월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맡으면서다.

국가보안법 등 이른바 ‘4대 입법 처리’ 실패로 어수선한 당의 전열을 정비하면서 야당의 반대에 부딪혔던 주요 법안을 통과시키는 지혜를 발휘했다. 특히 같은 해 3월에는 한나라당의 단상점거를 뚫고 행정복합도시특별법을 통과시킨 데 이어 근현대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과거사법 처리를 지휘했다.

2006년 1월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된 이후 ‘1.2개각 파문’에 휩쓸려 잠시 당내 위상이 흔들리기도 했다. 이후 11개월간 산업자원부 장관 재임 기간에는 수출 3천억 달러 시대를 열어 부처 내에서 ‘3천억 달러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 대표 특유의 ‘통합의 리더십’을 과시하며 구원 투수로 재등판한 것은 당이 분열로 치닫던 2007년 2월이다. 복잡한 당내 계파의 이해관계를 뛰어 넘어 당 의장에 합의추대된 그는 같은 해 8월까지 열린우리당을 마지막까지 지켜내며 통합의 기반을 마련했다.

당내에서는 거대공룡 한나라당을 상대로 ‘강단 있는’ 원내 전략을 구사하고 이명박 정부의 경제 실정을 비판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정 대표의 경력에 비해 국민적 인지도가 낮고 ‘관리형’이미지가 강하다는 점이 약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성실을 좌우명으로 정치 생활을 하고 있는 정 대표는 초등학교 5학년 아침 등굣길에 우연히 보게 된 국회의원 선거 포스터를 보고 국회의원의 꿈을 키워왔다.

정 대표의 학창 시절 일화도 유명하다. 정 대표가 전주공고를 다니던 중 인문계 고교를 다니고 싶어 전주 신흥고 교장을 직접 찾아가 “신흥고를 다니고 싶은 데 장학금을 안주면 학교에 다닐 형편이 못된다. 장학금을 주고 전학을 받아 달라”고 말했다는 일화다. 당시 전주 공고에서 1등을 하던 정 대표였지만 신흥고 교장은 당돌한 고등학생의 말을 들어줬다.


공고생 탈출기, ‘장학금 받고 전학’

일화관련 정 대표는 “내 용기가 가상해서인지 교장 선생님은 장학생으로 날 받아주셨고 신흥고 개교 100년 만에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배출했으니 나름대로 빚은 갚은 셈”이라고 회고했다.

고등학생 시절 이런 두둑한 뱃장은 그를 1970년 군부독재 시절 고대 총학생회장을 맡게 된다. 대학 졸업 후 쌍용그룹 계열사인 종합상사에 입사, 영업일선에서 뛰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1996년 정치에 입문할 당시 정 대표는 상무를 맡고 있었다. 이후 15대부터 18대까지 전북 무주, 진안, 장수에서 내리 당선되면서 4선의 당 대표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 프로필

신흥고등학교 (전북)
고려대학교 법학과 (학사)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회장
미국 페퍼다인대 대학원 (경영학석사)
쌍용그룹 근무(상무이사)
아태평화재단후원회 중앙위원
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 전북도지부 지부장
제15대 국회의원
(전북 진안·무주·장수 새정치국민회의)
연청중앙회 회장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간사
제16대 국회의원(민주당·열린우리당)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의장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위원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의장
제17대 국회의원(열린우리·통합민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열린우리당 임시 당의장
제9대 산업자원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현) 제18대 국회의원 (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
통합민주당·민주당)
(현) 민주당 대표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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