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함대’이끄는 차·범·근 수원블루윙즈 감독

박지성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 출전이 무산된 지난달 22일 새벽. 수많은 팬들이 물거품 된 코리안 특급의 활약을 아쉬워하며 밤잠을 설쳤다. 하지만 어떤 축구팬보다 그의 결장을 가슴아파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박지성이 태어나기도 전인 1970년대, 세계최고의 축구리그로 손꼽히던 독일에서 ‘원조 코리안 특급’ 신화를 쓴 차범근 수원블루윙즈 감독이다.
밤을 꼬박 지새우며 경기를 지켜본 그는 “레버쿠젠서 뛰던 20년 전 UEFA컵 결승에서 우승한 뒤 우승컵에 샴페인을 채워 파티를 한 기억이 생생하다”고 남다른 소감을 밝혔다. 또 “내 경험상 선수가 경기장에 못나가는 것만큼 허탈한 게 없다. 하지만 아쉬움을 딛고 이를 악 물면 더 좋은 날이 오더라”며 의기소침해진 후배를 다독였다.
올 한해 축구팬들은 박지성과 김동진이 들어 올린 금빛 트로피를 보며 행복을 느꼈다. 그 행복감 뒤에는 ‘제2의 차붐 전설’이 부활할까하는 두근거림이 공존했다. 차범근 또는 차붐의 전설은 비단 과거의 영광만이 아니다. 올 시즌 ‘무적함대’ 수원의 무패행진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공격형 사령탑’ 차범근 감독은 여전히 한국 축구 한가운데서 전설을 쓰고 있다.
박지성의 맨유는 ‘더블’(리그·챔피언스리그 우승 2관왕)을 기록했지만 차붐의 수원은 ‘트레블’(리그·컵대회·FA컵 우승 3관왕)을 향해 고공질주하고 있다. 올 시즌 프로축구에서 15경기(5월 23일 현재·13승2무) 무패행진을 달리는 수원은 ‘무적함대’에 비유된다.
차붐의 수원 “트레블 따낸다!”
정규리그와 컵 대회 모두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수원은 최근 마토와 송종국 등 주전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몸을 사리고 있지만 서동현, 신영록, 에두 등 정상급 주포들의 활약으로 ‘이기는 축구’의 진수를 선보이는 것. 여기에 전성기 때 기량을 고스란히 되살린 대표 수문장 이운재의 철벽 수비까지 더해 차범근 감독의 기를 살려주고 있다.
이렇듯 국내 최강 프로팀을 이끄는 성공한 감독으로 변신한 전설. 하지만 그의 선수 시절은 그야말로 최고, 그 이상이었다.
1970년대 한국축구는 아시아의 절대 강자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차범근이 있었다. 1977년 박스컵 개막전에서 약체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홈에서 무려 1:4로 몰리며 고전할 때 구세주로 나선 것이 바로 그다. 경기종료 7분을 남겨두고 3골을 몰아쳐 한국 대표팀을 수세에서 구해낸 차범근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하길 꿈꿨던 차범근. 당시 베켄바우어, 루메니게 등 전설적 축구스타를 배출한 독일은 꿈의 무대였다. 때문에 차범근은 한국 최고 선수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당시 분데스리가 최하위 팀이었던 다름슈타드의 신인선수 테스트에 참가해 재능을 인정받았다. 1978년 12월. 6개월짜리 단기계약을 맺은 27살의 차범근은 뛰어난 적응력과 실력으로 독일 무대에 연착륙했다.
마테우스와의 맞대결
그러나 고지식한 한국 축구계는 영웅의 탄생을 두고 보지 않았다.
뛰어난 축구자원을 외국에 빼앗겼다는 피해의식이 컸는지도 모른다. 조국은 차범근에게 ‘군입대’라는 족쇄를 묶어 한 달 만에 귀국시켰고 그는 공군에 입대해 5개월여의 군복무를 마쳤다.
‘반드시 독일에 돌아가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그의 의지는 강했고 결국 1979년 8월 프랑크푸르트 유니폼을 입었다. 차범근의 진정한 전성기는 그때부터였다. 프랑크푸르트 입단 뒤 5경기 만에 3경기 연속 골을 뽑아낸 차범근에게 독일 최고의 축구전문지
붐(Bum)은 독일어로 폭발음을 뜻한다.
불붙은 화약고처럼 골 푹풍을 쏟아내던 그는 마침내 1980년 UEFA컵에 출전, 레알마드리드와 AC밀란 등 유럽 최강팀을 격파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특히 보루시아 MG와의 결승전에서 독일대표팀의 전설적인 수비수 마테우스를 완전히 제압하며 그해 ‘세계축구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를 전담마크 했던 당시 20살의 마테우스는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범근은 세계 최고 공격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기도 했다.
1983년 리그 하위팀 레버쿠젠으로 둥지를 옮겨서도 차붐의 활약은 식지 않았다. 리그 최하위권의 레버쿠젠을 입단 첫해 7위로 끌어올렸고 두 시즌 동안 전경기를 소화해 팀의 주축임을 과시했다.
두 번째 UEFA컵 우승
34살이던 85~86 시즌에는 34경기에 출전해 17골을 넣어 분데스리가 MVP를 꿰찼으며 마침내 1986년 멕시코 월드컵 한국 대표로 선발 돼 월드컵 무대 신고식을 치렀다. 그의 황금기는 1988년 생애 두 번째 UEFA컵 결승전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스페인의 에스파뇰과 맞붙어 1차전 0:3의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레버쿠젠은 2차전에서 반드시 3골 이상을 넣어야 우승컵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팀 동료인 바스와 괴츠의 연속골로 필요한 득점은 단 1점.
바로 그 1점을 그림 같은 헤딩슛으로 꽂아 넣으며 차범근은 팀에 창단 첫 UEFA컵 우승을 안겼고 마지막 선수 생활을 세계의 정상에서 마무리 짓는 쾌거를 거뒀다.
단 한 번도 패널티킥을 차지 않은 차범근이 독일에서 거둔 성적은 총 308경기 출전 98골. 당시 외국인 선수 최다골을 기록한 그의 전설은 지금껏 독일은 물론 유럽 축구팬들 심장에 남아있다.
#<차범근 프로필>
▶1953년 5월 22일
▶현 프로축구 수원블루윙즈 감독·
MBC 축구해설위원
▶가족사항 : 부인 오은미, 슬하 2남 1녀
(장녀 차하나, 장남 차두리, 막내 차세찌)
▶취미 : 테니스, 독서, 컴퓨터
▶별명 : 차붐, 갈색폭격기
▶종교 : 기독교
▶최종학력 : 고려대학교 학사
▶수상경력 :
- 2004년 올해의 프로축구 올해의 감독상
- 1999년 월드사커 선정 ‘20세기 축구에 영향을
미친 100인’·‘잊을 수 없는 100대 스타’
- 1986년 서독 올해의 분데스리가 최고의 선수
- 1979년 올해의 외국인 선수 1위
##차두리 “아빠 생신 축하해요!”
지난 5월 22일 55번째 생일을 맞은 차범근 감독의 얼굴이 활짝 폈다. 사흘 전 귀국한 아들 차두리(28·Tus 코블렌츠)가 준비한 특별한 생일상을 받은 것이다. ‘아들이 외국에서 돈 벌어왔으니 얻어먹어야지’라며 팀훈련을 마친 뒤 서울로 향한 차 감독은 온 가족이 모여 푸짐한 고기 파티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차 감독이 받은 특별한 생일상은 다름 아닌 독일무대에서 꾸준히 활약한 아들의 금의환향이다. 지난 시즌까지 독일 분데스리가 마인츠에서 벤치 멤버로 전락했던 차두리는 올해 결단을 내렸다. 1부 리그 팀들의 제의를 뿌리치고 2부 리그로 내려가 본격적인 와신상담에 돌입한 것.
윙백 공격수에서 풀백 수비수로 전향한 뒤 마인츠에서 1년 동안 단 12경기 출전에 그쳤던 차두리는 코블렌츠로 이적해 매 경기 풀타임 출장하며 한결 안정적인 수비력을 자랑했다.
그는 또 시즌 중 탈세 논란에 휩싸여 승점 8점을 빼앗기는 중징계를 당한 팀의 3부 리그 강등을 막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공수에 걸친 차두리의 맹활약에 힘입어 코블렌츠는 리그 10위로 시즌을 마감했고 차두리 역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차붐의 아들’로 차두리를 지켜봐온 독일 언론들도 “(차두리가)이제야 몸에 맞는 옷을 입었다”며 그의 활약상에 기대감을 표한 바 있다.
한편 2006년 10월 가나전 이후 국가대표팀 부름을 받지 못한 차두리는 대표팀 합류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누누이 밝혀왔다. 하지만 노련한 전문 수비수가 부족한 허정무호에 공격력과 수비력을 모두 갖춘 그가 답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아버지의 전설이 살아 숨쉬는 독일에서 담금질에 전념하고 있는 차두리가 실력으로 돋보인다면 대표팀 재승선도 꿈이 아니다.
###차범근에 대한 해외 명사들의 평가
“나는 차붐 선수를 존경한다. 난 어릴 때부터 차붐을 보고 자라왔다. 나도 그 선수처럼 되고 싶다.” - 마이클 오웬(잉글랜드 국가대표/뉴캐슬 Utd)
(한국 방문 당시)“여기가 차붐의 나라입니까? 너무 와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나의 우상입니다.” - 미하엘 발라크(독일 국가대표/첼시FC)
“차범근이 세계 최고의 공격수인 건 분명하다. 그는 나의 자만을 깨우쳐줬다” - 로타르 마테우스 (전 독일 국가대표/A매치 150경기 출장)
“난 차붐을 낳은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가 독일에 있었다면 반드시 독일 대표팀에 넣고 싶다” - 프란츠 베켄바우어(전 독일 국가대표/A매치 103경기 출장)
“내가 그런 공격수랑 붙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 - 파울로 말디니(이탈리아 국가대표/AC밀란)
(2004년 방한 당시)“당신의 사인을 받고 싶었습니다. 이 자리는 제게 정말 큰 영광입니다.” - 올리버 칸(독일 국가대표/바이에른 뮌헨)
“차붐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영웅이다” - 루이스 피구(전 포르투갈 국가대표)
“나 자신은 어느정도 성공한 공격수로 평가받지만 차붐 정도는 아니다.” - 위르겐 클린스만 (전 독일 국가대표/전 독일 국가대표 감독)
“한국을 찾은 궁극적인 목적은 양국의 발전과 우호증진이다. 하지만 난 차붐부터 만나고 싶다” - 슈뢰더 (전 독일총리)
(1979년 에버딘 감독 맡았을 당시, 프랑크푸르트와의 UEFA컵 1라운드 경기 후)“우리가 풀지 못한 가장 큰 문제는 차붐이었다. 차붐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해결 불가능한 존재였다” - 알렉스 퍼거슨(맨체스터유나이티드 감독)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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