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DCN미디어 [채널J] 엄홍식 대표

“센스와 열정, 시대적 감각으로 승부한다면 누구나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방송국 대표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방송의 틈새시장을 정확히 읽어 인기 방송사로 등극한 (주)DCN미디어 [채널J] 엄홍식 대표를 만나 학연과 지연, 인맥에 구애받지 않고 열정하나로 뛰어온 인생드라마를 들어봤다.
첫 만남에서 엄 대표는 방송을 요리에 비유했다. “정성을 기울인 만큼 맛있고 영양만점의 작품을 탄생시키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아준다. 하지만 인공적인 맛만 살리면 사람들로부터 냉랭한 시선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방송과 요리는 일맥상통 한다”는 말이다.
사람 사귀길 좋아하는 그의 전 직업은 대우자동차 세일즈맨이다. 지금의 직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성실과 끈기로 ‘최고의 자동차 판매왕’에 오른 인물이다.
방송은 요리와 같다
대우가 케이블방송을 시작할 당시 판매왕의 타이틀을 벗고 방송국 직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판매왕 시절과는 전혀 다른 세계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초창기 케이블 방송은 전문가와 유학파, 서울대, 연·고대 등 명문대 출신들이 모든 자리를 차지했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방송일은 처음이고 학력은 밀리니 얼마나 멸시 하던지, 하지만 그런 생활이 오히려 나에겐 채찍이었다” 며 “기죽지 않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의지로 부딪쳤다”고 말했다.
그가 고학력 전문가들 사이에서 인정받기 위해 선택한 것은 긍정과 노력, 스피드였다. 방송국 파트별 모든 사람들과 안면을 트고, 듣고,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업무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고 또 묻고 새로운 일들에 점차 도전하기 시작했다.
당시를 떠올리며 “배우면서 가장 즐거웠던 시기였다. 그 시절을 겪으며 이 세계의 매력을 알았고 나도 방송국 사장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고 답했다.
당시부터 엄 대표를 지켜본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모습이 있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워 뛰어다니며 일했다. 사내에서 앉아있는 모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며 초창기를 회고했다.
이밖에도 하루 3시간만을 자며 컴퓨터와 영어, 전문서적 등을 탐독해 다른 사원들과 벌어진 경험을 메우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방송 일을 배운 엄 대표는 마침내 2000년 일본방송 전문채널 DCN을 설립하고 2003년 자신의 꿈을 전파에 담아 방영하기 시작했다.
방송 일을 접하며 목표를 세우고 결과를 얻기까지 8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37세, 한국 방송 역사상 최연소 복수채널사용 사업자(MPP) 대표로 등극하는 기록을 남겼다. 이런 그의 삶들이 프로그램에 녹아 있어서인지 방송편성에서도 타사들과는 차별성이 보인다.
한국 최초로 일본전문채널을 도입하고 방송 역사상 최초로 경매현장을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에게 보여 주목을 끌기도 했다.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방송프로그램의 이면엔 철저한 엄 대표의 경영마인드가 숨어있다.
즉 방송에서 틈새시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방송사나 지상파 들이 일본 채널을 방송하기엔 부담스러운 점이 많을 것이라 판단했다. 우리가 시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 할 것이란 생각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방송 송출에 있어 처음부터 힘든 여건이 많았다. 일본에 한류는 있어도 한국에 일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 방송사들은 한국에 자국의 문화를 알리겠다는 생각은 적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선 오히려 고가로 콘텐츠를 판매한다거나 한국에서 일본 방송을 굳이 틀어야 하냐며 반문하기 일쑤였다.
일본방송 수입에 대해 “그들의 문화를 한국에 알리는데 가격을 낮출 수 없냐고 말하면 일본인들은 ‘하기 싫으면 거래하지 말자’는 태도를 보였다.
그들의 비즈니스 마인드는 한국과는 달리 개인주의가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일본 문화를 알릴 수 있는 다양한 장르를 수입했다. 일본디즈니랜드 탐방, 일본 기차여행 등 재미는 물론 일본의 문화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시청자들에게 제공했다.
방송을 시작할 당시 다행히 한국에는 이미 일본 마니아층이 두터웠다. 덕분에 시청자들로부터 관심과 호평을 받았고 점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일본 역시 이런 변화로 이제는 프로그램을 추천하거나 파트너로서 DCN을 받아들였다.
유료시청 가구 수 780만
하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2005년부터 한국 케이블 방송최초로 연간 20억원을 투자해 HD방송을 시작, 방송의 질을 높였다.
이런 노력에 주변에선 “쓸데없는 곳에 투자하는 것”이라 말했지만 현재 고화질을 지향하지 못한 케이블 방송국들은 점차 도태되고 있다.
그의 노력과 미래를 정확히 준비한 덕분에 작년 대비 100만 가구 늘어난 780만 가구가 DCN 방송을 유로로 시청하고 있다. 이것은 케이블방송을 시청하는 1300만 가구들 중 50%를 훌쩍 뛰어넘은 수준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는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자신의 방송으로 한일간 역사적 견해를 보여주고 싶단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의 동시대에 관계된 역사 드라마들을 방송해 시청자들에게 양국 간 역사적 견해를 보여주고 싶다”고 전했다.
엄 대표는 인터뷰를 마치며 “남들과 다르다고 미리부터 기죽거나 힘겨워하지 말라. 내가 노력한 만큼 언젠간 사회는 충분히 보장해 준다. 실패 역시 두려워 피한 사람들은 성공할 수 없다. 모든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도전하자”고 말했다.
송효찬 기자 s2501@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