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 씨

본지는 지난 24일 미국에서 망명중인 김기삼씨와 전화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에서 그는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기가 초래되고 있는데도 진실을 바로 보도하지 않는 한국 언론에 불만을 드러냈다. 사실을 흥미위주로 포장해 보도하는 데만 급급할 뿐 정작 국민이 알아야 할 중요한 내용들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그는 DJ 비리의혹을 정부차원에서 규명하지 않는 한 개인적으로 ‘진실 찾기’에 나서진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혼자 진실을 위해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그에 대한 대가로 모든 불이익을 뒤집어써야 하는 현실에 지쳤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에게서 최근 근
황과 망명이 인정되기까지의 생활, 그리고 DJ비리의혹 폭로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을 들어 보았다.
-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 망명 생활하는 사람이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나. 집에서 시간 보내고 가끔 시내에 바람 쐬러 가는 게 전부였다.
- 국내 언론이 김기삼씨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 내가 기자회견을 계획 중이라고 국내 언론에 보도된 걸로 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요즘 난감하다. 그 보도는 사실과 차이가 있다. 나는 그저 주위 아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자고 한 것뿐이다. 국내 언론에서 문의전화가 너무 많이 와 일일이 답해주는 것 보다 그렇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말했는데 와전됐다. 하지만 기자회견에 관한 문제는 좀 더 고민한 후에 결정하겠다.
- 타국이라 생계유지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국내에 도움 주는 단체나 인물이 있나.
▲ 이민 와 살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힘들다. 특별히 내 생활을 도와주는 단체나 지인은 없다. 가족들끼리 의지해 살고 있다.
- 거대 권력을 향한 본인의 폭로로 애꿎은 가족들이 힘들었을 것 같다. 심경 등을 말해 달라.
▲ 물론 가족들이 힘들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을 감안하고 폭로한 것이다.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내 스스로 이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무엇보다 DJ의 비리를 폭로한 것은 국가통수권자가 벌이는 반역행위를 더 이상 두고 없었기 때문이다. 조사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이래선 안 된다. 국민이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일부에선 DJ정부의 여러 비리 의혹을 폭로한 것을 두고 애국애족 외에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 정부에서 월급 받고 사는 사람이 DJ의 비리를 폭로해서 얻을 게 뭐있나. DJ의 민족적 반역행위를 국민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 외에 다른 의도는 없다.
- 이번 망명허용은 DJ정부의 여러 비리 의혹을 미국 측이 일부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제기된 의혹 중 어떤 부분이 심사에 작용됐나.
▲ 망명 허용을 그렇게 볼 순 없다. 이번에 망명요청이 받아들여진 것은 나의 폭로로 인해 내가 정치적으로 탄압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심사국은 DJ의 비리에 대해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기능도 없다. 단지 내가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기 때문에 망명요청이 타당하다고 결정 난 것뿐이다.
- 망명사무소의 결정이 미뤄진 이유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DJ ·노무현 정권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작용한 부분도 있나.
▲ 언론들은 자꾸 그런 부분을 연관 지어 생각하는데 단지 심사가 늦어진 것뿐이다. 그 이외에 심사국의 내부사정을 내가 어찌 알겠나.
- 현재 조풍언씨가 국내 검찰에 조사받고 있다. 폭로 당시 DJ비자금과 국방사업 비리 의혹을 제기하면서 조씨를 언급한 적 있다. 이런 정황들 때문에 시점이 묘하다는 지적이 있다. 당국의 망명허용 내막이 따로 있는 것인가.
▲ 없다. 조풍언씨에 대해 내가 아는 바도 거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선 김한정씨가 잘 알거라 생각된다.
- 망명을 선택한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 달라. 정치적 보복을 우려해 망명했다고 밝힌 적 있는데, 피부로 위협을 느낀 적 있나.
▲ 어떤 형태로든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면 내가 망명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위험의 징후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주변에서도 위험한 것 같으니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예로 2002년 대선직전 한국에 잠깐 들어온 적 있다. 그때 청와대에 내가 입국했다는 정보가 보고됐고 나를 체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 DJ비자금 의혹에 대해 소문이 무성하다. 일설에는 13조원에 이른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를 밝힐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해 보인다. 현 정부가 조사할 경우 그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보나.
▲ 나는 DJ의 비자금이 6천억 원에서 1조 원 정도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정확히 어디에 얼마나 숨겨져 있는지 알 순 없다. 이 부분은 국가차원에서 조사해도 밝혀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밝혀낸다하더라도 너무 많은 사람과 기관들이 얽혀있기 때문에 공개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 미국에서 DJ·노무현 정부 인사와 접촉한 적은 없나.
▲ 노무현 정부 당시 접촉해 온 적 있다.
그때 들은 이야기론 노 대통령이 “왜 자꾸 밖에서 이야기하나. 할 말이 있으면 들어와서 하라”고 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 측근들은 나를 돕겠다고 했으나 내가 그들을 믿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하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 현재 한국 측으로부터 감시나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 일정부분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한다. 불이익이야 지금 정치적으로 망명해 타국에 살고 있는 자체가 불이익 아닌가. 감시문제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 같다. 전화도청이나 동향파악 등 감시의 움직임은 어느 정도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바가 있다. 나도 정보국에서 10년 가까이 몸담은 사람인데 그걸 못 느끼겠나.
-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의지에 따라 귀국할 의사도 있음을 내비쳤는데, DJ정부의 여러 의혹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면 어떻게 도울 계획인가.
▲ 정부에서 확실한 의지를 갖고 조사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것이다. 내가 말을 꺼내놓고 그때 가서 발을 뺄 순 없는 일 아닌가. 전에도 밝혔던 것처럼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지면 한국으로 귀국해 의혹들을 규명할 것이다. 내가 제기한 의혹들 중 국민들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DJ의 노벨상 수상공작이다. 이것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북불법송금 등 모든 반역행위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 DJ의 비리 의혹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싸울 생각인가.
▲ 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다. 솔직히 이젠 정말 지친다. DJ의 비리를 폭로하자 뜻을 같이하는 사람보다 비난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또 내가 말한 내용들은 단지 흥밋거리로 밖에 취급되지 않았다. 반역자를 세상에 알렸는데 오히려 내가 반역자가 돼 이렇게 도망쳤다. 정작 문제의 당사자들은 건재한데 왜 나만 이 모든 걸 뒤집어써야 하는가하는 회의감이 든다. 국민을 위해 행동했지만 누구하나 나를 지지하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현 정부에서 DJ의 비리를 조사하고 내가 자료들을 공개해야 한다고 하면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공개한다 해도 의미가 없는 것 아니겠나.
- 현 정부가 DJ의 비리를 조사할 것이라고 보나.
▲ 상당히 희박하다고 본다. 아마 조사는 없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또 그 문제가 다시 쟁점화 돼 내가 골치 아파지는 것도 싫다.
- 따로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나 홈페이지 또는 카페가 있나.
▲ 지금까지 모든 내용을 충분히 다 말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할 말도 없다. 그래서 특별히 블로그나 카페 활동을 하진 않는다.
- 향후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 특별한 계획은 없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제는 내가 벌인 일들을 수습하고 마무리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기자들과의 대화도 생각한 것이다. 마무리를 위해 나름대로 하나씩 준비해나갈 것이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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