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국무총리를 죽인 세력은 누구인가. 고 전총리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그가 별안간 입장을 바꾼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선 정권과 마찰을 빚으면서 전방위적인 압박이 가해진 게 아니냐는 ‘음모론적’ 분석이 제기됐다. 신당창당 로드맵까지 작성하고 강행군을 하던 고 전총리의 대선 불출마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시각에서 나온 관측이다. 그러나, 고 전총리측은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고건 줄대기에 앞장섰던 일부 여당 인사들의 ‘기회주의적’ 행동으로 인해 정치에 환멸을 느꼈을 것이라는 주장에 무게감이 실린다. 이런 상황에서, 악화된 건강과 지지율 하락세를 극복할 ‘동력’을 찾기는 난망한 일이다. 고 전총리의 불출마 선언으로 노무현 정권과 일부 대선주자들은 기대치 않았던 수혜를 입게 됐다. 노 대통령의 경우 정국 주도권을 잡는데 탄력을 받았고 일부 대선주자들은 지지율이 다소나마 상승했다. ‘고건’을 주저앉힌 세력은 과연 누구일까.
지난 16일 고건 전국무총리가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사실상 정치와 선을 그은 것이다. 이로 인해 여야 대선주자들의 손익계산이 분주해지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정치권 안팎에선 호남권 대안론의 중심에 서 있던 고 전총리가 ‘중도 하차’함에 따라 여권의 ‘핵폭발’을 일시적으로 주춤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강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나섰다.
야당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번지고 있는 ‘음모론’의 실체는 고 전총리가 자금부족, 인력풀의 한계 등을 딛고 그동안 ‘고난의 행군’을 강행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불러온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불출마 배경 “무언가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고 전총리가 갑자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며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과연 고 전총리가 대권을 포기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 일각에서 ‘고건 아킬레스건’이 거론되고 있어 주목해 볼만하다.
고 전총리의 집안내력, 친인척 비리의혹, 잇단 내부 정보 유출 등은 이미 일부 언론을 통해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본지 또한 제 643호에서 고 전총리의 조카와 관련된 의혹을 다룬 바 있다.
대선 정국에서 통상 정치권에 네거티브한 소문이 확산되는 경우는 대세론의 주인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고 전총리의 경우 대선 선호도 조사에서 내리막을 걸었고, 이명박 전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이어 결국 3위로 밀리는 등 네거티브의 대상으로 부상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 전총리와 관련된 ‘악성 루머’가 퍼진 것은 의아스럽다는 반응이다.
다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은 “결과론적인 해석이지만, 고 전총리의 ‘중도 하차’로 이득을 취한 세력을 가려보면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 전총리의 ‘좌초’가 가져온 파급효과의 혜택은 여권과 일부 대선주자에게 돌아갔다. 지지율 1위를 지키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이 전시장의 경우가 대표적인 케이스. 이 전시장측은 호남 유력주자가 사라짐으로 인해 이탈표의 상당수를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에 만족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수혜자는 바로 노 대통령과 여권주자다. 노 대통령은 ‘개헌 발의안’을 꺼내들고 임기 말에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여권의 분열을 잠재우고 정국 주도권을 쥐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권 차기 대안후보로 고 전총리가 버티고 있음으로 인해 열린우리당 이탈 세력의 힘은 쉽게 약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통합신당측은 ‘개헌 정국’을 극단적(?) 선택을 강행할 기회로 삼고자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열린우리당 염동연 의원은 “개헌 발의에 대한 진정성은 이해하지만 대통합을 위해 탈당이 불가피하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동조하고 있는 수 십명의 통합신당파는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했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통합신당의 유력주자로 고 전총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정국 ‘이니셔티브’를 확보하고 친노세력이 입지를 확보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로 고 전총리가 거론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급기야 노 대통령조차 직접 나서 고 전총리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인사 실패’를 거론하며 고 전총리를 향해
공세의 고삐를 당겼던 것. 양자간 논쟁은 모 부장판사 습격 사건처럼 치명적인 ‘석궁’(?)이 되어 고 전총리를 명중시켰다. 노 대통령과 논쟁이 벌어진 직후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고건 캠프 ‘모니터링’ 강화
노 대통령 입장에서도 여권의 특정 ‘대안’으로 고 전총리가 존재하는 한 임기 말 정국을 장악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작심’하고 논쟁을 벌인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이를 간파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청와대 핵심 참모진들도 고 전총리에 대한 ‘모니터링’을 더욱 강화했을 것은 뻔한 이치다.
일부 여당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일을 도모했던 고 전총리가 날개도 펴보지 못하고 주저앉은 배경에서 이러한 속내가 읽힌다. 여권 차기 대선주자인 정동영 전통일부장관은 대권 선호도 ‘넘버 3’라는 어부지리의 효과를 거뒀다.
고 전총리측 핵심 관계자는 “그동안 여러 가지 말 못할 고민이 많았다”면서 “구체적인 얘기는 나중에 나눴으면 한다”고 즉답을 회피했다.
그러나, 고 전총리측 사정에 밝은 인사들은 네거티브한 해석에 대해 “그런 얘기는 고 전총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일축했다. 수십년간 관료로서 활동해온 유력 대권후보가 일부 비판적 루머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소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고 전총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정치권 인사들이 그로 하여금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고 전총리는 올 초부터 순차적으로 측근 참모들과 자리를 갖고 이러한 속내를 털어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에는 측근 2명과 술자리를 갖고 대선 불출마 의사를 전하면서 격정토로를 했다고 한다.
여권 대선 캠프 관계자는 “들려오는 얘기로는 이날 술자리에서 고 전총리가 측근 2명에게 자신이 불출마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말했다고 한다”면서 “자신을 이용하려 드는 국회의원들로부터 환멸을 느꼈고, 건강과 지지율 등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비공개적으로 고 전총리를 따르던 신중식, 최인기, 안영근 의원 등도 중요한 ‘고비’ 때마다 한 발 뒤로 물러서곤 했다는 후문이다. 정치권 핵분열이 예고된 상황에서 이들의 ‘좌고우면’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고 전총리 입장에서 보면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말 김성곤 의원 등과 함께 추진했던 ‘원탁회의’조차 정치권 안팎의 의견 조율에 실패함에 따라 사실상 물 건너갔다. 원점에서 재검토해 본 결과, 통합신당의 추진 동력은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벽’에 부딪히고만 것이다.
여권, 예측불허의 ‘백지상태’
고 전총리가 특유의 정치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돌파 여부가 불투명한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고 전총리는 그동안 줄곧 공직자로서 비교적 안정적인 관료생활을 해온 인물이다. 지난해 국정 난맥상을 통해 안정적인 대권주자로 부상하긴 했지만, 정치력 부재는 늘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 다녔다. 고 전총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승산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게 된 것이다.
한때 여야 정치권에서 20~30명 안팎의 현역 국회의원들이 줄을 설 것으로 보였던 ‘고건’. 그러나 이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게 더 많았다. 이들과 나눈 비공개 대화는 ‘언론 플레이용’으로 TV와 라디오를 통해 공개되기 일쑤였다.
건강악화와 지지율 하락도 분명 그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배경 중 하나겠지만, 고건에 줄을 서 기회를 잡으려했던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행동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참여정부 초대 총리로서, 노 대통령과 대결구도를 형성하면서까지 대안세력을 도모하려했던 고 전총리의 야망은 역사 속에 묻히게 됐다.
정치컨설팅 전문가는 “고 전총리는 어차피 본선게임까지 가기에는 여러 면에서 역부족이었다”면서 “이제 여권은 예측불허의 ‘백지 상태’에서 제3의 인물을 모색하며 반전을 준비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열린우리당 의원, 한나라당행 소문무성
고건 전총리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여권 이탈세력들이 동력을 상실하게 됐다. 이에 따라 일부 의원들이 탈당 후 통합신당으로 가지 않고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길 개연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이미 여권 일부 국회의원이 한나라당 수뇌부를 통해 입당 의사를 타진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지난 연말에 공개적으로 밝힌 내용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바꾸려고 해도 2007년 대선 판도가 어떻게 변화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또, 한나라당에서 이 같이 폭로하자, 열린우리당의 반발도 한층 커졌다. ‘무책임한 폭로’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선 상황에서 당적 변경은 정치적으로 ‘자충수’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방향을 선택했으리라.
하지만, 범여권 유력 주자였던 고 전총리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이탈 조짐을 보이던 일부 의원들이 당적변경을 강행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다시 나오고 있는 것.
여권에서 이탈할 것으로 의심받는 의원들로는 홍 모의원, 문 모의원, 이 모의원, 정 모의원, 유 모의원, 한 모의원, 김 모의원, 조 모의원 등 10여명 이상 거론되고 있지만, 대부분 이를 부인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당적을 변경하겠다고 말한 의원은 현재까지 없다”고 일축한 뒤 “한나라당에서 이런 말을 흘리는 것은 열린우리당의 내분을 키우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설사 일부 여당 의원들이 당적을 변경한다고 할지라도, 원외위원장 등 기존 세력과 마찰이 불가피해 실행에 옮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따라서 여권 일부 의원들이 탈당 후 한나라당에 입당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상존하겠지만, 현실로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대현 suv1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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