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19호 능가할 옥수수개발" vs "실체없어 못 믿어"
"수원19호 능가할 옥수수개발" vs "실체없어 못 믿어"
  • 윤지환 
  • 입력 2007-01-24 09:36
  • 승인 2007.01.24 09: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슈퍼옥수수 둘러싼 진실게임

“제 2의 황우석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김순권 박사의 슈퍼옥수수 연구활동을 두고 일부에서 조심스럽게 새 나왔던 전망이다. 김 박사는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북한의 굶주림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남북한 정부의 공동지원을 받아 슈퍼옥수수 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수십억원의 막대한 연구비 투입에도 불구하고 수년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결과물이 드러나지 않아 슈퍼옥수수 연구 개발과 존재 유무를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솔솔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의혹의 핵심을 짚어 보면 이렇다.
김 박사는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슈퍼옥수수를 개발하겠다며 정부와 민간단체로부터 수십억원의 연구자금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김 박사가 북한에 심은 것은 슈퍼옥수수가 아니라 자신이 27년전 개발한 ‘수원 19호’라는 이름의 평범한 옥수수였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슈퍼옥수수는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옥수수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북한 인민들을 구제해 줄 슈퍼옥수수는 실존하는 것일까. 있다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김 박사의 주장을 근거로 슈퍼옥수수의 실체를 추적해 보았다.



김 박사는 지난 79년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로 건너가 17년간 그곳에 머물며 현지에서 성장할 수 있는 옥수수를 개발, 나이지라아의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이에 힘입어 그는 아프리카의 기아와 굶주림 퇴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92년부터 매년 노벨상 후보에 올랐다.

노벨상은 후보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검증된 인물임을 나타낸다. 이 사실로 미루어 김 박사는 분명 옥수수에 관한한 세계적인 권위자임은 입증된 셈이다.

그런 김 박사가 95년 11월 귀국해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겠다고 나서자 세간의 이목과 기대가 한꺼번에 집중됐다.
당시 김 박사는 “내가 북한 인민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게 슈퍼옥수수를 개발하겠다”며 “남한과 북한이 뜻을 합쳐 도와준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북한, 나를 납치하려 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그의 이같은 주장에 귀가 솔깃했던 것은 북한 쪽이다.

김 박사는 “북한은 내가 아프리카에 있을 때부터 자국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현지 흑인들을 시켜 나를 납치하려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나는 UN의 보호아래 있었기 때문에 이를 모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왔고, 자신은 이 일을 계기로 북한의 식량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98년 DJ정부가 들어서면서 김 박사의 슈퍼옥수수 프로젝트는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는 DJ의 햇볕정책과 북한의 식량지원요구 그리고 김 박사의 의지, 이렇게 3박자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천문학적 연구 비용 어디로…
북한을 방문한 김 박사는 룡성, 미림, 은산 등 현지의 옥수수 농장을 돌아보며 현장답사를 실시한 뒤 북한의 농업연구진과 함께 98년 슈퍼옥수수 개발에 착수했다. 이때 총 지원된 금액은 10억 6,400만원으로 지원금은 전적으로 남한정부가 부담한 것이다.

국제옥수수재단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이후 그는 연구를 목적으로 2002년까지 모두 27차례 북한을 방문했고, 여기에 들어간 연구비용은 총 82억 4,100만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처럼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슈퍼옥수수 연구 개발은 아직도 계속 진행중인 상태다. 김 박사의 연구가 장기화되면서 DJ정부 당시 야권에서는 슈퍼옥수수 실체 여부에 대해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해 왔다.

하지만 김 박사는 이에 대해 “북한은 옥수수 재배를 위해 가장 좋은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그러나 문제는 북한의 농사관련법이었다. 북한 법은 옥수수를 한자리에만 계속 심도록 하고 있고 옥수수를 심는 땅에는 다른 작물을 심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이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옥수수는 인삼 못지않게 땅의 양분을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같은 땅에 콩과 옥수수를 번갈아 심지 않으면 옥수수가 자랄 수 없는 땅으로 변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는 “이 문제를 비롯해 체류기간의 문제와 현지 인력의 농사지식 부족 등으로 연구개발활동이 생각처럼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며 “옥수수 농사를 지으려면 지속적으로 농장을 관리해 줘야 하는데, 나는 한번 방문에 평균 일주일 정도만 북한에 머물렀다”고 말했다.

또 ‘수원 19호를 슈퍼옥수수로 둔갑시켰다’는 의혹에 대해 김 박사는 “나는 수원 19호를 슈퍼옥수수라고 말한 적 없다”며 “수원 19호는 내가 27년전에 개발했던 종자로 나는 이것과 북한 연구진의 개발종자를 바탕으로 슈퍼옥수수를 개발하려 했다. 그런데 일부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또 그에 따르면 슈퍼옥수수는 아직 개발 단계에 있지만, 자신의 활동으로 북한의 옥수수 농업환경이 개선돼 수확량을 3배 가까이 끌어 올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측은 이에 대해 확연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북한 측은 98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옥수수 수확량이 증가한데 대해 김 박사의 공로덕분이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거룩한 주체농업 지도아래 피 땀 흘린 북한 연구진들의 노력덕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은 김 박사의 방북에 대해 남한에서 온 농업 과학자가 위대한 북한의 농업기술을 배워갔다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다.

북한은 자급자족을 위한 농경중심 국가이기 때문에 농업관련 메커니즘이 남한보다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학계에서도 김 박사가 북한에서 농업환경을 개선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박사는 “북한은 자존심이 센 나라다. 남한보다 농업기술의 우위를 자랑하던 북한이 남한 과학자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며 “하지만 나는 분명 그곳의 잘못된 농업 풍토를 바꿨고 그 결과 좋은 결실을 얻어 북한 측으로부터 고맙다는 말도 들었다”고 반박했다.


정치권 음모에 방북길 막혀
또 김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나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그 부류가 정해져 있다”며 “정치권 인사들이 가장 대표적이고 두 번째가 최근 국제옥수수재단 내에서 불화를 일으키고 있는 몇몇 인사들이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에 대해 음해하는 정치권 인사들은 DJ측 인사들이라는 것이다.

김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정치권 인사들은 김 박사가 돌연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지지선언을 하자 북한에 “김순권은 친미 인사다. 그는 한나라당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그런 사람이 북한에서 인민구제를 위해 옥수수를 개발하게 내버려두면 북한 정권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조언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내용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어 김 박사의 북한 농업환경 개선 공로를 둘러싼 진실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 박사는 이어 “이 때문에 나는 북한에서도 활동이 중단됐을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 나와함께 일했던 북한 현지 연구진들도 불순한 인사와 가까이 했다는 이유로 계급이 강등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박사는 무수한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슈퍼옥수수의 실체에 대해 “지금 슈퍼옥수수 개발은 캄보디아 농장에서 계속 진행중이다”며 “현재 연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멀지않아 수원 19호를 능가할 슈퍼옥수수를 수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윤지환  jjh@dailysun.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