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리는 상사의 조건’ 저자 이문수 전 현대차 부사장 인터뷰
>>>‘끌리는 상사의 조건’ 저자 이문수 전 현대차 부사장 인터뷰
  • 박지영 기자
  • 입력 2008-03-12 11:03
  • 승인 2008.03.12 11:03
  • 호수 47
  • 48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후배직원들 충성에 감동”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한 커피숍에서 이문수(60·현 킹웨이인재개발그룹 원장) 전 현대자동차 국내영업부문 부사장과 인터뷰 일정이 잡혔다. 약속된 시간은 오후 3시. 그러나 ‘높으신 분’은 대개 몇 분 늦는 경우가 많다. 이에 ‘통밥’을 굴린 기자는 약속시간 정각에 커피숍을 찾았다. 실내를 두리번거리며 적절한 장소를 물색 중이던 기자는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말끔한 정장차림의 이 전 부사장이었다. 간단하게 눈인사를 하고 그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뒤 본격적으로 인터뷰에 들어갔다. 인터뷰는 2시간가량 계속됐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 기자는 “이 사람이 정말 국내 재계서열 2위인 현대자동차 부사장을 지낸 ‘분’일까?”란 의문이 생겼다. 그만큼 살갑고도 소탈한 인품을 지닌 분이었다. 또 그는 인터뷰 내내 ‘부하직원’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후배직원’이란 단어를 애용했다. 선·후배간 정이 끈끈하게 맺어져 있단 걸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다음은 이 전 부사장과 나눴던 얘기들을 정리한 내용이다.


- 이문수 전 부사장의 경우 말단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부사장까지 오른 입지전적한 분으로 정평이 나 있다. 30년 동안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 기억에 남는 사건이 참 많죠. 그래도 굳이 꼽으라면 1998년도에 있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 해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죠. 시작은 굉장히 좋았어요. 1월 1일 상무로 승진했으니까…. 그런데 그해 6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75년생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이 대목에서 이 전 부사장은 눈시울을 붉혔다). 6월 25일이 아들놈 생일이었는데 그 다음날 사고가 났어요.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망했죠. 그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는지 병원에서 방광암이라 그러더라고요.
담당의사 말이 수술을 하지 않으면 6개월도 못산다고 했습니다. 수술해도 장담은 할 수 없다고…. 고민 끝에 수술을 받기로 했죠. 11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습니다. 방광과 전립선을 통째로 들어내고 대장 일부를 잘라 방광이 있던 자리에 이어 붙였죠. 방사선 치료도 21번이나 받았어요.

- 병원엔 얼마나 입원해 있었나. 1998년이면 외환위기(IMF) 때로 회사 쪽에서도 눈치를 상당히 줬을 것 같은데.
▲ 40일 병원에 입원하고, 약 한 달 정도는 집에서 요양을 했어요. 그러고도 두세 달은 회사에 정상적으로 출근하지 못했죠. 당시 전 현대자동차 판매부문 상무였고, 직책은 30여 개 지점을 관리하는 J지역본부 본부장이었어요. 멀쩡하게 일 잘하던 사람도 정리해고 당하던 외환위기 상황에 회사입장에서는 날 퇴사시키는 게 ‘합리적인 결정’이었죠. 수술은 했지만 허약해진 몸으로 제대로 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지 않았는데 같이 일하던 후배직원들이 회사가 ‘불합리한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어요.

- 불합리한 결정이란 구체적으로 뭘 뜻하는 건가.
▲ 그때 내 책임아래 있던 지역직원이 약 700명 정도였는데, 제가 암에 걸렸단 소식을 듣고 그들끼리 의논을 했나 봐요. 회사에서 나를 해고하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것들이었죠. 결론은 쉽게 나왔어요. 제가 자리를 비워도 아무 문제없이 굴러가면 된다는 것이었죠. 후배들은 회사에서의 내 수명을 연장시켰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론 내 진짜 목숨도 살렸어요.

- 실제 목숨을 살려줬다는 게 무슨 말인가.
▲ 입원해 있는 동안 매일같이 30~40명씩 문병 와준 직원들 힘이 컸어요. 한때 같이 일했다는 인연으로 전국에서 문병을 와 줬죠. 심지어 병원 근처에 살고 있던 한 직원은 아침마다 자기 집에 배달된 신문을 병실까지 갖다 주고 출근한 경우도 있었어요. 그들의 따뜻한 응원은 죽은 사람도 살릴 정도였죠. 문병 온 직원들이 놓고 간 봉투만으로도 병원비를 충당하고 남았으니까요. 그들이 목숨을 살려주고 해고를 막아준 덕분에 부사장이라는 분에 넘치는 직책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병상에 누워있으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을 텐데.
▲ 솔직히 11월 중순에 내리는 눈을 병실 침대에 누워 바라보면서 ‘다시 저 눈을 밟을 수 있을까’하는 약한 생각도 들었어요. 그렇게 허송시간을 보내다 한번은 제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죠. 그런데 제 인생에서 현대자동차 다닌 거 빼고는 아무 것도 없더라고요. 회사에서 보낸 세월이 곧 이문수 역사였던 거죠. 후회가 됐어요. 좀 더 열심히 일 할걸…. 퇴원 후 주변사람들이 모두 지방에 내려가 요양을 하라고 했는데도 회사에 복귀한 이유 또한 열심히 일하다 죽는 게 차라리 제 역사에 더 떳떳할 거란 생각 때문이었어요.

- 건강은 좀 어떠한가.
▲ 꽤 좋았었는데 요새 신장 쪽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구정 때 뭘 잘못 먹었는지 소화도 좀 안 되는 것 같고…. 여하튼 요즘 안·뒤로 고생이 많습니다(허허).

- 후배들이 이 전 부사장을 그만큼 따랐던 이유가 뭔가.
▲ 한번은 중소기업 사장단 모임에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는데 한 사장이 “직원들이 내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라준다”며 고민을 털어놓더라고요. 그때 제가 한 말은 “그럼 사장님은 직원들 마음 잘 아세요”였습니다. 94년 지역 책임자로 일할 때였어요. 지역 책임자가 돼서 생각해 봤는데 700~800명이나 되는 직원을 아우를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나 생각해 봤죠. 그래서 하루에 20~30개나 되는 지점에 일일이 들려 후배들에게 술도 사주고 밥도 사주면서 개인적인 이야길 많이 했어요. 그때 후배들 이름을 모르니까 참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많은 후배들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꼬박 3개월이 걸렸죠. 하지만 후배들은 단지 선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을 받더라고요.

- 요즘도 후배직원들과 자주 연락하나. 지금 휴대폰엔 몇 명이나 저장돼 있나.
▲ 오, 연락 자주하죠. 이번에 책 나왔다고 연락도 많이 오고…. 초판을 3000권이나 찍었는데 후배들이 한·두 권씩 사줘서 금세 동이 났습니다. 그래서 금주 중에 2000권 가량 또 찍기로 했죠.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전화번호는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며) 모두 602명 저장돼있네요. 대부분 회사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후배들입니다. 더 (저장)해야 하는데 서툴기도 하고….

- 최근 <끌리는 상사의 조건>이란 책을 냈는데 어떠한 내용이 담겨있나.
▲ 상사란 이유로 가만히 앉아서 ‘공격 앞으로!’를 외치던 권위주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습니다. 아직도 그 향수에 젖어 있다면 무능한 상사, 허무한 인생이 되기 십상이죠. 존경받는 상사가 되려면 먼저 후배들을 존중해야 해요. 그러나 머리론 알고 있어도 실천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죠. 그래서 30년 동안 현장 후배들과 겪었던 에피소드 등을 책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끌리는 상사가 되는 노하우 TOP10

- 웃기면서 꾸중하라
- 낮추게 하려면 높여주어라
- 어려운 일에 앞장서라
- 직원들 마음을 즐겁게 하라
- 기름을 치지 말고 마음을 움직여라
- 부처처럼 용서하고 악마처럼 해고하라
- 때로는 잘하는 직원을 야단쳐라
- 의견을 비판하되 사람을 비난하지 마라
- 99% 믿고 1% 의심하라
- 먼저 사과하라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