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새 안주인은 ‘미세스 쓴 소리’

지난 2월 25일 새 대통령이 탄생했다. 10년 만에 바뀐 정권인 만큼 국민들의 관심도 상당하다. 이에 보답하듯 국내·외 언론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살아온 길을 집중 다루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통령만큼이나 국민들에게 관심 받는 이가 있다. 김윤옥(60) 여사가 그 주인공이다. ‘제1참모’이자 ‘정치적 동반자’라 불리는 대통령부인은 최고 정책결정자인 남편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내조해야 한다. 역대 영부인 중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 국민들에게 존경 받았던 이도 있었지만 여러 비리사건들에 얽혀 손가락질 받는 사례도 적잖았다. 그렇다면 김 여사는 어떨까. 그의 내조 스타일에 대해 알아봤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취임함에 따라 부인 김 여사도 ‘예비’란 수식어를 떼고 청와대의 새 안주인이 됐다.
후덕한 인상의 김 여사는 이화여대 메이퀸 출신으로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성격이 낙천적이고 소탈하다. 날카롭고 완벽주의의 이 대통령 단점을 잘 보완해왔다는 게 주변사람들의 전언이다.
화통하되 소탈한 성격의 김 여사는 그러나 위기가 오면 누구보다 강해진다. 간염에 걸려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 한탄강에서 맨손으로 야생장어까지 잡았을 정도다.
‘조용한 내조형’ 영부인
정치적 조언도 자주해 측근들조차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일명 ‘미세스 쓴 소리’라 불리는 그는 이 대통령이 최고경영자(CEO)로 있었을 때나 서울시장 때, 대통령선거 때에 참모들도 꺼려하는 충고나 쓴 소리를 거침없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들과 악수할 땐 얼굴을 쳐다보라’는 등의 세세한 조언이 좋은 사례다. 때문에 이 대통령은 김 여사에게 ‘집안 내 야당’이라고 타박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는 또 중요한 결정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심히 고민할 때 수시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경선 직후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놓고 당에 내분이 있을 때 ‘사퇴’쪽으로 가닥을 잡도록 한 사람도 그였다.
그렇다고 미국의 ‘힐러리’처럼 남편보다 앞서가는 활발한 내조자는 아니다.
김 여사는 남편에게 조언을 할 때 말 대신 대부분 편지나 문자메시지 등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거부감을 줄이는 형식으로 남편을 설득해왔다는 게 그를 잘 아는 이들의 설명이다.
한 측근은 “김 여사는 앞서 나가는 것을 제일 싫어하고 ‘영부인이 되면 어떤 일을 하고 싶느냐’는 질문만 나오면 입을 아예 닫아버린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열심히 역할을 다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퍼스트레이디 활동 시작
김 여사는 지난해 대선 뒤 한 달여 넘게 ‘퍼스트레이디 수업’을 받으며 정중동 행보를 보였다. 대통령 정책자문단 교수 및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관계자 등으로부터 받은 ‘특별과외’는 국정운영에 필요한 분야별 정책에 대해 이해한다는 취지로 이뤄졌다. 특히 이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를 기치로 당선된 만큼 경제정책 쪽에 더 많이 신경 썼다는 후문이다.
이밖에도 외교사절단 접견 때, 국제공식행사 참석 때의 예절과 화술 등 영부인으로서의 기본적 소양도 수업에 포함됐다. 평소 솔직하고 화통한 화법을 선보였던 김 여사는 KBS아나운서 이금희씨로부터 발음과 연설 때의 몸짓 등을 ‘전수’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 여사는 대통령과 함께하는 공식행사 외엔 바깥 활동을 최대한 줄이고 ‘조용한 내조’에 힘쓸 예정이다.
역대 일부 대통령들이 자식을 비롯한 친·인척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점을 감안, 친·인척관리에도 관심을 쏟을 예정이다.
다만 보육·복지문제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어 이 분야만큼은 적극 활동하겠다는 포부다.
김 여사는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주변사람들에게 “뭣보다 어머니와 같이 넉넉한 품으로 우리국민들을 사랑하고 통합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싶다. 어린이들이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얘길 자주했다고 한다.
대통령 부인 관련 업무를 전담할 제2부속실장에 박명순 경인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를 발탁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 실장은 “대통령이 정책의 비중을 주로 ‘경제 살리기’에 두고 있는 만큼 김 여사는 대통령이 미처 돌보지 못한 분야에 대한 활동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예로 김 여사는 대통령선거 때 재래시장과 복지시설 등 이 당선인이 시간에 쫓겨 찾지 못한 곳들을 찾아 조용하면서도 활발하게 선거
운동을 하며 이 대통령을 내조했다. 또 평소 목이 좋지 못한 이 대통령을 위해 따뜻한 차를 보온병에 담아 건네는 등 남편의 건강관리에
도 신경 썼다.
한편 일각에선 김 여사를 두고 ‘역대 가장 유머러스한 영부인’이 될 것이란 말도 들린다.
일례로 이 대통령에게 숨겨둔 자식이 있다는 소문에 김 여사는 “있으면 여기 데려와봐라. 바쁜데 일 좀 시키게…”라며 ‘통 큰 유머’로 세
간의 루머에 일침을 가했다.
또 하루는 김 여사가 셋째사위 조현범(한국타이어 부사장)씨에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 무엇인지 아시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사위가 “정치인이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김 여사는 “정치인은 빛이라도 나지. 그 뒷수발하는 정치인아내가 제일 힘든 직업이라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김 여사가 청와대 안살림을 맡아 어떤 활동을 보일지 벌써부터 기대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머니와 같은 품으로 국민들을 사랑하고 통합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김 여사. 그가 어떤 영부인상을 보이며 17대 퍼스트레이디로 자리매김할 지 기대된다.
# 전·현직 영부인들의 패션 스타일
대통령선거가 열린 지난해 12월 19일. 이날 이명박 대통령보다 눈길을 끈 건 세련된 옷차림의 부인 김윤옥 여사였다. 그날 김 여사는 한나라당의 상징 색 에메랄드빛 투피스에 리본 달린 흰색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그렇다면 김 여사는 대통령 임기 중 어떤 패션으로 대중 앞에 설까. 전·현직 대통령 부인들의 옷을 손수 지었던 전문가들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대 영부인들의 패션 뒤 담화에 대해 들어봤다.
◆ ‘세련된 감각’ 김윤옥
전문가들은 김 여사의 일상복 차림에 대해 ‘귀부인 스타일’이라고 평했다. 디자이너 박윤수씨는 그녀의 패션 감각에 대해 “매일 아침 나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 옷을 고를 정도로 취향이 분명하고 감각이 세련됐다. 다만 본인의 스타일을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 ‘과감한 의상’ 권양숙
역대 영부인 중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다. 양장·한복 할 것 없이 두루 잘 어울리고 원색부터 은은한 색까지 ‘척척’ 소화해 낸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권 여사의 양장은 비서가 백화점에서 사고, 한복은 3~4명의 디자이너가 만든다.
◆ ‘긴치마 선호’ 이희호
이희호 여사는 한복보다 양장을 좋아했다. 이와 관련, 디자이너 노라 노는 “이 여사는 편하고 실용적 스타일을 좋아했다. 체형이 날씬한 편이라 66사이즈에 치마만 약간 길게 입었다”고 회고했다.
이 여사는 한복도 편안한 개량식 옷을 즐겨 입었다. 한복디자이너 이영희씨는 “이 여사가 ‘청와대에선 불편하게 긴 한복치마를 입어야 하느냐’고 물어 보길래 편하게 입으시라고 치마의 폭을 좁히고 길이는 짧게 만들어 드렸다”고 전했다.
◆ ‘차이나 칼라’ 손명순
반면 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손 여사는 양장보다 한복을 더 좋아했다. 그러니 문민정부 후반부엔 손 여사도 양장을 주로 입었다. 특히 옷깃이 목까지 올라오는 차이나 칼라 모양이 많았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대통령부인이 사치품으로 비치는 한복을 입으면 여론이 좋지 않다는 조언에서였다.
◆ ‘최고 한복모델’ 김옥숙
전문가들은 김 여사에 대해 ‘육영수 여사 이후 옷을 가장 잘 입었던 대통령 부인’이라고 평했다. 김 여사의 한복을 맡았던 이영희씨가 “내 옷을 가장 잘 소화한 모델은 다름 아닌 김옥숙 여사”라고 말할 정도다. 이 씨에 따르면 김 여사는 직접 옷감과 바느질, 디자인을 고를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 ‘화려한 한복’ 이순자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인 이 여사는 지나치게 화려한 옷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금사로 수를 놓거나 치마에 금·은박을 넣기도 했다. 공식석상에 ‘당의’(조선시대 여성들이 저고리 위에 덧입는 옷)를 입고 나와 여론의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 ‘의상 나침반’ 육영수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인 육 여사의 패션은 지금까지 대통령 부인 옷차림의 ‘교과서’로 통한다. 이리자씨는 “육 여사는 목이 길어 한복을 입으면 뽀얀 목덜미가 돋보였다. 부잣집 마님들도 앞 다퉈 육 여사를 따라하고 싶어 했다”고 회상했다. 특히 육 여사는 흰색을 유난히 좋아해 하얀 저고리가 많았다고 한다.
육 여사가 박 전 대통령과 독일을 방문했을 때 크림색 원피스를 만들어줬다는 디자이너 노라 노씨는 “육 여사는 어떤 옷을 만들어도 우아하게 소화했다”고 전했다.
◆ ‘자주색 한복’ 프란체스카
이승만 초대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도 한복을 자주 입었다. 1950년대엔 고름 대신 브로치를 달거나 짧은 통치마를 입는 등 개량한복이 유행했다. 이리자씨에 따르면 프란체스카 여사는 보라·분홍·와인색을 좋아했다. 이씨는 “프란체스카 여사가 자주색 치마저고리를 좋아해 평생 입고 다니셨는데 입관할 때도 입으셨다고 며느리 조혜자씨가 말했다”고 전했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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