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조직 개편안 최고 숨은 공로자

복지와 여성문제 등을 총괄할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으로 박재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부혁신 및 규제개혁TF팀장(54)이 내정됐다. 그의 최근 행보가 정치권에 큰 시선을 끌고 있다. 그는 일찍이 인터넷을 통한 대포폰, 장기매매 등 사회적 논란에 휩싸인 쟁점들을 여과없이 지적하고 예방하는 데 한몫했다. 초선의원으로 ‘FM’적인 의정활동을 펼친 사람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을 맡아 일하면서 당내 경선과정 때 중립적 입장을 지켜온 인물로 알려졌다. 교수출신이란 이미지 때문인지 늘 소신 있는 조율자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더구나 인수위 정부 혁신 및 규제개혁 TF팀장으로 맹활약하면서 그 진가가 잘 드러났다는 게 주변사람들의 시각이다.
“정부 조직개편이 새 정부의 주도적 발상이란 지적과 우려엔 동감한다. 그러나 우리가 한 ‘기획’은 과거 노무현 참여정부가 했던 개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최근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내정된 박 팀장의 설명이다. 그는 새 정부 조직개편안 논란과 관련, 당내 어수선한 분위기를 이 같은 설명으로 추스렸다.
그가 정치권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MB정부’출범을 앞두고 인수위 정부혁신규제개혁 TF팀장이란 막중한 일을 무난히 처리하고 있는 까닭에서다. 이 당선인이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박 팀장을) 정무수석으로 염두에 뒀다”고 할 만큼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또 지난해 당 대표 비서실장 땐 강 대표 가까이에서 그의 입과 손발 노릇을 톡톡히 했다는 평이다. 밤낮이 없었고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늘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그는 어릴 적부터 성실한 삶이 몸에 밴 ‘바른생활 맨’이었다. 경남 마산에서 1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양친의 교육열 때문에 초·중·고 12년 동안 줄곧 개근을 했다.
대학시절 두 차례 수감생활
특히 초등학교 2학년 때 학질에 걸렸는데도 학교를 빠지지 않았다. 선친이 그를 이불에 둘러싸 업고 교실까지 데려다 준 일화가 있다. ‘결석을 해선 안 된다’는 철칙에서다.
또 서울대 재학시절엔 유신반대투쟁을 두 차례 한 경험이 있다.
1974년 11월 서울 명동성당 구국성명서 작성·배포사건과 1975년 4월 서울대 4.3가두시위사건으로 연루된 것이다.
그는 이 일로 짧지만 두 번이나 고된 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긴급조치 9호로 학생운동권이 와해되면서 어쩔 수 없이 학생운동을 접어야 했다.
행정개혁-재정문제 유독 관심
그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소유자다. 대학에선 경제학을, 대학원에선 정책학을 공부했고 사회로 나와 직장(성균관대학교)에선 행정학을 가르친 교수다.
학력만큼이나 사회생활도 변화무쌍했다는 얘기다.
그는 행정경험도 갖고 있다. 1970년대 행정고시에 합격, 수습사무관(경남도청, 의창군청)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 감사원, 재무부(현재 재정경제부), 청와대에서도 일한 적 있다.
공직을 거쳐 학계로 진출한 8년 동안 106편의 저서를 남겼다. 유독 예산, 조세, 감사 등 재정문제와 행정개혁, 정치개혁, 반부패 등 공공부문 전반에 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만큼 대내외활동도 다양하고 바빴다. 한국공공경제학회 총무이사, 한국정책학회 연구이사,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 감사 등 자의반 타의반으로 쓴 감투만도 헤아릴 수 없다.
교수시절엔 ‘일 벌레’
성균관대 교수로 있을 땐 ‘일벌레’처럼 살았다고 한다. 일주일에 1~2번은 아침 일찍 학교로 나가 밤늦은 시간에야 연구실에서 퇴근하는 날이 수년간 되풀이 됐다. 또 조교수 시절엔 입학처장, 부교수 시절엔 기획조정처장직을 맡아 대학행정 경험을 두루 쌓았다.
2004년 17대 국회 입문도 우연한 기회에서 이뤄졌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정책위원장으로 뛰고 있을 때였다. 1990년대 중반 청와대 서기관으로 일하면서 모셨던 박세일 당시 정책기획수석비서관(전 국회의원)과의 인연으로 한나라당 전문가 영입대상 비례대표에 추천, 발탁된 것이다. 정치적 ‘사부’인 박세일 전 의원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아 정계에 뛰어든 셈이다.
‘마행처 우역거(馬行處 牛亦去·말이 간 곳엔 소 또한 갈 수 있다)’
늘 좌우명 되새김질
박 팀장의 좌우명이다. 누군가가 이룬 일이라면 크게 여건이 다르지 않을 경우 나도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뜻이 있는 곳에 늘 길이 있다’는 말과 같다.
긍정적 사고방식을 추구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여력이 되면 학계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당의 사각지대를 대변 한다’는 소리를 자주 듣곤 한다. 당의 한 가운데 서서 모든 목소리를 듣고 조율하는 역할을 잘 해냈다는 소리다. 악단 지휘자처럼 하모니를 절묘하게 이뤄낸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자세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도 빛을 발했다. ‘중간자’적 언행으로 인수위 정부혁신 및 규제개혁 TF팀장을 맡았고, ‘MB'신임까지 얻었다.
평소 생활에서도 그의 품성은 잘 드러난다. 국회의원회관에 있는 자신의 의원실 공간을 비서진에게 내주는 보기 드문 일로 화제가 되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수행비서진 없이 자가운전으로 경기도 분당 집에서 출·퇴근하는 스타일이다.
그의 한 측근은 “박 팀장은 당의 논란수습과 갈등조율에 아주 뛰어나다”면서 “정책개발에 힘써온 데다 행정경험도 풍부해 중책을 잘 처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보건복지위원회 한나라당 간사로 뛰면서 ‘생명윤리법 윤리규정에 관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난자매매·장기매매 등 불법으로 이뤄지는 정황을 포착해 바로 잡는 일에도 앞장섰다.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대리모 문제, 불법 장기매매문제 등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 정부정책 마련에 반영시켰다.
정부조직개편안 놓고 설득작업
최근 그는 새 정부조직개편안으로 논란이 일자 정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세계 표준화)’를 따랐다고 강조했다. 당내 정부조직개편안 논란세력을 잠재우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서 일일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 개편안 설득에 나서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거대 정부화’ 우려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많다.
“정부는 거시적 차원에서 자원배분만 관여하고 미시적 영역에선 최대한 자율과 재량을 줄 것이다”며 조직개편안에 대해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또 ‘과거 10년(국민의 정부 5년, 참여정부 5년)의 흔적을 지우려한다’는 일각의 비판적 시각에 대해서도 고개를 가로 저었다. ‘확대해석’이란 말로 맞받아친다.
행정부·입법부 경력을 쌓은 대학교수 출신 박 팀장의 새 활동마당인 청와대에서의 또 다른 역할에 기대가 모아진다.
# >> 국정기획수석비서관 곽승준 교수 발탁
MB의 ‘신권력 맨’으로 통하는 정책 브레인
나라 정책전반을 아우를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에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48)가 최근 발탁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닻을 올리는 ‘이명박(MB) 정부’의 386세대 전문 브레인 중 한명으로 손 꼽히기 때문이다. 그는 한나라당 경선과 대선 때 정책개발을 주도하는 데 MB의 ‘왼손잡이’ 역할을 해냈다. 그는 MB가 1994년 정계입문 시절 세운 국제전략연구원(GSI)의 핵심멤버다. GSI의 정책실장을 맡았던 그는 정책공약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중추적인 ‘정책 맨’이었다.
2002년 MB와 인연
그는 2002년 MB가 서울시장으로 나설 때부터 ‘이명박 대열’에 탑승, MB와 인연을 맺었다. 특히 지난 대선에선 한반도 대운하 건설과 관련, ‘식수대란’'지구온난화 문제’ 등에 대해 반대여론이 확산되자 언론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대응해 시선을 끌었다.
그의 핸드폰 컬러링엔 힙합노래를 지정할 만큼 신세대의 젊은 감각을 지닌 인물로 통한다. 인수위 과정에선 새 정부조직개편의 ‘3인방’(박재완·박형준·곽승준) 중 한 사람으로 기둥구실을 도맡아 했다.
정책전반에 손을 뻗칠 그의 다음 행보에 궁금증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김현 기자 rogos0119@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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