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맞고서야 제자리 찾았다(?)”
“뒤통수 맞고서야 제자리 찾았다(?)”
  • 김승현 기자
  • 입력 2008-02-04 16:32
  • 승인 2008.02.04 16:32
  • 호수 719
  • 6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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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부패 전력자 공천신청 불허' 당규를 둘러싸고 한나라당 내홍이 잦아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지난 1일 새벽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중재자’가 싸움이 끝나기도 전에 “못해 먹겠다”며 뛰쳐나갔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박근혜 전 대표 사이에서 조율사 역할을 하던 강재섭 대표가 분노하며 당무를 보이콧한 것이다.

평소 원만한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진 강 대표의 잠적은 이 당선인 쪽을 작정하고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박근혜 전 대표와 가까웠던 그는 지난해 대선 정국에서 ‘배신자’란 말을 들을 만큼 ‘친박’ 진영과 소원해진 듯 했다.

강 대표의 이번 당무 보이콧은 당 공천심사위에서 부패전력자에 대한 공천을 배제키로 잠정 결정한 것에 대해 격노했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공심위 주변의 이 당선인 쪽 인사들의 행태에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고 울분을 토했다.

대선이란 큰 고비를 잘 넘었지만 여전히 길은 험난하다.

당 지도부와 이 당선인 쪽이 서둘러 머리를 맞대 사태수습에 나섰지만 후유증은 적잖을 전망이다.

강 대표 측근은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가 맺은 ‘공정 공천 원칙’과 신의를 공심위 일부 인사들이 훼손한 것에 대해 강 대표가 분노했다”고 전하며 “당 대표로서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보이콧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부패전력자 규정과 관련, “정치에 있어 당헌, 당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는 입장에서 이 당선인 쪽 인사들을 강하게 질타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잠적 직전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벼운 벌금형을 받은 것으로 공천접수를 안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 일단 접수해서 사안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새벽 밤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가진 심야기자회견은 강 대표의 입장이 극명하게 드러난 자리였다. 그는 이 당선인에게 자신과 이방호 사무총장 중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이 사무총장을 겨냥 “앞에서는 ‘예, 예'하고 뒤에서 뒤통수를 때리면 안 된다”고 비난하며 “두 번 뒤통수를 맞았다. 당이 봉숭아 학당도 아니고 절대 용납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대표가 논란의 중심에 선 데에는 강 대표와 이방호 사무총장, 김무성 의원의 3자 회동 결과도 한 이유다.


물거품 된 ‘대장부 합의’

지난 달 24일 세 사람은 만나 부패연루자 공천과 관련된 당 규정을 융통성 있게 운용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이를 ‘대장부 합의’라 일컬으며 “강 대표가 공천에서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안전책을 약속했으므로 공심위 구성에서 우리에게 불리한 구도인데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두 진영 간에 암묵적 합의가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친이(親李) 성향의 이 사무총장은 “당헌·당규대로 한 것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공심위는 당헌·당규를 뛰어넘는 것을 할 수 없다”고 기존의 원칙론을 강조했다.

강 대표는 이런 사태를 지켜본 뒤 “대표 못해 먹겠다”는 강도 높은 발언과 함께 당무에서 손을 놨다.

친박(親朴) 진영의 유승민 의원은 3자 회동에 대해 “당규나 법 이전에 사람의 도리문제가 있다”고 전제한 뒤 “세 사람이 어느 정도 합의까지 했는데 뒤통수를 치는 행위를 보고 격분하고 있다”고 내부분위기를 전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평소 강 대표의 성격으로 볼 때 이 정도로 당무를 내팽개칠만한 사람은 아닌데 상당히 화가 났던 것 같다”면서 “자신도 책임 있는 당헌·당규의 원칙을 저버린다면 강 대표 이미지에도 흠이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만든 사람이 누군데…”

강 대표 보이콧에 대한 평가는 친박과 친이 쪽의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일단 친박 진영은 자신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강 대표에게 “이제서야 본 모습을 보여준다”고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당무를 내팽개친 것은 의아
하다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이 당선인쪽에 서 온 것 아니냐는 인식도 일정 부분 밑바닥에 깔려 있다.

친박 인사는 “뒤통수 맞고서야 비로소 제 정신을 찾은 것 같다”고 강 대표의 최근 행보를 해석했다.

반면 이 당선인 쪽에선 오히려 ‘강 대표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다. 이 사무총장도 당규개정 가능성과 관련, “국민들의 눈에 오만으로 비칠 수 있다. 개정은 안 된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친이 쪽 인사는 “지금의 혼란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은 당 대표에게 있다”면서 “스스로 강행한 당규개정안을 이제 와서 ‘융통성’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최종 목표는 차기 대권”

이번 사태를 강 대표의 ‘큰 야망’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도 있다.

대선 뒤 한나라당 2인자 자리는 강 대표와 박 전 대표, 정몽준 이재오 의원으로 압축되는 상황이었다.

강 대표는 최근 공심위 등에 자신과 가까운 인사 등을 전진배치하며 세력 늘리기에 한창이었다. 다른 정치적 거물들보다 ‘사람 챙기기’가 인색했던 강 대표여서 이례적인 행보로 받아들여졌다.

강 대표는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로 유력시 되던 전재희 의원의 입각에 대해 “전 의원이 빠지면 경기가 흔들린다”며 반대의사를 내비쳐 인수위가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자신의 비서실장 출신인 박재완 의원의 청와대 수석비서관 기용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심위원장인 안강민 전 서울지검장과 인재영입위원장인 강창희 전 최고위원도 강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로 꼽힌다.

강 대표가 정치적 위상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당무 보이콧이란 돌출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얘기도 여기서 비롯된다.

강 대표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최종목표가 대권임을 감추지 않았다.

한 때 “대구·경북 출신으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세대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강 대표 신년인사에 반응 제각각
YS “잘 해야 한다”…DJ “잘 하시더라”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이 같은 날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이름을 거론했다.

YS는 당무 보이콧 중인 강 대표를 대신해 설 인사차 찾아온 찾은 나경원 대변인에게 “정당에선 정치가 법보다 우위다. 당규는 당이 정한 규칙에 불과하다”고 운을 뗀 뒤 “강 대표가 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때마침 정치자금 수수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 받았던 차남 현철씨가 한나라당 공천과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눈길을 끈다.

반면 DJ는 자신을 찾은 나 대변인에게 “대선 때 보니 강 대표가 잘 하더라”고 칭찬하며 “수고 많이 하셨다”고 관심을 내비쳤다. YS와 다른 반응을 보이는 대목이었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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