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정국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
향후 정국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
  • 이금미 
  • 입력 2007-01-17 09:31
  • 승인 2007.01.17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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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최후 승부수

-연임제 개헌-①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그전까지 차기 대권 향방에 온통 쏠려 있던 국민의 관심이 순간 노 대통령의 거취와 개헌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다. 임기 말을 맞아 레임덕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노 대통령은 개헌의 의제 설정과 함께 정치의 중심에 다시 섰다. 이게 노 대통령의 ‘노림수’였다면 그 목적은 달성된 듯 보인다. 적어도 5~6월까지 모든 국민은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개헌 주장이 지닌 진정성과 정략적 계산이라는 문제제기에 대한 성실한 답변으로, 노 대통령은 정치권과 여론의 싸늘한 반응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지난 11일 그는 개헌과 관련한 두 개의 ‘단서’를 달았다. 개헌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더라도 ‘임기 단축’ 카드는 쓰지 않겠다는 것. 또 정치권이 개헌에 찬성한다면 열린우리당 ‘탈당’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개헌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쏘시개 거리를 찾아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또 다른 비장의 카드가 계속해서 던져질 것이라는 의구심으로 연결되는 이유다.



노무현 대통령의 메모 스타일은 독특하다. 작은 메모지에 자신의 생각을 간략하게 적어 놓은 뒤 그것을 풀어서 말하는 스타일이다.

그동안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도 양복 안 주머니에서 작은 메모지를 꺼낸 뒤 연설하곤 했다.

지난 9일 노 대통령이 연임제 개헌안을 제안할 당시에도 양복 안 주머니에는 작은 메모지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날 노 대통령은 메모지에 있는 모든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연임제 개헌 이외에도 몇가지 안이 있었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

바로 이 작은 메모지에 정치권 관계자들과 기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메모지에 적힌 내용이 향후 정국의 풍향계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임제 개헌과 관련,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그 작은 메모지에 적힌 구상이 하나 둘 나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이유로 11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쏟아낸 노 대통령의 개헌 관련 발언도 이 메모지와 무관치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비록, 단서를 달긴 했지만 ‘임기 단축’과 ‘탈당’에 대한 언급은 정국의 판을 흔드는 ‘꼼수’로서 개헌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는 절절한 ‘메시지’다.


론 역전 기대
하지만, 이미 하룻밤 사이에 정치권에선 노 대통령이 개헌안 국회 부결시 대통령직 사퇴를 통해 ‘조기 대선’을 유도할 것이란 강한 의혹이 제기돼 왔던 터다. 한나라당 독주 양상을 보이는 대선구도를 임기 단축 카드로써 흔들려고 한다는 의구심의 발로다. 이는 노 대통령의 단서가 결코 정치권에 대한 ‘배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판단할 때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실현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한나라당의 반대로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고, 여론의 흐름도 현재 반대 의견이 우세하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왜 실현 불가능한 ‘개헌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는 것일까.

짚어볼 대목은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커다란 폭발력을 갖게 된 이유다. 바로 금년의 정치 일정을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데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우리당의 통합신당 시기 논의, 한나라당의 대선 경선 시기 및 선거인단 구성을 놓고 각 계파간 힘겨루기가 시작될 무렵에 노 대통령이 등장했다”면서 “특히, 한나라당의 경우 개헌 논의에 휩싸이면 공정한 경선 룰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선주자들의 이해관계를 교통 정리한다는 것은 요원한 과제”라고 진단했다.

이는 노 대통령이 꺼내들 제2의 의제로 거론되는 사안이다. 이미 한나라당 ‘빅3’ 캠프에선 노 대통령의 개헌 변수로 인해 발생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 ‘대응 매뉴얼’을 작성하고 있다. 대통령 자신이 개헌 발의 의지를 거듭 밝힌 이상, 개헌 절차가 추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노 대통령 역시 꿰뚫고 있다.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와 공고에 이은 수순은 국회에서 찬반을 묻는 의결 절차의 진행이다.

이는 힘이 빠져버린 개헌의 탄력을 되살리는 일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싸늘하게 식은 여론의 향배가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지만, 그 가능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불확실성 때문이다. 개헌론 공론화 과정에서 ‘여론의 역전’ 그 기대가 가능하다.

결국, 노 대통령은 야당이 개헌과 관련해 제기하는 ‘의혹’을 불식시키고 일부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반대 논리를 무력화한다는 시나리오다. 이를 위해 노 대통령은 다양한 형태로 대국민 설득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설득의 핵심은 자신의 진정성과 야당의 부당성을 알리는 데 무게가 실릴 것이라는 게 정가 소식통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노 대통령 말대로 개헌에 반대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면 개헌 반대세력은 명분도 잃고, 정국 주도권도 잃게 된다. “개헌은 차기 주자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고 줄곧 개헌에 대한 입장을 밝혀 온 한나라당 ‘빅3’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대목에서 “차기 지도자들도 중대한 국가적 과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토론해야 한다. 다음 정부에서 개헌을 논의한다고 날 밤 새지 말고, 주자라는 분들도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임해주면 좋겠다”는 노 대통령의 언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미 노 대통령은 머릿속에 차기 대선주자들의 개헌 방정식과 그 결과를 계산해 두고 있었던 셈이다.

혹시, 여론의 반전 조짐이 보인다면 한나라당 대선 주자 중 일부라도 개헌 논의에 동참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나라당 한 핵심 당직자는 이와 관련, “여당에 불리한 대선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판 흔들기일 뿐”이라 단정하면서도 “한나라당내 대선 주자간의 분열을 위한 노림수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진단했다. 일찌감치 노 대통령은 박근혜 전대표를 대상으로 ‘대연정’이라는 선례를 남긴 바 있다.

국민의 70%가 ‘이번’ 개헌에 반대지만, 50%는 대통령 임기 조정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짚어볼 대목이다. 다시 말해, 17대 대선 주자들은 자신의 차지가 될지도 모를 그 임기를 최소한 8개월 줄이겠다고 공약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의 임기는 둘째치고라도, 한나라당은 뭔지 모를 ‘정략’이라 진단한 개헌 카드라는 뜨거운 감자를 받아들고선 덥석 ‘반대’ 당론부터 확정시켰다. 이미 노 대통령이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노무현, 절반의 성공
“개헌 카드, 왜 지금이 적기인가?”에 대한 답은 묘연하지만, 그 당위성에 대한 설득은 기대치 이상이다. 물론, 절반의 성공은 실현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 지수를 높이는 기반이다. 애초 의도했던 대로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한 것이다. 여기에 대선 정국, ‘차기 대통령은 누구인가’에 대한 관심도는 낮아지기 마련이다.

지난 9일, 노 대통령의 대국민특별담화를 둘러싼 TV 생중계가 그 징후다. 사전에 철저히 보안을 지킨 탓에 그 전날까지 극소수만이 관련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TV 생중계도 두 시간 여 전에 해당 방송사에 요청했다. 게다가 국민적 관심과 정치권의 궁금증 등이 엄청난 사안임에도 대통령은 자신의 원고만 죽 읽어 내려갔을 뿐 일체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그동안 노 대통령이나 청와대에서 해오던 방식과 큰 차이가 있다는 게 청와대 주변의 중론이다.

사실, 9일 국회에선 ‘개헌’이라는 깜짝 쇼크에 구체적인 일정과 방법을 따질 겨를도 없었다. 이날 노 대통령은 국회의원의 임기를 어떻게 맞추겠다는 것인지, 다시 말해 몇 달 차이를 두고 하겠다는 것인지, 두 선거를 동시에 하겠다는 것인지 공표하지 않았다. 평소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기자들의 질문에도 농을 섞어가며 말하기를 즐겨하는 노 대통령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던 탓에 국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임기 말까지 정치 의제를 독점하겠다는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난무했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대통령이 논의의 중심에 서겠다는 강렬한 의지의 표현이라는 판단에서다.


‘원 포인트’ 넘어 대대적 수술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주머니에서 꺼내들 제3의 의제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 여권 한 고위 관계자는 “9일 개헌 제안 이후 정치권은 대통령의 다음 카드와 로드맵을 계산하느라 분주했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지면에 반영했다”면서 “그 중에 노 대통령은 ‘탈당’과 ‘임기 단축’만을 꼬집어 언급했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난무하는 설 중에서 노 대통령은 언급하지 않은 거국 중립내각 구성 및 남북정상회담 등은 다음 카드로서 여전히 노 대통령의 주머니에 들어 있다을 것이라 가능성이다.

한편, 개헌이 공론의 장에 나오면 ‘원 포인트’ 개헌을 넘어 대대적인 수술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여권 주변의 공통된 견해다. 국민의 기본권 및 국가권력 구조가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된 구문이다. 구체적으로 대통령의 사면권 폐지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는 한나라당이 정부ㆍ여당의 ‘정치공작 가능성’이라 진단하고 이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대책기구’를 만들기로 한 까닭이기도 하다.

이금미  nicky@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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