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늙어서 거동조차 힘든 지경… 좀 쉬고 싶다”

탈북자들 사이에 대부로 통하는 인물이 있다면 과연 누굴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83)일 것이다.
황 위원장은 1997년 4월 남한으로 망명, 북한 실상을 남한에 알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해왔다. 탈북자들은 그를 중심으로 단체를 만들어 탈북자들의 현실과 북한문제에 대해 조직적인 활동을 벌여왔다.
황 위원장은 특히 대북지원과 북핵문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북한의 속셈에 남한이 놀아나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부 보수파 인사들은 반북성향인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황 위원장의 이 같은 주장을 활용하기도 했다. 때문에 황 위원장은 정체불명의 좌파 괴한들에게 협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대외활동을 계속했다. 남한이 북한의 속임수에 속절없이 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남북화해무드가 조성됐을 때도 그의 이런 활동덕분에 남한은 북한에 대해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황 위원장의 건강이 급격히 쇠약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탈북단체들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에 황 위원장 근황을 살펴보고 탈북단체들의 계획을 점검해 보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다. 귀가 많이 어두워졌으니 좀 크게 말해 달라.”
황 위원장은 지난 16일 본지와의 전화통화 중 이 말을 수시로 되풀이 했다. 그의 목소리는 지독한 감기에 걸린 것처럼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 한마디 하고 숨을 고르고, 또 한마디 하고 다시 숨 고르기를 되풀이했다.
그의 목소리에선 건강이 쇠약해진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이처럼 기력이 쇠약해자 와병설이 들린다. 일부에선 ‘치매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하지만 전화상이나마 대화해본 결과 치매증상이 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황 위원장은 “내가 이제 너무 많이 늙어서 말하기도 힘들다.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통화하고 싶다”고 말한 뒤 근황에 대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다음은 황 위원장과의 통화내용 전문이다.
- 목소리를 들어보니 건강이 많이 안 좋은 것 같다.
▲ 건강이 특별이 나쁜 건 없다. 늙어서 힘이 없으니 말하는 것도 힘들다. 요즘엔 감기기운도 있는 것 같아 더 힘들다.
- 최근 근황에 대해 말해 달라.
▲ (‘뭐라고 하는지 잘 안 들린다. 좀 더 크게 말해 달라‘고 주문한 뒤 답변) 나야 늘 똑같다. 특별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요즘엔 조용히 집에서만 지내고 있다. 그래서 지금 별로 할 이야기도 없다. 차라리 나 같은 사람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이야기를 듣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 현재 옆에서 누가 돌봐주는 사람이 있나.
▲ 돌봐주긴 누가 돌봐주나. 특별히 그런 사람 없다. 예전과 똑같이 살고 있다.
-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 (수차례 다시 말해 달라고 주문한 뒤 답변) 일절 활동하지 않고 있다. 말할 힘도 없는 늙은이가 어디 가서 무슨 활동을 하나. 앞으로도 대외활동은 안 한다. 집밖에 나설 기력도 없다. 탈북자단체 활동은 그쪽(탈북자동지회)에 가서 물어보라.
- 대선 때 탈북자들이 이명박 지지선언을 했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잘 안 들린다. 다시 말해 달라고 재차 말함) 그건 나와 아무 관계없는 일이다. 요즘 사람들이 하는 일을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자기들끼리 그렇게 하는 것이지 내가 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없다.
-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해 나름대로 견해를 밝힌다면.
▲ 모른다. 눈이 어두워 TV도 잘못 보고, 신문도 잘못 본다. 또 귀도 어두워 라디오도 못 듣는다. 도대체 뭘 알아야 이야기를 하지. 나는 더 이상 말할 게 없다.
- 북한민주화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 그냥 내 이름만 걸려 있는 것일 뿐이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내용이 없다.
- 일부에선 건강이 위독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 나이가 많고 죽을 때가 됐으니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지. 하지만 지금 특별히 아픈 곳은 없다. 말을 많이 했더니 목이 아프다. 이제 전화를 그만 끊어야겠다.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황 위원장과는 이 말을 끝으로 전화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의 측근인사로 알려진 자유북한방송의 김성민 국장은 “위원장님과 연락해본지가 오래됐다. 그동안 방송일이 바빠서 연락해보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위원장님의 연세가 여든 셋이기 때문에 몸 상태가 어제 오늘 다를 것”이라고 걱정했다.
김 국장은 “현재 위원장님의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지인을 통해 전해들었다. 하지만 위원장님의 뜻을 우리가 잘 알기 때문에 위원장님이 활동을 안 하신다고 해도 탈북자단체들은 그 뜻을 그대로 이어갈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황 위원장이 이끄는 북한민주화위원회는 대선직전인 지난해 12월 6일 남한이 북한에 지원하는 쌀 배급현황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 단체는 1998년 이후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 2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9명(7.6%)만 지원 쌀을 배급소에서 받아먹어봤다고 답했다며 대북 쌀 지원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이 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통일전선부 출신이란 한 탈북자의 말을 인용, “남한이 지원한 쌀이 항구에 도착하면 90%이상이 군비축미 창고와 군부대로 운송된다. 10%이하가 군수경제를 담당한 제2경제위원회 산하 기관. 기업소와 당·정 기관에 배분되고 있다"며 대북 쌀 지원이 실제목적과는 전혀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황장엽 위원장, 아들 이용한 북한 협박에 “각오한 일”
김현식 미국 조지메이슨대학교 연구교수는 지난해 7월 자신의 저서인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이란 책자를 통해 황 위원장이 외아들을 볼모로 삼은 북한요원들로부터 북한으로 돌아오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밝혀 주목을 끈 바 있다.
아들 경모씨는 김일성종합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주체과학연구원 등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한국으로 탈북 했다가 2003년 미국으로 건너가 연구·강연활동을 하고 있는 김 교수는 책에서 자신이 2000년대 초 황장엽씨의 통일정책연구소에서 함께 일하던 어느 날, 황씨가 몹시 당황해하며 아들과의 통화소식을 알려줬다고 밝혔다.
북한요원은 이때 통화에서 "황장엽 비서동지, 아들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비서 동지께서 마음 바로잡고 이쪽으로 넘어오시면 아들도 살고 모든 일이 잘 풀리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답 하십시오, 얼른 말씀하셔야 합니다"라고 했다는 것.
황 위원장 망명 뒤 경모씨의 생사에 관해선 많은 소문들이 떠돌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경모씨가 1997년 아버지가 망명한 직후 중국 국경 쪽으로 달아나다 뒤쫓던 국가보위부 요원들의 총격에 숨졌다는 것.
하지만 아직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아 궁금증만 증폭되고 있는 상태다.
황 위원장의 측근들은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위원장님은 이미 각오한 일이라고 말할 뿐 더 이상 아무 언급이 없다”고 전한다.
아들에 대한 질문에 황 위원장은 “그런 질문은 하지 말라. 아무 필요도 없는 개인적인 부분을 왜 자꾸 알려고 하나. 남한에 있는 사람이 북한에서 몰래 벌어지는 일들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황장엽 위원장은 어떤 인물
김일성종합대학을 거쳐 1949년 모스크바종합대학에서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을 공부했다. 1954년 입국,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958년 노동당 핵심지위로 발탁되었다. 그 뒤 1965년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에 임명됐고, 김일성유일사상체계 확립에 관여했다.
그리고 김정일을 후원했다.
1970년 당중앙위원, 1980년 당비서, 1984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1987년 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 등을 거쳤다. 1997년 2월 북경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한 뒤 필리핀을 거쳐 1997년 4월 서울에 도착했다.
망명 뒤엔 각종 강연을 통해 김정일 정권의 타도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김대중 대통령시절에 진행된 햇볕정책의 영향으로 그의 주장은 정부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황 위원장은 미국의 보수인사들과 함께 김정일 정권 타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권상황을 폭로하는 활동을 펼쳐 국내 보수세력으로부터 지지를 얻었다.
이 때문에 2004년 2월엔 서울에 있는 지원자의 사무소에 빨간 페인트로 더럽혀진 그의 사진이 협박문과 함께 놓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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