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멍석’ 깔아주기인가.”
지난해 12월28일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의장의 회동을 두고 구구한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사사건건 자존심을 걸고 정면충돌을 서슴지 않았던 여권 두 대권주자의 만남이 정치권에 던지는 충격이 큰 만큼, ‘중대 결심’의 발로가 아니냐는 풀이다. 열린우리당 일각에선 ‘김근태-정동영-정운찬’으로 이어지는 삼각 연대설이 회자되고 있다. 최근 들어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정 전총장의 움직임이나, 이에 화답하듯 ‘덕담’을 건네는 두 사람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는 것. 사수파로 분류되는 우리당 모 의원 역시 “전당대회 준비위원회가 구성 중이긴 하지만 의제 설정 및 신당 추진 일정 등 ‘통합신당 플랜’이 짜여 있다는 얘기가 일찌감치 돌았다”고 전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회동 직후 우리당 주변을 맴돌고 있는 통합신당 시나리오의 일정과 방향도 구체적이다. <일요서울>은 ‘김근태·정동영’ 감독, ‘정운찬’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통합신당’ 시나리오를 따라가 봤다.
대권주자로서의 위기의식이 두 사람을 연대로 이끌었다는 데 이견은 없다. 이들의 복심엔 한 자릿수를 전전하고 있는 낮은 지지율로 인한 압박감이 자리하고 있다. 대선 주도권을 여론조사에서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는 한나라당 대권주자들과 고건 전총리에 뺏긴지도 오래다. 전·현직 당의장으로서 우리당의 실패가 곧 이들의 책임으로 귀결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당에 무한책임을 갖는 우리”라는 공동 합의문의 표현도 두 사람이 직면한 현재의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두 사람의 암묵적 합의하에 추진되고 있는 ‘통합신당’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당’으로 규정한 이상, 신당 추진의 동력이 더 위축되기 전에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는 게 양측의 공통된 견해다. 대내외적으로 직면한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새로운 판을 짜는 것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환경을 감안, 회동 전날 치러진 의원 워크숍에서 합의한 전대 준비 구성에 있어 두 사람의 ‘교감’이 개입됐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사사건건 마찰을 빚어온 두 대권주자를 한 테이블에 불러 모을 수 있었던 건 이미 치밀한 ‘물밑 조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풀이다.
▲당의장과 최고위원 분리 선출 ▲합의 추대 형식으로 새 의장 선출 ▲당 해체 선언이 그것이다. 통합신당 시나리오의 구체적 일정과 방향은 1단계, 전대 통한 당 해체 선언(2월)⇒2단계, 통합신당 창당(5월)⇒3단계, 대선후보 경선(9~10월)이다.
두 사람의 우산 아래 포진하고 있는 의원들의 경우 드러난 규모만 100여명에 이른다. ‘당 해체 선언’시 비례대표 의원들의 거취 문제도 이미 정리됐다는 게 정설이다.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보여준 비례대표 의원들의 순차적 합류 형식이 그것이다.
1단계 시나리오는 두 사람이 당내 최대 지분을 보유한 주주라는 점에서 무난한 ‘통과’가 예상된다.
야당 경선 흥행 맞불 전략
“신당 출범은 5월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2단계 시나리오는 ‘신당 조기 출범론’이 당 안팎에서 역공을 받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당내에선 통합신당 추진의 중심세력으로 꼽히는 중도노선 성향의 의원들은 ‘속도 조절’을 요구해 왔던 터다. 당 밖의 여의치 않은 사정 때문이다.
정치개편의 한 축인 민주당이 우리당의 ‘헤쳐모여식 신당 창당’에 반대하고 있으며, 한화갑 전대표의 의원직 상실에도 겉으로는 태연한 모습이다. ‘호남’을 볼모로 한 민주당의 ‘뜸들이기’다. 통합의 방법을 놓고 상당 기간 진통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게다가 한나라당도 나서 ‘인위적’ 정계개편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통합신당 출범을 위한 국민적 여론을 조성하는 데에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른 바, ‘신당 여론몰이’ 기간이다.
최악의 경우, 사수파와 ‘합의 이혼’에 이른다 해도 ▲민생현안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부동산 등 정책 실패에 대한 여당으로서의 책임 있는 반성의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이와 동시에 ‘호남’과 ‘충청’을 아우르는 지역정서 자극도 신당 여론몰이 전략으로 거론되고 있다. 외형적으로 ‘열린우리·민주당·국민중심당+고건+일부 친노그룹’과 ‘+a’ 세력의 결집이다. 정운찬 전서울대 총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강금실 전법무부 장관 등도 영입 대상이다. ‘+a’의 경우, 학계, 언론계, 법조계, 여성계, 종교계 등을 총 망라한 영입 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통합신당파 주변에선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 CEO 그룹의 대거 등장에 대한 기대도 크다. 노선에 있어선 ‘우향우’, 합의문에 드러난 ‘미래세력’이 그들이다.
이와 관련, 통합신당파로 분류되는 모 의원은 “6월로 예정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맞춰 통합신당에 합류하는 외부 영입 인사들의 윤곽이 드러난다면, ‘흥행 맞불’을 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언론의 관심이 자연스레 여론 주도로 이어질 것이며, 대선 주도권을 되찾아올 반전을 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 ‘기득권 포기 선언’ 임박
3단계 시나리오엔 “대선이 임박한 시기에 후보를 선출해도 늦지 않다”는 경험적 여유가 녹아 있다. 97년 대선에서 DJP(김대중ㆍ김종필) 연합과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ㆍ정몽준 후보 단일화의 학습 효과다. 핵심 키워드 역시 ‘극적 선출’.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국민참여경선제)를 통한 이벤트 효과의 극대화다. 막판 후보들의 경선 포기와 함께 ‘될 사람’에게 세를 몰아준다면 대선 여론몰이에서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짚어볼 곳은 김 의장과 정 전의장 주변에선 합의문에 ‘기득권 포기’ 문구까지 넣으려 했다는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참패로 마감한 5·31 지방선거 이후 우리당 내에선 두 사람의 ‘대선 불출마’요구가 부쩍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물론, 기득권 포기는 합의문에서 제외됐다. 입각 정치인으로서 대통령 수업까지 받은 대권주자에 있어 뒷걸음질 치는 모양새가 어떠한가에 따라 향후 정치적 행보와 그에 따른 운신의 폭을 좌우한다는 측근 의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차기 정권 총리를 매개로 차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킹메이커’로의 방향 전환이다. 그 중심엔 “정운찬 전총장이 자리하고 있다”는 가설이 존재한다. 김 의장과의 잦은 만남과 정치적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정 전총장의 최근 모습이 가설의 설득력을 더해준다. 특히 정 전총장은 얼마 전 “나는 디사이시브(decisive)한 사람이다. 나는 승산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라는 간략한 말로 정치권에 한 발을 걸쳐놓은 모양새를 만들어 냈다.
이와 관련,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 전총장의 제스처는 끊임없이 학자 출신 정치인의 한계로 지적돼 온 과단성(decisiveness)의 부족에 대한 사전 대응 성격이 짙다”고 했다. 치밀한 계산에 의한 언급이라면, 당내 최대 지분을 보유한 김근태·정동영 두 사람의 전폭적인 지원과 기득권 포기에 대한 우회적 압력인 셈이다.
‘충남 공주’ 출신이라는 매력적인 상품 가치, 경기고-서울대-경제학 박사로 이어지는 ‘경제 전문성’에 대한 기대가 증폭되는 가운데, 차기를 꿈꾸던 김근태·정동영 두 사람이 정 전총장을 위해 ‘멍석’을 제대로 깔아 줄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 정계 입문한 학자들의 현주소 .. “치열한 문제의식과 권력투쟁 부족”
여권에선 온통 ‘정운찬’ 얘기다. 열린우리당의 바통을 이어받아 곧 꾸려질 통합신당의 구원 투수로서 그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 전직 서울대 총장과 경제학 교수의 조합이 그려내고 있는 개혁적 경제학자 이미지에 대한 높은 기대치다.
하지만 그가 경선을 통과하고 여권 최종 후보로 나섰을 때의 ‘파괴력’에 대해 ‘갸우뚱’하는 정치권 인사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학계와 정계 사이에 놓인 다리를 건너 대권 주자로 부상한 역대 정치인들 중 성공한 사례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고배를 마셔야 했던 첫 주자는 노태우 정권의 노재봉 전총리. 그는 87년 직선제 개헌을 발판으로 서울대 교수에서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무총리를 거쳐 대권 주자 반열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상대는 김영삼(YS)·김대중(DJ) 두 거물 정치인. 노 전총리는 ‘정치 9단’들의 공세에 직면, 출사표도 제대로 던지지 못하고 대망론을 접고 말았다.
서울대 교수였던 조순 전경제부총리의 대권 도전기도 빼놓을 수 없다.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하며 노태우 정권하에서 지명도를 쌓은 그는 95년 DJ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민선 첫 서울시장 자리를 꿰찼다. 이후 선택한 ‘DJ와의 결별’은 꿈을 접는 계기가 됐다. 97년 ‘꼬마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으나 자금과 조직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랐고,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한나라당으로 둥지를 옮겼다.
YS가 영입한 두 명의 학자도 뒤를 잇는다. 서울대 교수 출신의 이수성·이홍구 전총리가 그들이다. 번갈아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후 ‘신한국당 9룡’에 편입됐으나, 당내 경선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그렇다면 학자 출신 정치인들의 대망론이 현실 정치에서 통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당의 한 중진의원은 “정치는 치열한 문제의식과 권력투쟁을 통해서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면서 “평생 학자로 살아온 이들이 정치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빅3’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손학규 전경기도지사가 3선의 전직 국회의원임에도 상대 후보측으로부터 ‘과단성 부족’과 ‘모범생 증후군’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은 짚어볼 대목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정 전총장의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될 경우, 같은 학자 출신인 손 전지사와의 대결 양상이 벌써부터 관전 포인트로 부상 중이다.
주목할 대목은 또 있다. 비록 대권 도전에 실패했지만 대선에 나섰던 학자 출신 정치인들의 정치적 역량이 아직까지 현실 정치 언저리에 닿아 있다는 것. 대표적인 보수이론가인 노재봉 전총리는 노무현 정권의 국민 대표성 상실과 금강산관광 중지 요구 등의 내용을 담은 ‘비상시국선언문’에 서명하는 등 왕성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다. 조순 전부총리와 이수성·이홍구 전총리는 박세일 전의원이 이끌고 있는 한반도선진화재단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편, 대구·경북지역에선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참모인 안희정씨가 ‘낙동강 전선 후보’를 언급한 이후 이수성(칠곡)·이홍구(상주) 전총리가 여권의 대선 후보로 나설 수 있다는 소문이 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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