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의 위신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전군표 전국세청장이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되면서 조직의 명예도 산산조각이 났다. 마지막까지 “그래도 믿어보자”며 서로를 위로하던 국세청 직원들도 전 전청장의 구속 소식이 알려지자 끝내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무덤과 같아진 국세청 분위기를 되살리기 위해 나선 해결사는 한상률 국세청 차장이었다. 청와대는 조직 안정 등을 이유로 한 차장을 국세청장 후임으로 내정했다.
하지만 전직 국세청장이 ‘상납 비리’의 주범으로 드러난 만큼 국세청의 명예회복에는 시간이 다소 걸릴 전망이다. 한 내정자가 내부 분위기를 잘 추스르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위기의 국세청을 되살리기 위해 한상률 국세청 차장이 긴급 투입됐다.
한 내정자는 전 전청장의 구속으로 날개를 잃은 듯 추락한 조직의 사기를 살리는 동시에 종부세 징수 등 산적한 세제 현안도 처리해야하는 부담을 안고 인사청문회에 임하게 됐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한 내정자 지명 이유와 관련 “종합부동산세 등 중요한 현안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다”며 “국세청이 흔들리고 있어 조직안정 차원에서도 한 내정자가 적격이었다”고 설명했다.
국세청 안팎에선 외부 인사가 아닌 내부 인사가 승진한 것에 대해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전 전청장의 구속 여파로 국세청 개혁 문제가 대두되면서 한 때 외부인사 영입설도 거론됐기 때문이다.
자타가 인정하는 ‘조사통’
한 내정자는 국세청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조사통으로 평가받는다. 국세청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정통 국세공무원 출신이다.
1978년 행정고시 21회로 공직에 입문했으며 중부청 조사2국장, 서울청 조사4국장, 본청 조사국장 등 세무조사 분야에서 주로 활동했다. 국세청이 지난 2005년 4월 사상 처음으로 론스타 등 6개 외국계 펀드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을 당시 국세청 조사국장으로 실무를 총괄하면서 거액의 세금을 추징하기도 했다.
1999년에는 세정개혁기획단 총괄팀장으로 세정혁신 실무를 도맡아 처리할 정도로 기획력 또한 인정받고 있다.
서울지방국세청장으로 재직할 때는 직원들과의 그룹미팅을 통해 불필요한 업무를 과감하게 없애는 ‘일 버리기 운동’을 추진하는 등 실무 감각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국세청 실무를 총괄해 왔던 만큼 조직을 재건하는데 최적임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내정자는 국회 인사청문회 등의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12월 중순경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오로지 섬기는 마음으로”
상황이 어려운 만큼 한 내정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막중하다. 손상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고 실추된 국세청의 위상을 하루 빨리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연말까지 처리해야 하는 현안도 산적해 있고 국세청 개혁 방안도 준비해야 한다.
국세청은 이미 조사 등 취약 분야를 대상으로 금품수수 부조리에 관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 새로운 청장이 취임하는 즉시 추진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한 내정자가 이와 관련된 여러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며 “청장으로 공식 임명되면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내정자는 향후 계획과 관련 “최대한 몸을 낮춰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며 “우선 인사청문회를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어 “국세청의 혁신을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면서 “납세자를 섬기는 마음이 우선이다”고 덧붙였다.
조직 안정이 ‘급선무’
한 내정자의 일성에 국세청 안팎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30년 가까이 국세청에서 잔뼈가 굵은만큼 내부 신임이 두터운 것도 한 이유다.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전임 청장의 구속으로 조직 곳곳이 여전히 흔들리고 있고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아 단명 청장에 그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임기에 연연하기보다는 일단 흔들리는 조직을 바로잡아 실추된 이미지를 바로 세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한 내정자는 자신의 공직 생활 중 국세청 소득세과장 재임시인 1999년부터 2년여 동안 국세행정개혁기획단 총괄팀장을 맡았던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꼽는다. 당시 개혁 내용이 사회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내부적으로도 한단계 발전시켰다는 공감대를 얻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 국세청의 수장으로 내정된 한 내정자가 또 하나의 ‘보람거리’를 일궈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남석진 nsj@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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