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불·암 40년 연기인생 담은 에세이 출간
최·불·암 40년 연기인생 담은 에세이 출간
  • 박지영 
  • 입력 2007-10-02 14:12
  • 승인 2007.10.02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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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리 김 회장처럼 살다 가고 파∼”

‘대한민국의 아버지상’으로 통하는 탤런트 최불암(67)이 자신의 40년 연기인생과 숱한 일화들을 정리한 에세이집 <인생은 연극이고 인간은 배우라는 오래된 대사에 관하여>를 펴냈다. 이 책은 잠시 정치에 발을 들여놨던 시기를 제외하면 언제나 브라운관을 지켰던 그의 인생관과 연기 철학,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 또한 최불암은 이 책을 통해 촬영현장에서 벌어진 뒷이야기와 배우 및 예술가들과의 교감,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의 술자리에 얽힌 에피소드 등을 비롯 정·재계 유명 인사와 겪었던 일화를 한꺼번에 쏟아냈다. 현재 만화가 허영만 원작의 드라마 ‘식객’ 촬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최불암. 그의 배우인생 40년을 엿봤다.


하루는 최불암이 영화를 보러 갔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손쉽게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최불암은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곧 있자 최불암이 다시 나와서 매표소로 가는 것이었다. “표 한 장 주슈” 다시 또 표를 구입한 최불암은 씩씩 거리며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있어 잔뜩 화가 난 최불암이 다시 매표소로 와 표를 요구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매표소 직원은 “왜 자꾸 표를 사시는 거예요?”라며 최불암에게 물었다. 그러자 최불암 왈 “들어갈 때마다 자꾸 어떤 아가씨가 내 표를 찢잖아!”

90년대초 인기를 끌었던 ‘최불암 시리즈’ 중 한 에피소드다. 짧으면서도 위트와 반전이 넘치는 이 시리즈는 ‘한국의 아버지’ 최불암을 한층 더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다가서는데 일조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40년 연기 인생을 되돌아보는 텔레세이 <인생은 연극이고 인간은 배우라는 오래된 대사에 관하여>를 발간해 이목이 집중된다. 텔레세이는 텔레비전과 에세이의 합성어로 TV가 시청자의 눈을 바라보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듯 책으로써 지나온 시간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뜻이다.


연기 인생 40년

“드라마 <궁> 제작진이 저한테 1회만 출연해 달라고 하면서 결례인 듯 여기더라고요. 전 흔쾌히 응했어요. 제가 필요하다면 단 1회 출연뿐 아니라 신체 일부분만 촬영한다 해도 언제든 응할 용의가 있어요. 그게 배우죠.”

젊은 날 최불암은 노역을 주로 했다. 빛나는 역은 아니지만 정말 필요한 배역이라면 기꺼이 그는 노역으로 분장해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처음 출연한 KBS드라마 <수양대군>에서도 그는 김종서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1967년, 그때 그의 나이는 불과 스물일곱 밖에 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1969년, MBC 개국과 함께 MBC에 새 둥지를 튼 최불암은 연기 인생에서 잊지 못할 두 개의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다. 그의 표현대로 하나는 그에게 인기를 얻게 해준 출세작이었고, 또 하나는 평생을 자부심으로 삼을 만한 작품이었다. 최불암은 이 두 드라마에 인생을 다 바쳤다고 표현했다. 바로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다. <전원일기>는 1000회를 넘어
20년 넘게 방송됐다.

두 작품과 관련, 최불암은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며 “두 작품은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두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따스함과 편안함을 줬다”며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를 말할 때면 가슴이 뭉클하다”고 덧붙였다.


“담배 좀 줄이시죠”

30대이던 최불암은 당시 수사반장인 박 반장 역을 맡아 세간의 화제를 뿌리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에 따르면 <수사반장>이 방송될 때 순박했던 시청자들은 방송국으로 사건 해결을 직접 의뢰해 올 정도였다. 박 반장은 늘 약자와 소외된 자의 편에 서는 캐릭터로 시청자와 함께 해 연기자로서 가장 큰 덕목인 친밀감을 대중의 가슴에 심어줬다.

당시 영부인이었던 고 육영수 여사와의 통화도 <수사반장>이 방송 중이던 1972년에 이뤄졌다. 박 반장으로 열연했던 최불암의 트레이드마크는 트렌치코트와 하얀 손수건 그리고 상황 전환용으로 사용된 담배 네 개피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7시께 최불암은 뜻밖의 손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됐다. 청와대 부속실이라고 하면서 집으로 전화가 걸려온 것. 바로 고 육영수 여사였다. “저 육영수예요. 안녕하셨어요, 최불암씨.”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 말에 최불암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곧이어 육 여사는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박 대통령이 <수사반장>에서 박 반장이 담배를 물기만 하면 따라서 피운다”며 “저 양반이 담배 피우는 건 괜찮은데, 국민들도 따라 피울 테니까 담배 피우는 장면을 좀 줄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는 것. 그 뒤 <수사반장>에서는 박 반장의 흡연 모습이 사라졌다고 한다.


정주영, <전원일기> 출연할 뻔

“<전원일기>에 정주영 회장이 20분 동안 출연해 (양촌리) 김 회장인 나와 이야기하는 장면을 넣자고 해서 MBC는 수락했는데 그쪽 회사 사장단 반대로 녹화 2~3일 전에 불발로 끝났어요.”

이와 관련, 최불암은 ‘정주영을 읽은 일곱 가지 코드’에서 “덜 알려졌지만 1980년대 후반 즈음에 정 회장은 직접 <전원일기>에 출연해 농사철학에 대해 얘기하겠다고 할 정도로 순수한 마음을 가진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정 회장과의 일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89년, 현대 사장단과 학계 교수진과 함께 중국을 방문한 자리였다. 정 회장은 한 음식점에 걸린 한문 구절을 유심히 읽고 “뭔 글자가 빠졌구먼, 엉터리야”라고 지적했다. 같이 간 수많은 교수들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거였다. 그러던 중 중국 교수가 유심히 살펴보더니 “정 회장의 말이 맞다”며 실수를 인정했다.

이에 대해 최불암은 새삼 정 회장의 안목에 놀랐다고 술회했다. 또 정 회장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같이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하며 전 국토를 손바닥 읽듯이 소개하는 데 한번 더 놀랐다고 한다.

그는 “정 회장은 질박하고 소박하고 투박하고 인내와 끈기가 있으며 긍정적이고 진취적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이라며 “술수나 임시방편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깨닫는 바를 기다리는 선비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최불암은 또 잠시 정치로 외도했을 때 함께했던 정주영 회장과의 특별한 인연도 털어놨다. 그는 정 회장, 소설가 김주영씨와 함께 셋이서 술을 마신 후 만취한 나머지 함께 잠들었다. 잠에서 깬 최불암은 주인에게 ‘어떻게 된 상황이냐’고 물어보니 정 회장이 두 사람을 데려와 물을 먹이고 자리에 뉘어줬다고 한다.

그는 이 책에서 고 정 회장의 따뜻한 인정과 학식, 예술, 기업가 정신 등을 알 수 있는 7가지 사례를 소개하는 등 정 회장에 대해 자세히 언급했다.


‘파∼’가 나오게 된 이유

<전원일기> 양촌리 김 회장의 웃음소리가 탄생한 사연도 재미있다. 한때 젊은 층에서 ‘파’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유행한 ‘최불암 시리즈’에 대해 그는 “그 웃음소리는 인위적으로 창조해 낸 것이 아니라 옆에 어머님(정애란)이 계시기 때문에 껄껄거리며 큰 소리로 웃을 수 없어 조심스럽게 웃으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원일기>의 김 회장은 최불암에게 있어 특별하다. 극중 인물인 김 회장이 최불암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캐릭터인 점도 있지만 최불암이 우리 정서에 부합하는 아버지의 이상형이라는 인식을 깊게 심어줬기 때문이다. 박 반장 역을 10년째 하던 중 <전원일기>의 양촌리 김 회장으로 옷을 바꿔 입은 그는 이 역할에 대해 “걸음걸이, 구부정한 자세 모두 내가 만들었고 의상도 분장도 직접 했다”고 회상했다.

평소에도 최불암은 <전원일기>에 대한 애착을 곳곳에서 드러냈다. 이와 관련, 그는 “김 회장처럼 살지는 못했지만 <전원일기> 속에서 내 인생의 마지막을 맞으면 행복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잔가지를 치고 진솔하게 보여 주자’는 연기철학을 지금도 변함없이 유지하며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지금도 녹화가 있는 날이면 가슴이 뛴다”고 말하는 최불암은 현재 허영만 원작의 드라마 ‘식객’을 촬영중이다.

박지영  pjy092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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