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전에 후퇴는 없다”
“내 사전에 후퇴는 없다”
  • 이수혁 
  • 입력 2007-08-31 11:40
  • 승인 2007.08.31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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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선 퇴진론 논란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좌장인 이재오 최고위원이 때 아닌 ‘2선 후퇴론’에 휩싸였다. 이 최고위원은 한나라당 당내 경선에서 이 후보가 승리하는데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인물이어서 이번 ‘2선 후퇴론’은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당내에서도 강성으로 낙인찍힌 이 최고위원이 박근혜 후보 측과의 화합을 위해서는 물러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는 의견도 있다.
논란이 불거지자 이 최고위원은 “자신이 2선으로 물러나는 때는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는 날”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선후퇴론’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과연 이 최고위원이 향후 대선일정에서 어떠한 식으로 이명박 후보의 ‘킹메이커’ 역할을 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지금의 이명박 후보를 만들어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명박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당시에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서 이 후보를 당선시켰다. 이번 경선에서도 캠프 내에서는 별다른 직함을 갖고 있지 않았으나 실질적인 선대위원장의 역할을 해냈다.

특히 당내에서 ‘중립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이 후보에게 쏟아지는 공격을 막아냈다. 한나라당에서 대표적인 ‘강성’으로 꼽히는 이 최고위원의 존재는 이후보가 위기의 순간에 몰릴 때에 더욱 빛을 발했다. 국정원의 이명박 X파일 작성 의혹설을 터뜨리고 “유력 후보를 흠집내기 위해 검찰이 정치 개입을 하고 있다”며 권력기관에 역공을 취했다.

그는 이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 비해 당내기반이 밀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내에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이러한 이 최고위원의 역할 때문에 그는 경선 결과와는 상관없이 적지 않은 공세에 노출될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이 최고위원은 경선 후에도 박 전대표 측을 자극하는 발언을 여러 번 해왔다.


예상됐던 ‘2선 후퇴론’

그는 일각에서 흘러나왔던 박 전대표와의 ‘동반 국정 참여론’과 관련해 “정권 교체를 위해 전부를 바쳐야지, 논공행상, 어떻게 조율할지는 국민을 모독하는 행위”라며 “생산적 화합은 겉으로는 웃으며 손 내밀지만 속으로는 상대 후보가 잘못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화합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화합도 해가는 과정에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덧붙여 박 전 대표 측을 자극했다.

또한 이 최고위원은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서로가 반성부터 해야 한다”도 덧붙였다. 상생을 강조하는 발언 같지만 실제로는 박 후보를 겨냥한 발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결국 이번 ‘2선 후퇴론’도 어느 쪽에서 흘러나왔던 간에 “강성이미지가 강한 이재오 최고위원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당의 화합은 어려울 것”이라는 일부 당내의 우려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2선 후퇴론’에 대한 이 최고위원의 입장은 명약관화하다.

그는 “내 전선이 마감되는 날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는 날”이라며 싸움을 멈출 듯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 대상 자체가 누구인지 정확히 밝히지도 않았다.

이명박 후보도 이최고위원의 이러한 발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후보는 “이 최고위원에 대해 안된다고 하는 사람은 내 지지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정권교체를 위해 합친 사이지,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합친 사이가 아니다”고 말했다.


64년 첫 만남

두 사람의 인연은 지난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 때로 처음 맺어졌다. 이 후보는 고려대 상과대 학생회장(당시 4학년) 자격으로, 이 최고위원(당시 1학년)은 중앙대 한일회담반대구국투쟁위 위원장 자격으로 각각 시위를 주도했으며 시청 및 광화문 앞 합동시위때 공동전선을 펴면서 운동권 동지로 첫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이후 이 후보는 이 일로 옥고를 치른 뒤 현대건설에 입사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까지 올랐고, 이 최고위원은 철저한 재야의 길을 걸었다. 이 최고위원은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된 것을 비롯해 5차례에 걸쳐 10 여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러다 지난 15대 국회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났고 이후 정치적 동반자의 길을 걷고 있다.

과연 향후 펼쳐지는 대선 일정에서 이 최고위원이 어떤 식으로 ‘킹메이커’ 역할을 해 두 사람의 인연이 결실을 맺을지 당내의 눈이 두 사람에게로 쏠려있다.

이수혁  phj197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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