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가가 술렁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드디어 정국 구상을 끝냈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의 ‘당 사수론’과 김근태 의장의 ‘당 사퇴론’이 맞붙은 형국이다. 이는 ‘노무현발(發)’ 정계개편을 주도하겠다는 심중이 드러난 것이다. 盧-김근태(이하 GT)의장간에 전면전도 불사할 태세다. 노 대통령 특유의 정치적 승부수가 발동한 셈이다. 일종의 ‘파워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노 대통령이 차기 ‘후계구도’를 결정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때문에 ‘GT, 정동영(이하 DY), 천정배’ 3인방이 반발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시점에 정기국회가 마무리되는 12월 중순에 GT가 노 대통령의 탈당 요구를 들고 나오면서 여권발 정치지형이 요동칠 전망이다. 당장 ‘친노(親盧)파=리모델링’ 역시 맞불작전으로 GT 사퇴론을 펼치겠다는 복안이다. 결국 여권내에서는 당 사수파인 ‘친노진영과 비노(非盧)파=통합신당’으로 극명하게 갈라지면서 여권의 핵분열이 조기 가시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盧, 정권재창출 ‘후계구도’ 짰다?
노무현 대통령이 “신당반대”, “당 사수”, “당적 탈당” 여부 등을 주장하는 데는 단순히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명분차원만은 아니다. ‘주도권 쟁탈’을 노리는 또 하나의 노무현식 차기대권구도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이는 결국 당내 친노(親盧)세력들의 결집력을 강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지역당으로는 어떤 시대적 명분도 실리도 얻을 것이 없다. 나는 열린우리당을 지킬 것이다”라고 했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는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김한길 원내대표 등 신당추진파와의 ‘결별’수순도 불사하겠다는 뜻이다. 결국 정계개편을 주도할 의지를 표명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김 의장은 “통합신당을 지역주의로 폄훼하는 것은 제2의 대연정이다”라고 맞받아쳤다. 이 때문인지 정치권에서는 ‘盧-GT’의 결별 수순 밟기로 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대목이 있다. 차기 대권구도를 결정하는 힘은 여전히 노 대통령에게 달려있다는 점이다. 비록 국민 지지도가 15%대에 머물러있는 힘없는 대통령일지라도 대권지형을 얼마든지 짤 수 있다는 말이다. 정권재창출을 위한 ‘후계구도’를 만드는 영향력도 바로 현직 대통령이 갖는 ‘권력’으로부터 나온다는 얘기다.
정치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차기 대권구도의 짜임새를 이미 끝낸 상태인 것 같다”며 일단 “(노 대통령이)총대를 먼저 메고 주도권 싸움에서 친노(親盧)세력이 당을 사수하는 역할 분담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盧에 팽(烹) 당해 반발
그렇다면 왜 ‘盧-GT’간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일까. 대부분의 언론은 盧-GT간의 대립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여권의 차기대권주자인 DY, 천정배 의원과도 사이가 껄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여의도에서는 이미 이들 대권주자들이 ‘조연급’으로 전락했다는 말이 무성하다. 대권레이스만 펼칠 뿐이지 ‘차기 후계자’는 따로 정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GT, DY, 천정배’ 3인방이 서운한 심경을 노대통령에게 표출, 반발 심리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비노(非盧)세력이 강하게 밀어붙인 ‘기간당원제 폐지’ 요구를, GT와 DY가 연대해 추진한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이로 인한 친노(親盧)그룹의 반발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해체까지 촉구하는 형국이다.
친노(親盧)그룹 모임인 ‘의정연구센터(이하 의정연)’소속의 한 의원은 “김 의장이 이달 중순경이 되면 비대위직을 사퇴할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노 대통령의 오른팔격인 이광재 의원 역시 “당헌상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고, 전대 공고를 하면 비대위는 자연히 해산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친노(親盧) 진영 쪽에선 ‘비대위 해체, 조기전대 개최’가 당 내부분열을 막는 지름길이라는 시각이다.
‘의정연’ 소속인 이화영 의원측은 “적어도 내년 1월 초쯤에 전당대회 과정에서 크게 두 갈래로 갈라져 그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라고 했다. 이는 여권에서 반(反)한나라당 세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갈등과 반목을 일부러 조장해 상대당(한나라당)을 분열시키는 선거 전략인 것이다. 노 대통령의 대선구도에는 정치권 일각에서 주장하듯 열린우리당의 큰 틀 속에서 ‘민주당+한나라당’ 개혁성향 의원까지 뭉뚱그리는 리모델링 형식을 추진하겠다는 전략이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의 탈당을 조건부로 내걸고 통합불가를 주장했던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지금은 한발짝 물러난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이는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에 흡수 통합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盧, 제3후보군 측면지원 가능성 커
노 대통령의 탈당 여부는 ‘당 해체’냐 ‘재창당이냐’를 결정짓는 키워드다. 이런 시기에 한 정치전문가는 “노 대통령의 의중을 잘 꿰뚫어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노 대통령의 ‘외부선장론’ 발언 배경에는 ‘제3의 후보군’을 측면 지원하겠다는 그만의 히든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노대통령의 당적 탈당 여부 등은 일단 ‘D-데이’를 정해놓고 저울질을 하겠다는 의중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하반기 국정운영 장악과 정치적 영향력 행사를 노리는 꼼수”라고 얘기한다. 이런 상황에서 친노(親盧)-비노(非盧)의 갈등양상을 비판하는 목소리 또한 높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부동산 정책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반면 여당은 주도권 싸움에만 매달리고 있어 국민들의 신뢰는 날로 추락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정치권의 또다른 관계자는 “(당내에서) 헤쳐모여식 신당통합이니 그런 얘기보다는 실질적으로 국민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정치지형 변화조짐 본격화
여권의 핵분열 조짐이 초읽기에 들어간 듯하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여당의원 139명 가운데 비노(非盧) 세력 50여명 이상은 탈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친노(親盧) vs 비노(非盧)’간의 대립으로 당 해체까지 전개되는 양상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다만 여권의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 시점은 이달 중순 이후가 ‘D-데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기국회가 마무리되고, 노 대통령이 해외순방(12월 3일~13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점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정세균 장관, 차기 당의장설
노 대통령의 ‘당 사수’ 선포가 나오는 시점에 정세균 산자부 장관의 당 복귀 발언도 정계개편 밑그림의 한 축이다.
정 장관은 “정기 국회가 마무리되는 시기에 당에 복귀할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적어도 정 장관의 ‘당 복귀’시점은 노 대통령의 탈당여부가 가려지는 이달 중순경 이후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문제는 왜 정 장관이 청와대의 희망에 따라 당 복귀를 하느냐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여권의 대선구도를 이끌 인물 부재가 큰 관건이기 때문이다. ‘난공불락(難攻不落)’이다. 더구나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기존의 대권주자들과는 ‘후계구도’를 그리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정 장관의 차기 ‘당의장설’이 나돌고 있다. 정 장관의 당 복귀는 조기 전대과정을 통해 차기 당 의장직을 맡기고자 하는 노 대통령의 의중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친노(親盧)세력들의 압박으로 이달 중순경이 되면 김 의장이 비대위직을 사퇴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노 대통령의 시나리오처럼 당헌상 내년 2월 전대를 한 달 앞당겨 1월쯤 조기 개최할 공산이 커 보인다. 이 때 당에 복귀한 정 장관이 당 의장직에 앉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친노(親盧) 세력들의 힘이 최대한 가세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화영 의원측은 “조기전대를 통해 당 의장을 선출하면 구심점을 찾을 수 있다”면서 “그 이후 대선주자를 적극 지원하는 역할 수행에 전념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했다. 여권발(發) 대선 지형구도가 시나브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 노(盧)의 남자들 ‘제3후보군’ 막강 지원세력 가동
노 대통령을 좌우보호하고 있는 친노(親盧)그룹들의 움직임도 눈여겨봐야할 시점이다. 노 대통령의 양 날개격인 ‘좌(左)희정-우(右)광재’의 행보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친노(親盧)세력 모임인 ‘국민참여연대 1219(이하 국참연)’ 소속 영화배우 명계남 또한 주로 이들과 접촉하고 있다. 명씨는 국회에서 의정연 소속 의원인 서갑원, 이화영 의원 등과도 자주 만난다. 이들 친노(親盧)세력들은 제3후보군으로 떠오른 박원순 변호사와도 비공개 모임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의정연 소속인 한 의원은 “일주일에 적어도 3번 정도는 만난다”는 얘기를 했다. 같은 소속인 서갑원 의원측은 “대선을 앞두고, 자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명씨는 일찌감치 정권 재창출을 위해 차기 대권주자를 측면지원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어차피 당내에서조차도 기존 대권주자로는 한나라당 ‘빅3’와의 대결구도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는 상황이다. 친노(親盧)세력이 ‘제3후보를 민다’고 확신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친노(親盧)세력의 역할 분담도 관심사다. 국참연, 의정연은 내년초반이나 중반쯤 부각될 ‘대선주자’의 ‘이미지 구축’에 치중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미 점찍어둔 ‘대선후보감’을 적절한 시기에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방법론, 대선 선거전략 찾기에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대중들은 기존 정권에 대한 정치적인 싫증 현상과 정치 혐오증 등을 느끼고 있다. 이 때 ‘제3 후보’의 신선한 등장은 대중들에게 호기심과 기대심리를 동시해 유발시킨다는 점이다. 여권은 바로 이런 기대치가 크다는 것이다.
국참연의 한 관계자는 “기존의 대권주자는 국민들에게 더 이상 어필할 저력이 없다”면서 “다양한 각도로 새로운 인물이 발굴돼 국민들에게 검증받을 수 있어야한다”고 했다.
국참연은 제3의 후보군을 급부상시키는 막판 선거전략 컨셉을 구상 중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 때문에 국참연측은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국민적 신뢰를 얻어내야 하는 ‘검증’절차가 첫 관문이기 때문이다. 명씨가 ‘참여포럼’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해 개인사무실을 여의도 국회 맞은편에 꾸린 것도 대선후보자를 측면지원하려는 전문적인 ‘싱크탱크’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얘기다.
‘참여포럼’의 사무실에는 기획실장을 포함해 연구진, 비서 등 총 7명이 활동하고 있다.
참여포럼의 한 관계자는 “언론의 잣대논리를 바로 잡겠다”면서 “차기 정권 재창출이 중요하다”고 했다. 명씨의 개인사무실인 참여포럼은 국참연의 분신형태이기는 하지만 언론개혁, 정치개혁 등을 내세우면서 꾸준히 강연회를 펼치고 있는 상태.
김형주 의원 등이 소속된 참정연은 기본과 원칙을 바탕으로 노 대통령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현>
김현 rogos0119@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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