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전서울시장간 과열경쟁이 점입가경이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상대 진영에 대한 견제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모양새다. 양 진영 핵심참모들이 과열경쟁 사전차단 작업에 나섰음에도 속수무책이다. 상호 비방전이 한창이고, 유력 대선주자인 이들에 줄을 대려는 한나라당 안팎 인사들의 충성경쟁은 진흙탕 싸움을 방불케 한다. 물론,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의원들에 대한 두 유력주자간 기싸움도 팽팽하다. 이러다가 당이 쪼개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과열경쟁이 이런저런 ‘불미스러운 일’로 번지기도 한다. 급기야 강재섭 대표가 나서 금해야할 ‘다섯가지 행태’를 제시했을 정도. 하지만, 경고일 뿐인 강 대표의 제재가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 것인지도 의문이다. 양 진영에선 이미 모든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본선보다 더 치열한 예선전이다.
강 대표가 제시한 금해야 할 ‘다섯 가지 행태’는 박 전대표 진영과 이 전시장 진영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쟁의 양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때문에 “늦었다”는 게 당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브레이크의 위치조차 찾을 수 없다”는 특정 주자 핵심 참모의 말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는 강 대표의 경고성 언급이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백서1 노골적 줄서기 방관 ‘기본’
“당직자·의원들은 특정 대권 주자에 노골적으로 줄 서거나 특정캠프에 가담하지 말라?”
“사무처 요원들은 줄서지 말라?”
이미 ‘캠프’에 몸을 담은 의원이나 당직자, 사무처 요원들은 부지기수다.
이재오 최고위원, 안경률 사무1부총장, 이군헌·정두언·진수희 의원 등은 이 전시장 지근거리에 있다.
전여옥 최고위원, 김성조 전략기획본부장, 김무성·유승민·유정복 의원 등은 박 전대표를 가까이서 돕고 있다. 이미 당직자 몇몇은 박전대표, 이 전시장과 각각 연이 닿아 있고, 이를 애써 숨기지도 않는다.
유력 대선주자들에 줄을 대려는 당 안팎 인사들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도 짚어볼 대목이다. 박 전대표와 이 전시장을 ‘알현’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경우, 두 유력주자의 연결고리를 찾아 동분서주하기 일쑤다.
일부 사무처 요원들의 경우 과거 당직자를 보좌했던 의원들의 성향과 맥을 같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양 진영의 실질적인 세 불리기 작업을 하고 있는 최측근 인사들에게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두 유력주자와 돈독한 친분으로 얽혀있는 인사들이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당연지사다.
문제는 강 대표가 과열경쟁을 경고한 22일 직후에도 줄서기가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 11월27일부터 4박5일로 진행되는 박 전대표의 방중일정에 동행키로 한 의원들 중 일부가 ‘일정 변경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백서2 악성 루머 유포 ‘필수’
“악성 루머 유포, 인신 비방을 삼가달라?”
각 진영마다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내부 충성경쟁이 과열되기 마련이다. 이들 사이에선 박 전대표와 이 전시장측에 대한 네거티브 공방도 서슴지 않는다. 상대측 주자를 깎아 내리기 위한 비방과 음해성 소문이 양산되고 있다.
“특정 주자는 당선돼도 ‘공천’을 챙기지 않을 사람이다.”
“특정 주자는 당내 지분을 확보하고 있어 경선에 패해도 ‘공천’ 만큼은 보장해 줄 것이다.”
“특정 주자는 패하면 반드시 정치 보복에 나설 사람이다.”
“특정 주자의 ‘X파일’이 대선 레이스에서 발목을 잡을 것이다.”
박 전대표와 이 전시장의 과거 경력을 문제 삼는 이들도 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 미래연합을 만들어 한나라당에 타격을 줬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 처음은 어렵지만 두 번, 세 번은 쉽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유력한 홍사덕 후보를 제치고 이명박 시장이 서울시장 후보에 낙찰된 데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이 있다.”
여기에 현역의원들의 지지 여부에 대한 세싸움은 또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정 의원이 상대측 캠프로 전향했다는 미확인 소문, 상대측 핵심 참모가 중립으로 돌아섰다는 소문, 상대측 핵심 인사가 오버로 일관해 민망한 상황을 연출했다는 등 소문의 양상도 가지가지다.
백서3 무슨 사조직 설치 ‘의무’
“대권 주자들은 무슨 무슨 포럼 등 지역별로 사조직을 설치하고 입회를 강요하거나 당원협의회별 책임자를 정하지 말라?”
이 전시장을 지지하는 교수·전문가 모임인 ‘나라사랑 시민포럼’이, 부산에서는 박 전대표를 지지하는 지역 인사들이 구성한 ‘포럼 부산비전’이 출범한 상태다.
또 이 전시장은 서울시장 재직 시절부터 그를 지지하는 변호사들의 모임인 ‘송법회’를 비롯해 조직화가 가능한 수 백명의 교수자문단이 지근거리에 포진해 있다. 박 전대표도 조직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다. 정수장학회 장학생들의 모임인 ‘상청회’는 오래 전부터 박 전대표의 우군세력이며, 연말을 기해 박 전대표의 교수자문단으로 구성된 ‘코리아 포럼(가칭)’이 출범할 계획이다.
게다가 원로 정치인의 사조직 끌어안기 경쟁도 한창이다. 산악회 형태를 띠며 점조직으로 분산돼 있는 이들의 경우 역대 한나라당 선거에서 탄탄한 조직력을 과시하며 세몰이에 영향을 미쳐왔다는 게 정설이다.
‘팬클럽’도 두 유력주자의 대선 레이스에서 또 다른 우군이다. 이미 수 년전부터 조직화에 들어간 ‘박사모’와 ‘MB사랑’은 흩어졌던 각각의 팬클럽을 아우르며 체계적인 조직화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2002년 대선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주력 공신인 ‘노사모’를 벤치마킹하며 캠페인 성격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전시장과 박 전대표간 상호 비방전엔 이들 팬클럽이 한몫하고 있다는 것은 한나라당 안팎에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백서4 대의원에 지지 호소 ‘애교’
“후보 선출 대의원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에 대한 지지 호소를 자제하라?”
이 역시 강 대표의 뒷북치기라는 시각이 많다.
양 진영에선 이미 대의원이 될 것이 확실한 지방당 당직자나 당원협의회 부위원장 등과 음양으로 접촉중이다. 심지어 특정 주자는 직접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물밑 접촉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역시 한나라당 안팎에선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다.
특히, 지난 한 주는 12월19일로 다가온 중앙위원회 의장 선거를 앞두고 양측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가시권에 들어오기도 했다. 중앙위 의장은 각종 직능단체 인사 1만5,000명을 회원으로 하는 중앙위의 ‘수장’으로서, 중앙위 회원 중 상당수가 차기 대선 후보 경선에서 당원·대의원 선거인단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일찌감치 ‘박근혜 대 이명박 대리전’으로 치러질 것이란 관측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한편, 당직 임기가 만료되는 여성위원장, 청년위원장 등에 대한 대리전 양상도 함께 벌어지면서 양 진영은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물론, 한나라당을 관통하는 선거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과열경쟁엔 분명 이유가 있다는 당내 관계자들의 촌평도 이어진다. 총재 체제로 인해 일찌감치 유력 대선후보가 암암리에 결정된 후 그를 ‘정점’으로 단일대오를 형성해온 지난날을 돌이켜볼 때, 현재의 양강구도에선 면역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사례도 있다. 인명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과 김용갑 의원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징계 결정’ 대 ‘기피 신청’ 사건이 그것이다.
애초 김 의원의 ‘광주 해방구’ 발언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으나,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창녕군수 후보로 나선 이재환 후보와 하종근 후보를 둘러싼 박 전대표 진영과 이 전시장 진영의 미묘한 신경전이 논란의 시발이라는 게 정설이다.
애초 이 후보는 이재오 최고위원의 후원으로 공천을 따냈고, 김 의원은 당 후보인 이 후보가 아닌 공천에서 탈락한 무소속 하 후보를 지원한 것이다. 여기에 박 전대표가 이 후보와의 사진 촬영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 진영의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있었다.
견제와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더욱 바빠진 이들은 양 진영 핵심 참모들이다. 소문의 오해와 진실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이어진다.
하지만 “사실은…”으로 시작되는 이들의 오해에 대한 해명도 과열되면, 이는 상대 주자의 또 다른 비방으로 번지기 일쑤다.
이금미 nicky@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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