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 4단, 합기도 3단, 용무도 4단… 국내 최초의 경호학 박사 1호 강영숙 교수. 그녀의 이름 앞에는 항상 낯선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최초, 여자 교수, 경호학 등이다. 가정관리학을 전공, 평범했던 주부가 경호학에 뛰어들어 지금의 교수 자리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통해 자신만의 학문영역을 구축하기까지 이야기를 들어본다.
“검은 정장을 입은 혈기 왕성한 20대의 건장한 대학생들이 꽉 차 있는 강의실 맨 앞에 웬 아줌마가 떡 앉아 있으니 강의 들어오시는 교수님들 대부분이 당연히 기절초풍하셨습니다. 저 붙들고 아줌마가 왜 경호학 공부를 또 하느냐는 질문만 수없이 받았습니다. 그 때마다 자세한 얘기들을 하기 싫어서 대충 웃음으로만 밀어붙였죠.”
국내 최초의 경호학 교수가 된 강영숙 교수는 무술 도합 10단의 소유자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정 관리학 교수가 어울리는 여성다운 평범한 외모를 가졌다. 처음 입학했을 당시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서는 단연 그녀의 존재가 특별했던 것.
“해마다 열리는 대학 축제 때 경호학과에선 경호시범을 항상 하는데 무술 고단자인 학생들이 경호시범을 보이면서 휙휙 날아다닐 때 아줌마인지라 차량경호에 참여했습니다. 학생들로 가득 찬 대 운동장에 영화음악 휘트니휴스턴의 ‘보디가드’를 틀면서 차량 안에서 검은 정장의 보디가드들이 튕겨져 나오는 연출은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들이었습니다.”
탐정제도에 관한 최초의 박사학위 논문 인정받아
그녀에게는 그런 것들이 역시 추억이 되었지만 차량경호시 4개의 문짝에 매달리면서 연습을 했던 경호학과 동기들 때문에 차 수리비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비록 많은 나이지만 어린 학생들에게 ‘왕언니’로 통하면서 즐겁게 대학생활을 했고 졸업 때는 최우수졸업을 했던 순간들이 이젠 내겐 너무 소중한 추억들입니다.”
이처럼 힘들고 고단한 경호학에 뒤늦게 입문하게 된 계기는 젊은 시절 부모님의 바람대로 적성과는 너무 다른 가정 관리학을 목적도 없이 대학원까지 공부했다.
정치인의 수행과 통역업무를 했던 경험으로 인해 수행업무와 경호업무가 복합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결혼 이후 정신없이 살다가 1996년 용인대학교에 경호학과가 개설되었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뭔가 온몸에 전율이 도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고 공부하고 싶어서 찾고 있던 그 학문이었기 때문에 40대의 나이에 무모하다는 주변의 염려를 뒤로 만학의 터널로 들어섰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기회인 것 같은 비장한 결심이었다는 것.
“무엇보다도 경호가 추구하는 기본정신이 나 아닌 남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위험과 인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고 업무수행을 위해선 전문성과 다양한 분야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1996년 우리나라에 경호학과가 처음으로 개설된 용인대학교에서 ‘한국의 공인탐정제도 도입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경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성 경호학 박사이자 새로운 분야인 탐정제도에 관한 최초의 박사학위논문으로 중요성을 인정받고도 있다.
사실 40대의 나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변화나 어려움 없이 가정의 안정과 편안함을 추구하게 되는 시기. 그러나 그녀에게 운명적으로 와 닿은 경호학문에 대한 열정은 가족이나 주변에서 하나같이 엉뚱하고 무모한 일이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했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어마어마한 사립대학의 학비조달이 가장 심각한 문제.
“경호학과 공부를 시작하던 해는 딸도 대학에 가던 해였는데 한정된 수입으로 학비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토록 원하던 경호학 공부를 등한시하면서 다른 부업을 찾기 싫어 친정어머니, 동생, 오빠에게 반 강탈수준으로 도움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힘든 과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후배들을 지도하는 것에 커다란 만족을 느끼고 있습니다. 주로 테러학, 탐정학, 경호학 등의 강의를 맡고 있으면서 한국의 장래를 이끌어갈 사람들은 바로 대학생들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며 강한 정신과 인성을 갖추고 진짜 실력을 갖추라고 강조합니다.”
심지어는 올해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공부를 하겠다는 딸에게 여군 장교의 길을 권유, 순순히 응했고 지금은 어려운 관문을 거쳐 헌병장교에 선발되었다는 것. “넉 달 조금 넘게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운동체질도 아닌 딸이 지난 3월26일 입교해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남성이라면 모를까 여성으로는 생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할 힘든 훈련을 받고 있을 걸 생각하면 한편으론 안쓰러울 때도 있어요.”
그러나 2주에 한번 씩 몇 분간의 짧은 통화 속에서 점점 밝아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변화되어 가는 딸을 보면 강한 정신력을 기르기 위해선 잘했다는 생각이란다.
“자신이 정말로 간절히 원하는 일이 있다면 무모한 도전이 새로운 역사로 전환될 때가 있다는 것을 남의 말이 아닌 제 몸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늦었다구요? 아뇨. 지금 시작하세요.”
백은영 aboutp@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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