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찍고 러시아 돌아 대권 향해 ‘찬찬찬’
미국 찍고 러시아 돌아 대권 향해 ‘찬찬찬’
  • 김승현 
  • 입력 2007-05-17 14:54
  • 승인 2007.05.17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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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이·해·찬 전총리
노무현 대통령이 복심에 두고 있는 범여권 후보는 과연 이해찬 전총리일까. 지난 3월 방북으로 활동폭을 넓힌 이 전총리가 최근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올 가을 4자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풀이된다.
두 사람의 인연은 멀리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20년 가까이 이어진 양측의 관계는 보좌진들 면면을 봐도 예사스럽지 않다. 더구나 이 전총리는 참여정부에서 ‘책임총리’ 역할을 톡톡히 해 노 대통령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 여부를 떠나 지난 방북을 통해 남북 관계를 한단계 발전시킨 인물도 다름아닌 이 전총리였다. 정치권에선 충청권 출신인 이 전총리가 올 대선 정국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벌써 20년이 흘렀다.
노 대통령과 이 전총리의 인연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 대통령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부산본부 상임위원이었고 이 전총리는 이 조직의 중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이 때만 해도 두 사람의 입장에는 차이가 있었다. 이 전총리가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를 ‘비판적 지지’ 했던 데 반해 노 대통령은 양김의 ‘후보단일화’에 무게추를 두고 활동했다.

두 사람의 본격적인 관계는 다음해인 1988년, 국회에 동반 진출하면서 시작됐다. 노 대통령은 김영삼 전대통령의 민주당 소속으로, 이 전총리는 DJ의 평민당 소속으로 나란히 노동위에 배치돼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이상수 전의원과 함께 ‘노동위 3총사’로 불리며 언론의 주요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

당시 이해찬 의원의 유시민 보좌관(현 보건복지부 장관), 노무현 의원의 이호철 보좌관(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이상수 의원의 김홍섭 보좌관(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실 원내기획실장)은 같은 방 식구처럼 지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2년 대선 선대본부장
노 대통령과 이 전총리는 각각 청문회를 통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노 대통령은 5공 청문회에서, 이 전총리는 광주 청문회에서 송곳같은 질문으로 찬사를 받으며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정치적으로도 양측은 오고 간 게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1992년 총선을 앞두고 이 전총리는 공천을 못 받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당시 민주당 대변인이자 공천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노 대통령은 “이해찬에게 공천을 주지 않으면 나도 공천 받지 않겠다”며 그를 구해내는데 성공했다.

이 전총리는 지난 2002년 대선 전, 선본의 기획본부장을 맡아달라는 당시 노 후보의 전화 요청을 흔쾌히 수락함으로써 과거의 빚을 톡톡히 갚았다.

두 사람은 참여정부 들어서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노 대통령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 전 총리를 ‘총리’에 기용한 것도 그에 대한 신뢰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책임총리’라는 막중한 역할을 이 전총리에게 주며 분권형 운영을 시험해 보기도 했다. 때문에 세간에서는 ‘실세형 총리’로 받아들여졌다.

이른바 ‘황제 골프’ 파문으로 범여권 대선후보에서 멀어진 듯 했던 이 전총리는 지난해 대통령 특보로 임명되며 서서히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3월 초 방북은 이 전총리의 주가가 상승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결국 마지막까지 가 봐야”
특보단에 포함된 이후 초기 이 전총리의 행보는 참여정부 실적에 대한 홍보에 맞춰졌다.

열린우리당에서조차 청와대를 향해 직격탄을 날릴 때 이 전총리는 전면에 나서 참여정부를 두둔했다.

“종합적으로 볼 때 현정부는 시스템상으로 가장 안정된 정부다. 그리고 참여정부는 집권 이후 단 한명도 권력을 활용해 정경유착의 파문을 일으킨 적이 없다. ‘정경유착의 근절’은 앞으로 한국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전총리는 정권 재창출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꾸준히 낙관론을 펼쳐왔다. 그는 이와 관련 “선거를 많이 치러봤는데 결국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이긴다”며 “364일 이기고 마지막 하루 소홀하면 진다”고 말했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는 만큼 대선 승리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얘기다.

이 전총리가 국내 정치에서 나라밖으로 ‘역할’을 본격적으로 바꾼 것은 올 초부터였다. 지난 3월 방북한 이 전총리는 남북경협 등 현안을 논의하고 돌아왔다. 청와대는 ‘대북특사설’에 대해 부인했지만 남북정상회담 등을 놓고 상당히 깊은 얘기가 오갔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이 전총리는 최근에도 당 동북아평화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이 기간 북핵과 남북관계를 비롯, 동북아 평화체제 문제를 미국내 주요 인사들과 만나 논의했다.

남북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간 정상회담 논의도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열린우리당의 한 인사는 오는 9월 호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하는 방식으로 4개국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 이 전총리를 그 특사격으로 보는 것은 그가 올해들어 4개국을 모두 방문했기 때문이다. 이 전총리는 지난 3월 북한과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4월에는 일본을 비공개 방문했으며 5월에는 미국을 방문했다.

이 전총리실 관계자는 “아직 일정이나 계획이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도 다녀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
올 대선에서 ‘평화’ 화두가 부상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이 전총리의 최근 행보는 심상치 않다는 지적이다.

이 전총리는 외국을 다녀오는 와중에도 국내 정치에 상당히 신경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4일 상임고문단 만찬에서는 “소수가 남아 당을 사수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당 사수론’을 비판했고 일부 의원들과의 골프 회동에서는 “당 사수 주장은 내가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범여권에서 이 전총리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충청권 출신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정운찬 전서울대총장이 사퇴함에 따라 이런 장점은 더욱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노 대통령과 김대중 전대통령 사이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것도 경쟁력 중 하나다. 이 전총리는 방북에 앞서 DJ를 찾아가는 등 동교동계와의 관계에도 소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이 전총리는 “노 대통령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 참여정부의 성공적 마무리만을 바랄 뿐이다”며 대권도전설에 대해선 일축하고 있다.

올 가을 4자 정상회담 개최 시점과 맞물려 이 전총리가 다시 대권후보로 부상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적어도 노 대통령은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열린우리당 인사의 말이다.

김승현  okkdol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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