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온 해결사 정세균 의장
일명 정세균 효과인가. 당내 의원들의 연이은 탈당으로 어수선하던 열린우리당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직 ‘낙관’은 이르다. 그 어느 때보다 악재가 많은 만큼 정 의장의 어깨도 무거울 수밖에 없다. 우선 통합신당과 대선정국이라는 양대 산맥을 넘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그의 앞에 놓여 있다.
정 의장은 “즉각 실질적인 대통합 작업을 시작하겠다”면서 “일체의 기득권을 버리겠다”고 단호한 의지를 내비쳤다. 쉽지 않을 ‘정세균호’의 순항 여부에 따라 열린우리당의 운명도 좌우될 전망이다.
지난해 초.
열린우리당은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당시 정세균 의장이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입각함과 동시에 당으로 돌아온 김근태 정동영 두 잠룡이 ‘결전’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의원조차도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에 혀를 찰 정도였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당내 상황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 의장만큼 적임자가 없었던 데다 두 잠룡이 너무 일찍 붙으면 정작 대통령 경선의 재미가 반감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런 우려를 반영이라도 하듯 이들의 자리바꿈은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지난해 2월 전대에서 의장으로 선출된 정동영 전의장은 지방선거 패배로 일치감치 백의종군을 선언했고, 이후 여당을 이끈 김근태 전의장도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탈당파와 ‘선 긋기’
당이 원내 제2당으로 전락한 상황속에서 다시 ‘해결사’로 돌아온 정 의장은 무엇보다 대통합 신당을 결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이를 위해선 소속 의원들의 추가 탈당을 막고 탈당파와의 신당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것이 급선무다. 정 의장 또한 4월 중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 놓겠다고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현재 탈당을 고려중인 의원들과 정 전의장 그룹이 4월을 분기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승부를 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 의장은 이를 워크숍에서 토론한 뒤 통합추진기구를 발족시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무엇보다 통합신당의 성공 여부는 외부 세력을 얼마나 규합할 수 있는지로 모아진다. 정 의장은 이와 관련 “통합세력에 민주평화세력, 양심적 산업·지식 세력, 시민사회, 전문가 그룹 등 희망한국 건설에 기여하는 모든 개인과 집단을 포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탈당한 그룹과는 분명한 선을 긋겠다는 게 정 의장의 의지다. “경험상 헤어지기는 쉬워도 다시 통합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정 의장의 생각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탈당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국민도 별로 납득을 못하는 거 아닌가”라며 “정치는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면 나중에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고 탈당파를 비판했다.
정 의장은 또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 문제가 당내 논란이 돼서는 안 되며 개헌안이 발의되면 당도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당·청 관계 복원을 역설했다.
“힘 약화, 걱정 태산같다”
일사천리로 이뤄진 정 의장 선출은 여당이 처한 위기감을 보여주는 반증으로 해석된다. 당초 우려했던 것과 달리 무난하게 정족수를 채움으로써 과정도 괜찮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정 의장이 각 계파를 아우를 수 있는 조정 능력과 통합의 리더십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당 의원들은 기대감을 거는 눈치다.
하지만 실제 앞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항로에는 연이은 ‘폭풍’이 기다리고 있다. 통합신당을 추진하기 위해선 신당파와 사수그룹의 갈등을 풀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노 대통령과의 관계도 고려해야만 한다.
여당 일각에서는 탈당과 당 잔류 속에서 저울질하고 있는 정 전의장 그룹을 얼마나 붙잡을 수 있는지가 최대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당내 잠룡 중 한 명인 정 전의장이 탈당한다면 이는 이전 탈당파들의 발걸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후폭풍을 남길 가능성이 높다.
정 의장이 4, 5월 통합신당 창당에 이어 8~9월 대선후보 가시화라는 로드맵을 제시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측면이 적지 않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의 잔여 임기를 함께 해야 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할 듯싶다. 원내제2당으로 전락했지만 그래도 ‘여당’인 것은 마찬가지다.
정 의장은 이와 관련 “책임이 무겁다. 제2당이 됐어도 민생에 대한 책임은 줄지 않고 힘은 조금 약화된 만큼 더 노력하겠다”면서 “걱정이 태산 같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국정은 무한책임”
정 의장은 향후 당 운영과 당청 관계에 있어 무엇보다 필요한 게 ‘조화’라고 강조한다.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선 당과 정부, 당과 청와대의 원활한 소통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당내 소통은 물론 당과 정부 간 소통을 잘함으로써 갈등을 최소화하겠다. 국정에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설사 노 대통령이 탈당한다고 하더라도 정책협의 등을 통해 책임질 수 있는 통로는 얼마든지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가장 큰 관심사는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정권재창출’에 성공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현재의 열린우리당이 대선까지 유지된다면 정 의장은 대권 후보와 함께 쌍두마차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정 의장은 이와 관련 “내부에서 좋은 후보를 만드는 게 제일 좋다”면서도 “작년에 오픈프라이머리를 하기로 한 만큼 이미 다 개방돼 있다”고 말했다. 평화개혁민주세력의 이념과 지향에 공감한다면 누구든 와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말.
현재 여론조사에서 상대당 후보에 크게 밀리고 있지만 정 의장은 “아직 시간도 많고 가능성도 많다”면서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시 해결사로 돌아온 정 의장이 ‘타이타닉’과 같은 운명에 놓인 여당호를 구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세균 의장의 정치스타일
웃음 뒤에 칼날 숨긴 사나이
2003년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탈당파와 잔류파가 안타까워했던 인물들이 각각 한명씩 있었다.
탈당파들은 이낙연 의원과 함께 나오지 못한 것을 가장 아쉬워했고 당시 민주당 구주류 중진들은 현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을 붙잡지 못한 것에 대해 두고두고 한숨을 쉬었다.
정 의장의 정치 스타일은 비교적 조용한 스타일이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단호하다는 게 특징으로 손꼽힌다. 정책위의장 재임 시절인 2003년에는 당시 민주당내 ‘신당추진모임’에 조용히 참여해오다, 주저없이 탈당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2001년 12월에는 여야지도부가 사전 합의한 ‘법인세 1% 인하’ 방침에 소신을 이유로 반대 의사를 밝혀 국회가 파행되는 경험도 있었다.
2002년 대선 민주당 선대위의 국가비전21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정책자문단을 이끌었으며 열린우리당 창당 뒤 첫 정책위의장을 맡았다.
고려대 학생회장과 고대신문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쌍용그룹에서 상무가 될 때까지 18년간 근무해 실물경제 감각도 밝다.
기자들이 뽑는 ‘백봉신사상’을 받기도 하는 등 깨끗한 이미지를 유지해 왔으며 의정활동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일각에서는 정 의장을 여권 내 잠룡그룹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프로필
생년월일: 1950년 9월 26일 생
학 력: 1973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1975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1990 미국 페퍼다인 대학 경영학 석사
2004 경희대학교 경영학 석사
경 력: 1995 쌍용그룹 근무
1996-1999 연청 중앙회장
1998 새청지 국민회의 원내수석부총무
2000 새천년민주당 기조위원장
2002 새천년민주당 재정위원장
2002 노무현 대통령 후보 경제특보
2002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의장
2003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2004 열린우리당 전라북도당 위원장
2004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2005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당의장
2006 산업자원부 장관
2007. 2 열린우리당 당의장
김승현 okkdoll@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