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야마 일본 전 총리 [뉴시스]](/news/photo/202001/358785_275452_3022.jpg)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7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과거에 집착해서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다면 친구를 잃는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봄과 동시에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 그다음, 한 가지 반성 문제다. 제1차 우리 조약안은 마지막까지 일본하고 상당히 옥신각신 이야기하다가 결국은 제7차 한일회담에서 타결됐다. 우리는 “1910년 이전에 체결된 한·일 간의 모든 조약은 원천적으로 무효다”라는 문구를 집어넣었다. 그건 일제의 식민통치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일본이 인정하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이에 대해 일본은 “36년이 지났는데 그것이 없었다고 이야기하겠느냐. 모든 현실을 부정하고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모든 것이 불법이라고 이야기하느냐, 도저히 일본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타협된 게 “이미 무효다”라는 문구였다. 1945년 이후에 일본 통치는 끝났으니까 이미 끝났고,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없이 받아준 거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제1차 한일회담이 1946년에 시작된다. 일본의 GHQ(연합국총사령부)사령부에서 윌리엄 시볼드 외교국장이 주재하는 가운데 한국 대표와 일본 대표가 배석했다. 그 첫 회의 때 당시 수석대표 양유찬 주미대사가 개회사를 했다.
영문으로 된 그 개회사는 이승만 박사가 손수 쓰셨다 한다. 거기서 한국은 모든 과거를 묻고 새로운 출발을 할 용의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영문으로는 “Ready to bury the hatchet”라 했다. hatchet이란 손도끼 형태의 무기로, 무기를 땅에 묻는다는 건 결국 화해하자는 뜻의 이디엄이다. 그 얘기를 했다. 우리는 과거를 묻지 않고 화해하자 했고, 일본 수석대표 대리가 “화해할 그 무엇이 있습니까?”라고 했다. 그게 1946년 일본의 태도다.
이후 양측의 인식이 점차 좁혀졌고, 1965년 2월에 시이나 에쓰사부로 외상이 한국에 와서 기본조약을 가서명할 당시에 비행장에서 한 성명으로 “일본은 과거를 반성합니다”하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런데 그 내용이 일본 외무성 관료들이 써준 도착성명 속에는 없었다고 한다. 시이나 외상의 회고록을 보면, 자기가 한국 가기 전에 에드윈 라이샤워 대사와 통화를 했는데, 라이샤워 대사가 “한국에 가서는 일본이 반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안 될 거다. 과거에 대한 일본의 반성 없이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하니까 자기가 몸소 그 내용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한 양측의 역사인식에 대한 현격한 입장차가 점차 좁혀지고, 1995년 일본 패전 50주년 기념일에 무라야마 담화가 나온다. “일본은 과거 한때 국책을 그르쳐서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심대한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죄한다”고 하는 내용이다. 그런 담화가 나오기까지 해방 후 5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던 거다.
일본 내에서도 이 시점에서 “일본 정부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중의원에서 결의안이 옥신각신하다가 통과는 됐다. 이 결의안은 참의원의 자민당 보수파들이 반대해서 통과되지 않았고, 할 수 없이 무라야 도미이치 총리가 당시 내각에서 심의해서 동의를 얻었다. 그렇게 무라야마 담화가 나온다. 그런데 무라야마 내각은 아시다시피 그 당시 사회당·공명당·자민당 연립내각 정부 아니었느냐?
- 과거사를 놓고 한·미·일 사이의 관계가 어려운 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미국으로서는 역사문제가 한·일 협력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된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냉전기에 동아시아·태평양 차원에서 일본의 건설적인 지역적 역할을 구상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해관계 구도는 지금 미국 오바마 정부의 재균형정책이라는 차원에서도 큰 변화가 없는 듯하다.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해서 박근혜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하면서, 역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는 과거를 돌아봄과 동시에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맞아. 한국은 과거에 대해서는 용서할 수 있는 관용이 필요하고 일본은 과거에 대해서 언제까지나 겸허하게 사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태도 없이 양국 간의 역사적인 화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거다. 너무나 과거에 집착해서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다면 친구를 잃는다. 국제적으로 큰 친구를 잃는다. 일본만 고립이 되는 게 아니라, 우리도 고립이 된다. 외국 언론 논조를 한번 보라. 일본은 지금 우리 여론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고립돼 있지 않다. 우리도 그 현실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가 너무나 자가당착할 필요는 없다.
- 장관님께서도 한·일 양국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추구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계신다.
▲ 특히 일본 일부 보수들이 역사인식 문제와 관련해서 벌이고 있는 혐한 행동은 대단히 유감이다. 그런 방식을 고수한다면 일본은 도덕적으로 참다운 친구를 얻을 수가 없다. 영원히 이웃 국가로서 공생해야 하는데, 그 태도는 같이 사는 방법이 아니다.
- 장관님께서 3년간 대사관 근무를 마치시고 귀국을 하셨는데, 바로 교민과장 포스트에서 업무를 보셨다. 역시 교민과장이라고 한다면 재일교포 관련 업무가 중심이 아니었을까 한다.
▲ 맞다. 그런데 사실은 교민과장으로 발령을 받고 실망을 했다. 본국에 들어가면서 제가 희망하는 부서는 경제협력과장이었다. 일본에서 경제과 업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협력과로 가겠다고 요청했다. 제1지망인 동북아과는 그때 신동원 대사가 돌아와서 과장을 할 때니까, 과장이 아직 움직일 단계가 아니었다. 그래서 자리가 공석이 나는 경제협력과장으로 가겠다고 했더니, 당시 최규하 장관께서 “한일법적지위협정(재일교포법적지위협정)에 의한 협정영주권 신청 마감이 내년으로 다가왔는데 교포들의 협정영주권 신청 성적이 굉장히 큰 문제다. 만약 이게 부진하다면 우리가 조총련과의 싸움에서 밀린 결과가 숫자로 나타나는 거다. 대단히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특히 교포 업무가 이 시점에서는 중요하다”고 하셨다고 한다.
황기현 기자 kihyun@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