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 받은 은혜 ‘내리사랑’으로 보답할 터”
“세계서 받은 은혜 ‘내리사랑’으로 보답할 터”
  • 현상필 
  • 입력 2006-12-15 09:27
  • 승인 2006.12.15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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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건 국제로터리 회장


2006년 10월은 북한 핵문제가 국제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한 시기였다. 북핵 문제는 여전히 난제로 꼽히고 있다. 국제사회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한반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가운데 서로 다른 공식석상에서 두 명의 한국인이 북핵 문제 해결에 외교사절로 뛰고 있다는 점에서 평화적인 북핵사태 해결을 기대해봄직하다. 그중 한 명은 이번에 유엔의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반기문 전 외교부 장관이다. 반총장은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천명했다. 국내에서도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는 국제 외교무대에서 반총장의 역할에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그 다음은 지난 12월 3일 국제로터리 차차기 회장으로 선출된 이동건 부방 회장이다. 그는 수락연설에서 “반기문 UN사무총장을 도와 세계 평화를 위한 활동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했다. 광복과 분단의 현장을 한 몸으로 겪은 경상도 촌마을 출신의 소년이 6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기업의 오너에서 세계 최대 봉사단체의 수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는 “세계로부터 받은 은혜를 ‘내리 사랑’으로 나누어 실천하고 보답하겠다”며 허리를 낮췄다. 국내엔 다소 생소한 인물에서 일약 세계 최대 봉사 단체 수장이 된 이동건 부방 회장에 대해 알아봤다.

한국인 최초의 국제로터리 회장

이동건 회장은 12월 3일 미국 시카고 국제로터리 세계 본부에서 개최된 국제로터리 회장 지명위원회에서 차차기 회장으로 선출됐다.
국제로터리 회장은 두 번에 걸쳐 선출하는데 1차 선출시 두 달 동안 회원들의 이의제기를 받거나 회장 출마자를 받아들인다. 이 기간동안 도전자나 이의제기가 없을 경우 1차 지명자가 회장으로 선출된다.
이 회장도 이같은 과정을 거쳐 최근 회원사들의 만장일치로 회장으로 낙점됐다.
이 회장의 선출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세계 최대의 민간자원봉사단체인 국제로터리 101년 역사상 최초로 한국인 회장이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유엔 사무총장에 한국인 최초로 반기문 전 외교부 장관이 선출된데 이어 국제적 민간단체 수장에 한국인이 선출돼 한국의 국제 외교무대가 한층 넓어졌다는 평가다.
우선 한국인 이동건 회장의 국제로터리 회장 선임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고양시키는데 중요하다는 시각이다. 이동건 회장이 회장으로 재임하는 기간동안 국제로터리의 중요회의에는 태극기와 애국가가 공식적으로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이 회장이 주관하여 제작·사용하는 로고와 표어, 앰블렘 등에는 한국의 다양한 문화양식을 표현할 수도 있다. 또 국제 봉사단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문화사절의 전위로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국제로터리는 국제적인 조직이기는 하나 순수 민간봉사단체를 지향하고 있다.
다만 회원의 정치적 활동은 엄격히 배제되고 있다. 이번 이동건 회장의 회장 선출은 그의 국제로터리에서의 빛나는 활약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로터리의 회장 선출은 국제적으로도 노벨상 수상자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가령 국제로터리 회장 선거기간이 시작되면 해당 후보는 출마공약을 세울 수 없고, 별도의 선거운동도 금지된다. 회장 후보자가 재력이 있다 해도 금전적인 지원이 이뤄질 통로가 아예 차단돼 있어 로비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회장선출을 결정하는 지명위원들은 출마자의 행적뿐만 아니라 인품도 세심하게 검토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국제로터리 회장직에 나서려는 후보자는 로터리 회원으로 봉사활동에 얼마나 열정적으로 참여했느냐가 유일한 평가자료가 된다는 것이다.
이동건 회장은 자신의 회장 선출에 대해 그 공을 한국 로터리 회원들에게 돌렸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로터리 회원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가능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로터리의 회원수는 5만 908명으로 세계 4위이며, 재단기여도 면에서도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다. 이 정도 위상이면 국내 로터리 클럽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셈이다. 이동건 회장의 회장 선출도 국내 국제로터리의 성장과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차차기 회장이지만 임무수행은 지금부터
이 회장의 임기는 2007년 7월부터 1년간 시작된다. 하지만 당장부터 국제로터리에서 회장직에 준하는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차차기 회장으로 임명된 직후부터 차기 회장과 함께 현재 회장에게 사업방향을 익히고 이사회에서 주어지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1년의 사전활동기간을 거쳐 본격적인 회장업무를 맡게 되는 것이다. 이 기간에는 미국 시카고에 있는 국제로터리 회장 집무실과 관저에서 상주하며 근무한다.
국제로터리의 회장업무는 조직의 핵심기조인 평화와 봉사로 일관되는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회장은 세계 각국에 뻗어있는 국제로터리 본부 직원들과 7개국의 국제사무국 직원들을 관장한다. 임기 내에는 국제로터리의 역점사업인 소아마비 박멸운동을 계속 전개한다.
또 세계를 순방하며 각국의 정상들을 만나 지구촌이 안고 있는 보건과 기아문제, 문맹극복, 식수난 등의 해결을 위해 활동한다. 북한에 대한 봉사활동 역시 이 회장이 중요사업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북한의 아동 사망률은 아프리카 극빈국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봉사활동은 한국인이 회장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관심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북한지역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점차로 낮아지고 있어 한국인 1호 회장으로서 중점 사업으로 다뤄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같은 인식에 대해 이동건 회장도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 회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직접적인 지원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는 현재 북한에 공식적인 국제로터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로터리가 현재까지 북한을 도울 수 있는 방법에는 제한이 따르기 마련이다.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북한지원방안에 대해 이동건 회장은 “회장 취임까지 1년여의 기간이 남아있는 만큼 각국의 로터리 지도자들과 협의해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에서 봉사활동을 주관하는 것이 회장의 임무이지만, 중요한 국내 사업을 남겨두고 있다.
그의 임기 중 서울에서는 ‘2009 로터리 국제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1989년 같은 곳에서 국제대회가 열린 이후 20년 만이다. 전 세계 로터리안 4만 명이 참석해 4박 5일의 일정동안 각종 심포지엄과 워크숍을 통해 각종 사업을 보고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물론 서울국제대회는 이 회장이 주관하게 된다.
국제로터리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던 이동건 회장은 국제로터리의 임원이지만 또 하나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경영보다는 로터리활동에 더 충실
그는 부방이라는 중소기업의 오너다. 보온밥솥과 전기다리미 등을 생산하는 생활가전 전문기업인. 이 회사는 최근 영업실적이 다소 감소하고 있다. 회사경영도 바쁘지만 이동건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국제로터리 임원에 충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동건 회장이 일찌감치 경영에서 손을 떼 부방은 현재 90년대 중반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다만 이동건 회장은 국제로터리 활동에 주력하면서 경영철학이나 기업비전 등을 제시한다고 한다.
이동건 회장이 지향하는 경영철학의 단면은 집단 대표이사 체제에서 잘 드러난다. 현재 부방의 대표이사는 이평희, 김성태씨 등 두 명이지만 최근 사임한 삼성물산 출신의 최충재씨까지 포함하면 한때 3인의 전문경영인이 공동경영하기도 했다.
이동건 회장은 90년 중반부터 기업 경영보다는 봉사활동 단체인 국제로터리 활동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이런 관심은 이동건 회장의 부친인 이원갑 창업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후문이다. 당시 이원갑 창업주는 지인들과 함께 부산지역에서 국제로터리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부친의 로터리활동을 지켜본 이동건 회장도 부산방직공장에 상무로 근무하던 1971년 서울 한강 로터리에 가입했다. 이 창업주는 경영에 전념해야 한다는 이유로 클럽가입을 반대했지만, 회원이 된 이후부터는 오히려 이동건 회장의 로터리 활동을 적극 독려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1988년 한강클럽 회장을 거쳐 국제로터리 이사와 재단관리 위원을 역임했다. 그가 총재로 재직한 10개월 동안 32개 클럽을 창립하고 1,783명의 회원을 영입해 국제 로터리 안에서도 회원증가 분야에서는 최고 기록을 냈다는 것이다. 이동건 회장의 장남인 이대희씨도 캐나다 벤쿠버 캠비 로터리 고진명 회장의 차녀와 결혼해 ‘로터리 패밀리’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서울고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이동건 회장은 교내 학보사인 연세춘추의 편집장을 지내는 등 언론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1968년 미국유학 중 귀국해 부친의 권유로 부방(옛 부산방직공장)에 입사해 언론인의 꿈을 접어야 했다. 가업을 이어받아 부친이 창업한 회사를 크게 키웠다. 현재 부방은 유통과 전자산업 분야 등까지 사세를 확장시키고 있다.



# 국제로터리는 어떤 곳…

세명으로 시작해 121만 회원이 모인 봉사모임

국제로터리는 1905년 2월 23일 미국 시카고에서 변호사인 폴 해리스가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결성한 봉사모임에서 출발했다. ‘로터리’라는 이름은 ‘일주일에 한 번씩 각자의 사무실을 돌아가며 모임을 갖는다(Rotate)’는 데에서 유래됐다.
1908년 샌프란시스코에 두 번째 클럽을 결성하면서 미국 전역에 클럽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1922년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국제로터리클럽’이라는 명칭을 갖게 됐다. 국제로터리는 성장을 계속하면서 현재 203개국 3만 2,604개 클럽에서 121만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1978년에는 보건·기아추방 및 인간존중 프로그램과 같은 인도주의 사업을 시작했고, 1985년부터는 6억달러 이상을 투입해 소아마비 박멸사업을 전개해 나갔다. 현재까지 전 세계 20억명에게 소아마비 백신 접종을 실시했고, 25만 명의 어린이들이 소아마비로 인한 사망에서 구제됐다.
한국은 1927년 경성로터리클럽이 처음으로 창립됐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발발로 활동이 중단되었고, 종전 이후인 1949년 서울로터리클럽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1952년 부산클럽을 비롯해 10개의 클럽이 연이어 생기면서 1961년 하나의 독립지구인 375지구가 탄생했다. 현재 한국의 로터리클럽 활동 현황을 보면 17개의 지구, 1,308개 클럽에서 5만 918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현>

현상필  dj0927@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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