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정치,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종교와 정치,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 이금미 
  • 입력 2006-12-01 11:34
  • 승인 2006.12.01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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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장관 내정자 이재정


‘소탈함과 추진력’.
이재정 통일부 장관 내정자 주변 사람들의 촌평이다. 남북관계 및 통일문제에 대한 식견도 갖췄다는 평도 이어진다.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멤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에 대해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러한 이유로 통일부 안팎에선 북핵 위기로 흔들렸던 대북 포용정책 기조가 다시 힘을 받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여러모로 통일부 장관 ‘적임자’라는 얘기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남북관계의 실타래를 풀기도 전에 이 내정자는 ‘친북 편향’이라는 함정에 빠져 있다. ‘보은 인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음에도 잇단 이 내정자의 노무현 대통령과의 ‘코드’ 맞추기 발언이 한나라당의 비위를 건드린 것이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이 내정자를 통일부 수장에 앉힐 것으로 보인다. ‘왜’라는 질문에 앞서 그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이유 있는 ‘윤곽’이 잡힐 듯하다.


이 내정자는 운동권 성직자라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 70년대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인권위와 엠네스티 한국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반(反)유신독재 투쟁가들을 물심양면 도왔다. 기독교 사회주의와 협동사회·공동체는 그가 성직자 신분으로 완성한 큰 그림이다.

운동권 성직자로서 DJ와 인연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한 때는 88년 학장을 맡은 이래 2000년까지 1.2대 총장을 지낸 성공회대 시절이다.
총장 시절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변화를 시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성공회대 주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100만원 보너스’는 이 내정자로부터 연유한다. 90년대 후반 대학에 입시생이 대거 몰리면서 각 대학들은 입시 전형료만으로도 ‘돈’을 벌었다. 물론 성공회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이재정 총장은 교직원들에게 특별 보너스를 지급했다. 물론 성공회대 청소부 아줌마들도 보너스를 챙겼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금액, 100만원이다.
“우리 근·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역사를 변화시킨 주체는 일류 엘리트가 아니라 최소한의 양심과 의식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이다.”
성공회대 시절, 유명한 일화는 또 있다. 운동권 출신 교수들에 대한 특별 대우가 그것이다. 당시 이 총장은 운동 경력에 가산점을 주었다고 한다.
“과거 청춘을 다 바쳐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며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대학이 응분의 보상을 해주는 것은 당연하다.”
말과 일치된 실천이다. 이 총장이 일으킨 변화는 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이 총장의 유명세는 정치권에도 전해졌다. 80년대부터 친분을 쌓아온 정치권 유력 인사인 김대중(DJ) 전대통령과의 각별한 관계가 그것이다. 이 내정자의 정계 입문도 따지고 보면 DJ와의 인연에서 시작된다.
98년 8월부터 99년 12월까지 이 내정자는 국민의 정부의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장을 맡는 것으로 교계와 정계의 경계선에 서게 된다. 성직자로서 부정부패를 관리하는 것이니 만큼, 교계의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당시의 일탈이 본격적으로 정계에 뛰어든 계기가 된다. 이후 이 내정자는 99년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 총무위원장을 거쳐 16대 국회의원(전국구)에 당선됐다.
이 내정자는 애초 ‘김근태 사람’으로 통했다. 재야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이끄는 국민정치연구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자연스레 2002년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도 김근태 후보를 도왔다. 또 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과는 경기고 동기동창으로 정계 입문 후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교회법과 나라법은 달라”
당시 그와 함께 16대 국회에서 활동한 인사들은 이 내정자의 성품에 대해 ‘둥글둥글하다’고 말한다. 성직자 신분, 그리고 특유의 소탈함으로 주위 사람들을 어우르는 스타일이라는 것.
성직자 신분의 존경받는 정치인. 그에 대한 평가가 꼬이기 시작한 때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얽히면서부터다. 당시 김 후보가 제주 경선이 끝난 뒤 사퇴하자 이 내정자는 노무현 후보를 돕기 시작했다. 그는 천정배 의원에 이어 두 번째 노무현 캠프에 합류한 현역의원이다. 열린우리당 창당 때는 전국구 배지까지 버리고 신당에 합류하기도 했다.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2002년 대선 선대위 유세본부장을 맡은 그가 한화그룹으로부터 10억원을 받아 노 후보에게 전달한 혐의로 구속되는 수난을 겪었다는 것. 비록, 2심에서 벌금형(3,000만원)을 받아 풀려나긴 했지만 노 대통령은 마음의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내정자가 노 대통령에게 있어 참여정부 탄생의 ‘1등 공신’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다.
이 내정자 역시 2004년 1월 구속된 이후 ‘정치무상(政治無常)’을 절감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는 정치개혁을 기치로 막 열린우리당이 태동했을 무렵. 창당 핵심 멤버의 불법 대선자금 수수 혐의는 부담이자 외면 이유로 충분했다. 상황은 이 내정자에 대한 재판이 있었던 법정, 이렇다 할 여권의 힘 있는 정치인들의 참석조차도 허락지 않았다. “부정방지대책위원장을 지낸 성직자가 재벌 회장에게서 돈을 받아 대선캠프에 전달했다”는 혐의가 부담이 됐던 것이다.
구속된 이후 이 내정자에게 가장 먼저 영치금(5만원)을 넣어준 사람이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여의도 정가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원내대표였던 김 의원은 “면회를 갔더니 마침 출정중이어서 영치금을 전했을 뿐”이라고 했다.
우여 곡절 끝에 사제의 길로 복귀한 이재정 신부. 그는 “교회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사표를 제출했다. 하지만 곧 반려됐다. 당시 성공회 정철범 교수는 “윤리적인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교회법은 나라법과 다르기 때문에 사제직을 그만들 이유가 없다”고 반려 사유를 밝혔다. 이후 이 내정자는 정치권과 거리를 둬왔다. 2004년 10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 임명되기 전까지 말이다. 물론, 당시에도 ‘보은인사’라는 야당의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6자회담 임박 ‘공석’ 길어질까
그리고 2006년 11월, 이 내정자의 마음 고생은 또 다시 시작됐다.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서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선 이 내정자는 한국전쟁, 김일성, 북한 인권, 북한 범죄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한나라당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야당 의원들은 이 내정자를 ‘제2의 이종석’, ‘실패한 대북정책 신봉자’등으로 표현하며 사상 검증에 나섰다.
지난 11월19일 한 라디오프로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어느 나라 경우에도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 막아본 일이 없다”면서 “2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정부가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편 것이 빌미가 돼 한나라당으로부터 ‘편향된 대북관’이라는 공세에 직면한 것이다. 여기에 ‘한국전쟁’과 ‘김일성’에 대한 유보적 답변에 대해서도 야당 의원들은 꼬투리를 잡았다.
또 ‘보은인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음에도 잇단 이 내정자의 노 대통령과 코드 맞추기 발언도 한나라당에 절대 불가 구실로 작용하고 있다.
“개성공단은 긴 안목을 가지고 유지, 발전시킬 필요가 있으며 금강산관광도 평화에 기여한 부분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지속되는 게 옳다.”
“근본적으로 북미관계에서 풀어야 되기 때문에 미국이 좀 더 유연한 정책을 가지고 북한과의 대화를 풀어나가야 한다.”
한나라당은 이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 채택을 거부하고 있다. 북한 편향적인 역사인식에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한 도덕성의 부족 등 이유도 많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면 바로 해임건의안 제출을 추진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이 내정자를 장관에 임명할 가능성은 커 보인다. 마침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기로 하면서 미사일 발사 이후 높아졌던 위기지수가 비교적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코앞으로 다가온 6자회담을 감안하면 통일부 수장의 오랜 ‘공석’은 이 내정자 임명에 발목을 잡고 있는 야당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마저 엿보이는 형국이다.



# 정·관계 진출 성직자 ‘눈에띄네’
노무현 대통령의 이재정 통일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장관 지명을 계기로 참여정부에서 정·관계에 진출해 활동하고 있는 교계 인사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종교와 정치의 경계 사이를 넘나들며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대표적인 사람은 이재정 통일부 장관 내정자다. 그는 성공회 신부임에도 통일부 장관에 내정된 상태다. 이 내정자는 오랫동안 민주화 인권운동에 참여해온 대표적인 사회참여 성직자이다. 이 내정자는 성공회대 총장을 역임하는 동안 기독교교회협의회(NCC) 통일위원장으로 일하며 민간통일운동에 앞장서왔다. 이는 대북관계 관련, 이렇다 할 실무 경력이 전무함에도 통일부 수장으로서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편, 김용갑 의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는 인명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도 대표적인 교계 인사다. 그는 이 내정자와 함께 NCC에서 함께 활동했던 갈릴리교회 목사다. 또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성해용 목사가 차관급인 국가청렴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이해학 목사가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박종렬 목사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 당시 제2건국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았던 김상근 목사는 지난해 법무부 감찰위원장에 위촉되기도 했다. 오충일 목사는 국가정보원 과거사청산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교계인사들의 정·관계 참여의 분수령은 87년 6월 민주항쟁이다. 문익환 목사의 동생인 문동환 목사가 평화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데 이어 서경석 목사는 한때 목사직을 반납하고 꼬마 민주당 창당을 주도하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 2004년 총선 당시엔 교계 인사들이 기독당을 창당해 적극적인 정치참여에 나서기도 했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선 뉴라이트 연대 운동을 통해 정치화 모색에 나서고 있는 김진홍 목사 등의 움직임을 감안, 18대 총선을 계기로 교계 인사들이 대거 정치권에 편입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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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미  nicky@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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