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6 간첩사건’으로 물러나는 김승규 국정원장
세상이 떠들썩하다. 참여정부 1년여 남짓 남겨놓고 돌연 ‘간첩사건’이 터졌다. 참여 정부에서만큼은 한번도 안 터질 것 같던 간첩사건이 불거진 것이다. ‘북핵’과 ‘간첩사건’ 등 중대사안에 김승규 국정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난다. 국정원장의 사의표명과 관련해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386 외압설’에 대해 청와대는 펄쩍 뛴다. 언론보도를 무조건 ‘음모론’ ‘~카더라’식 보도로 규정하고, 법적 대응까지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점에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포용론과 ‘코드’ 맞는 인사를 자리에 앉히는 것이 간첩사건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종빈· 허준영 전철 밟다
요즘 국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간첩사건’의 흐름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말한다. ‘고정간첩 장민호’ 등 피의자 5명이 올해 초 북한 공작원에게 보고한 사업계획서가 나왔고, 2007년 12월 대선에 대해 북한이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데도 되레 청와대와 여권에선 ‘반(反)김승규 기류’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일부에선 ‘간첩사건’ 조작설까지 거론하는 실정이다. 이번 사건의 여파가 김승규 국정원장의 사퇴로까지 이어졌다는 말이 나돌았다. 김종빈 전검찰총장, 허준영 전경찰청장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정치권의 386핵심세력들의 ‘외압’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간첩사건에 연루된 ‘일심회’ 멤버들이 정치권의 386세력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도 사사로운 일은 아니다.
‘간첩사건’ 냄비근성 적용 ‘흐지부지’
관건은 김 국정원장이 물러난 뒤 노 정권과 ‘코드’맞는 김만복 내정자의 동선이다. 김 내정자는 최근 김승규 현국정원장을 찾아가 “이번 간첩사건을 확실히 마무리 짓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첩사건’은 김승규 현 국정원장이 칼을 빼들었지만 그 끝마무리는 김만복 내정자가 해야 한다는 점도 간첩 사건의 핵심쟁점이 흐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내정자의 ‘입김’이 자칫 이번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펄펄 끓다가 급작스럽게 식어버리는 국민들의 ‘냄비근성’이 간첩사건의 논란 시점에서 적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얘기다.
이번 ‘386간첩사건’에 대한 국정원과 검찰의 시각이 좀 다르다는 점도 문제다. 국정원은 명백한 ‘간첩사건’으로 바라보고 있는 반면 검찰에서는 간첩사건으로 보기에는 불투명하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전문가는 이에 대해 “참여정부 들어 국가보안법의 존폐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됐고, 노 정권은 폐지를 밀여붙여 왔다”며 하지만 “이번 사건은 이념적 대립이나 민노당의 탄압차원을 논할 만큼 단순 사건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노 정권과 ‘코드’ 대치 원인
여기서 짚어볼 일은 참여정부가 줄곧 국보법 폐지를 역설해왔다는 점이다. 김대중 전대통령(DJ), 노 정권으로 이어진 대북기조는 국보법 존치의 불가피성을 역설한 김 국정원장과는 대치 관계였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어 보인다.
간첩단 사건의 베일이 벗겨지면 벗겨질수록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과연 이번 사건이 ‘온전히 삶은 계란 가운데 썩은 계란 하나를 꺼낸 것이냐’하는 문제다.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북한을 껴안고 한반도 탈냉전을 주도해야한다는 주장이 대한민국의 가치관이 무력화되는 계기가 됐다”며 “안전 불감증이 팽배한 상황에서 북한의 위협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냉전적 사고’라며 백안시하고 있어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민노당, 신(新)공안사건 규정 반발
이번 ‘간첩단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장민호 피의자 등 5명의 행적이다. 특히 장민호 피의자의 자료를 압수수색한 결과, 민노당이 연루된 의혹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국정원은 장씨가 지령에 따라 “민노당 내에 민족해방(NL) 활동가 모임을 결성했다는 성과보고를 북한에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장씨가 올해 초 북한에 보고한 사업계획서에는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후보 동향 등이 기록돼 있고, 비밀 문건만도 무려 46건에 이른다고 한다. 민주노동당 전·현직 간부 2명이 연루됐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얘기다.
김 국정원장은 명백한 혐의가 나오기도 전에 이들을 ‘신공안사건’으로 규정, 폭로했다. 민노당은 즉각 반발했고, 여파는 곧장 북한 땅에까지 ‘간첩단’ 규정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민노당 지도부가 방북해 김일성 생가를 방문하고, 오히려 북한 지도부와 함께 김 국정원장을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노당은 되레 김 국정원장의 ‘간첩단 사건’ 발언을 논란의 의제로 끌어올리기에 바빴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김 국정원장의 ‘간첩단’ 발언과 관련,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국정원의 해체까지 주장하고 있는 마당이다. 여권 관계자들은 김 국정원장의 발언이 “국정원의 존속을 위해 조작한 것 아니냐”며 ‘조작설’까지 말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런 부분만을 봐도 경악할 일이다. 민노당의 행보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며 “국가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기획수사 측면 강하다?
김 국정원장은 국정원 내부에서 ‘소신’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국정원 전체적인 분위기가 반영된 언급은 아니더라도 김 국정원장이 “정치적 중립을 고려해 (후임 국정원장은) 내부 인사는 안된다”고 발언한 것이 논란거리는 되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민노당 심상정 의원은 이에 대해 “국가적인 발전과 안보의 측면에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김 국정원장이)정치적인 이해득실을 따져 정보를 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기획수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심 의원은 “당원이 연루된 사건을 마치 민노당 전반을 ‘간첩정당’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왜곡된 음해다”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북한관련 전문가인 한 교수는 “김 국정원장의 ‘간첩단’발언을 논쟁의 핵심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간첩사건 본래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해야할 것이다”라고 했다.
‘간첩사건’ 논점 흐려져선 안 된다
김 국정원장은 호남출신이다. 그는 말수가 적고 과묵한 성격이어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인물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노 정권과 같은 ‘코드’인 김만복 내정자와 껄끄러운 관계였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김 국정원장이 물러나기 전에 ‘간첩사건’을 미리 폭로한 것은 이 사건의 면밀한 수사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며 소신 있는 행보로 평가했다.
들썩이던 ‘386간첩사건’의 보도가 청와대의 엄포로 꼬리 내린 분위기다. ‘법적대응’이라는 청와대의 정면 반박은 정치권·언론에 가히 효과 100배였다.
하지만 청와대, 여권, 민노당측의 공통된 요구사항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실을 규명하고 정확한 실체를 밝혀내는 일”이라고 했다. 김 국정원장의 최종 평가는 수사종결 시점에서 극명하게 갈라질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386출신 김재윤 의원은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며 그러나 “간첩사건이 아닐 경우, 인권침해 논란의 소지가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노무현 정권과 마찰 빚다 옷 벗은 김종빈·허준영
‘구명도생(苟命徒生)’ 하다 줄줄이 사퇴
‘386간첩사건’이 불러온 여파는 상당하다. 이 사건의 파장으로 김승규 국정원장이 물러나게 되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여기서 되짚어볼 일은 김원장과 같이 김종빈 전검찰청장과 허준영 전경찰청장도 노 정권과 마찰을 빚어 물러났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법’과 원칙을 지키고 소신에 따라 행동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김 전총장은 취임한지 6개월여 만에 물러났고, 허 전청장은 11개월 만에 옷을 벗었다.
노 정권은 옷이 단추에 맞지 않으면 그 단추를 과감히 떼어냈다. ‘코드 우선’의 정부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노 정권의 ‘코드 맞추기’식 국정운영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인사논란이 있을 때마다 ‘맞춤형’ 인간을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지도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정권은 ‘배째라 식’ 인사가 여전히 뒤따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럴 때마다 정치권·언론은 ‘이골이 날 대로 났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한다.
김 전검찰총장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사건으로 물러난 경우다. 강 교수의 이적성 수사와 관련, 천정배 당시 법무장관이 “불구속수사하라”며 지휘권까지 행사하자 결국 사표를 던졌다. 당시 천 장관의 행보는 노대통령의 의중이 깔려있는 것으로 봤다. 28년간의 검사생활을 ‘원칙을 지킨다’는 소신 하나로 그렇게 마무리한 셈이다.
지금은 삼성동에 개인 법률 사무실을 둔 김 전검찰총장. 사무실 직원은 3명(여직원, 사무장, 기사)으로 단촐했다. 그는 이번 ‘386간첩사건’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며 말을 아꼈지만 “검찰은 권력을 가진 자에게 강해야한다. 국민들은 정치적인 고려를 하지 않는 강력한 검찰을 원한다”고 말했다.
허 전총장 같은 경우는 보령농민 전용철씨 사망 후 40여일 만에 사퇴했다. 그 배경에는 여권 수뇌부의 압박이 한몫했고, 그 결정적 무기는 ‘검·경 수사권 조정문제’였다.
허 청장이 “경찰의 시위진압은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는 뜻을 굽히지 않자 정치권에선 전 방위적으로 협박성 멘트까지 날렸다는 말도 나왔다.
“허 청장이 계속 버틴다면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압박한 것이다.
이들은 결국 ‘구명도생(苟命徒生)’하다 노 정권에 밀려 사라진 ‘공통 코드’를 갖고 있는 셈이다.
<현>
김현 rogos0119@dali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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