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시민운동 하다 과로사하는 것”
“내 꿈은 시민운동 하다 과로사하는 것”
  • 양세훈 
  • 입력 2006-07-27 09:00
  • 승인 2006.07.2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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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 진영 양쪽에서 차기 대권후보 가운데 한 사람으로 지목되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 최근 여권일각에서 대선후보 영입대상으로 언급되면서 박변호사의 앞으로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하고 나서 그 뜻을 분명히 했다. 현재는 새로운 민간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에 전력을 쏟겠다는 입장이다. 희망제작소는 참여연대와 다른 새로운 시민단체 모델이 될 전망이다.




열린우리당이 짝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나 보다. 박원순 변호사 얘기다. 최근 열린우리당이 경쟁력 있는 대선 후보를 만들기 위해 박변호사를 영입 대상으로 언급하면서 이런저런 추측과 관측이 나오는 상황. 그러나 박변호사는 “모든 얘기가 풍문에 불과할 뿐 대권 후보에는 관심 없고 희망제작소 일에만 충실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한 마디로 열린우리당의 구애는 짝사랑으로 끝날 공산이 커 보인다.80년대는 인권변호사로, 90년대는 시민운동가로, 그리고 지금은 기부와 희망의 전도사인 박원순 변호사. 이런 그의 이력과 영향력을 생각할 때 열린우리당 입맛에 딱 맞아 떨어지는 이상형임에는 분명하다.박원순 변호사는 1956년 3월 26일. 대구에서 버스로 두 시간, 그리고 이십리를 더 걸어 들어가야 하는 경남 창녕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그는 시인도 되고 싶고 정치인도 되고 싶었다고 한다. 결국 판검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서울로 유학와서 74년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게 된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에서 인권변호사로

그러나 서울대 법대생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입학하던 해 ‘김상진열사추도식사건’에 연루되면서 투옥됐고 이로 인해 서울대에서 제적당하고 말았다. 4개월간의 투옥 생활은 그가 서서히 의식화되는 과정이었고 이때 결국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이후 법원 사무관 시험을 보고 강원도 정선 등기소장을 지내기도 했다. 1978년에는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하고 1980년 제22회 사법고시에 도전하여 합격했다. 82년 대구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했지만 1년 만에 사표를 제출했다.최근 그는 검찰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법을 배운 사람으로서 1970~80년대 한국의 고문실태에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사표를 던질 수밖에 없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운다는 자세로 사회악 척결에 힘써달라”며 “스스로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검찰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런 그의 사표는 인권변호사로서의 발걸음을 옮기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83년 대학 졸업과 함께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굵직굵직한 시국 사건을 맡게 된다. 그가 맡은 시국 사건은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5공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부산미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 보도지침사건, 구로구청사건, 건대사태 등 모두 당시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이었다. 특히 그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폭로했던 권인숙 양의 변론서를 작성하면서 진정한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한다. 이처럼 수많은 시국사건을 변론하며 느꼈던 국가보안법의 부당성을 ‘국가보안법연구1.2.3’(1989)이라는 책에서 지적했다. 이 책은 최초로 국가보안법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연구한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시민운동가 정계 진출 긍정적

91년 여름. 박원순 변호사는 돌연 외국 유학을 떠났다. 영국에서 디플로머 과정, 미국에서는 하버드대객원연구원으로 유학생활을 하고 93년 여름에 귀국하게 된다. 그는 귀국 후에도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의 변론을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된다.그리고 94년 9월. 그는 시민운동 단체인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했다. 또한 직접 시민운동 활동가로서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맡아 ‘사법개혁운동’, ‘소액주주운동’ 등을 주도하기도 했다.박변호사는 최근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민운동 하듯이 정치운동을 하면 정치를 하는 것이 반드시 국민에게 지탄받는 직업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 정당들이 많이 썩고 부패했는데 정말 깨끗하고 참신하고 좋은 정책,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다면 국민들이 지지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시민운동가 출신이 정치권으로 가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시민운동이란 것이 돈도 사람도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사회 정의와 공익을 위해 조직을 꾸리고 실천해가는 운동인데, 이런 훈련을 받은 사람은 정치권에 가서도 잘 할 것”이라며 시민운동가의 정계진출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정계진출에 대해서는 “아직도 시민운동을 통해 할 일이 많다”며 정치권에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1%의 기부로도 세상은 따뜻해진다

평소 박원순 변호사는 “나눔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아름다운 힘”이라고 강조한다. 1%의 기부만으로도 세상은 따뜻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 소망대로 결국 2000년 8월 ‘씨앗나무’인 아름다운 재단이 출범하게 됐다.아름다운 재단은 시민들에게 보다 많이 기부의 기회를 주어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해 구성된 재단으로 기금 이름에 기부자의 이름을 붙일 수 있고 기부자가 원하는 곳, 돕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쓸 수 있는 ‘모금형’ 재단이다.이처럼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 등 톡톡 튀는 나눔 사업으로 진보의 영역을 확장시켜 온 그가 새로운 변신을 시도 했다. ‘희망제작소‘(makehope.org)’라는 이름의 민간 싱크탱크가 그 것. 박원순 변호사는 “최근 몇 년 동안 외국에 나갈 기회가 많았는데 우리나라는 민간연구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희망제작소를 계획하게 됐다”며 “시민의 삶 속에서 반짝이는 제안을 모아 정책에 반영시키겠다”고 출범식에서 말했다.

그의 말대로 희망제작소는 재작년부터 생각했고 작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생활하면서 구체화했으며 귀국 이후에도 쭉 준비해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금년 1월부터 연구원 20명을 채용해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가 지난 3월 27일 출범했다. 희망제작소는 지방자치시대에 걸맞게 ‘작은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지자체에 제공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연구소를 운영하게 된다.그러나 일부 언론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가 않다. 결국 진보진영이 위기타개를 위해 희망제작소를 만들었다는 비난은 물론 최근 여권 일각에서 흘러나온 박변호사에 대한 대선후보 영입설로 대망제작소 아니냐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박변호사는 죽을 때까지 시민운동가로 남고 싶어 한다. 이런 그가 ‘아름다운 가게’ 간사들에게 신년회 때 이런 농담을 했단다. “내 꿈은 시민운동하다가 과로사하는 것이다” 그랬더니 다음 날 책상 위에 간사들이 ‘과로사 이기는 법’이라는 책을 올려놓았다고.

# ‘희망제작소’는 어떤곳?21세기형 실학운동 펼친다

시민사회단체 출신 주요 인사를 주축으로 한 민간 싱크탱크 ‘희망제작소‘는 지난 3월27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창립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한 단체다.김창국(전국가인권위원장)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지은희 덕성여대 총장, 이옥경 내일신문 전편집국장 등으로 구성된 사회인사 18명이 모여 만들었으며 시민의 생활 속 아이디어를 가공, 정부 정책에 반영토록 할 계획이다.창립선언문에는 “18세기 명분과 관념에 사로잡힌 양반사회의 틈새에서 실학이라는 희망의 싹이 돋아났듯이 오늘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나갈 ‘21세기 실학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히고 있다. 즉 시민 아이디어를 정책에 반영하는 ‘사회창안 사업’과 정책 콘텐츠를 지방 정부와 기업에 제공하는 ‘뿌리 사업’을 주축으로 ‘대안센터’, ‘공공문화센터’, ‘지혜창고실’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 박스 인 박스

ㅇ사회창안센터 사회창안(Social Invention)은 새로운 방식의 ‘희망 찾기’입니다.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시민 속으로’, ‘현장이란 이름의 밑바닥으로’ 내려가겠다는 선언이며, 실천의 신호탄입니다. 정책은 대단한 학위를 가진 교수나 전문가, 고위공직자들만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창안은 시민의 아이디어로부터 구체적인 정책을 실현하겠다는 실사구시의 바람, 제2의 실학혁명입니다.

ㅇ뿌리센터 희망제작소 뿌리센터는, 지역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살아있는 연구와 관련 사업을 통해 대한민국의 뿌리를 건강하게 하고 ‘희망이 넘치는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이를 위해 심층적인 지역연구와 지역활성화를 위한 관련 사업을 전개하여, 지속가능한 지역만들기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려 합니다. 특히 지역의 여건과 특색에 맞는 콘텐츠 개발과 차별화된 전략을 수립하여 지역경쟁력을 강화시키겠습니다. 또한 지역의 여러 주체와 협력하여, 인간 중심적이고 환경친화적이며 문화가 살아 숨쉬는 창조적 지역을 만들기 위해 연구역량을 집중시키려 합니다.

ㅇ대안센터 대안센터는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조화를 바탕으로, 인본주의에 근거하여 모두가 대접받는 민주주의사회,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이를 위해 시민이 다 함께하는 공동체 속에 소외된 지역이 없도록 하며, 인간을 생각하는 따뜻한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분단의 고통을 넘어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속가능한 사회를 추구하면서 지구사회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들을 찾고자 합니다.

ㅇ공공문화센터 문화. 얘기하기도 쉽고, 정의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죠. 왜냐하면 문화는, 개인과 사회가 처음부터 하나로 묶여 있는 공공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공문화영역은 단순히 행정적인 차원이 아니라, 문화정치의 차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성찰하고, 나서서 정의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ㅇ지혜창고실 “온 세상의 지식을 네트워킹하라”세상의 지식은 많이 있지만 삶의 내용에 적용되지 못하고, 모아지지 않으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 될 것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듯이 흩어져있는 지식을 모으고 다듬어 지혜로 만드는 일은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무한정 쏟아지는 지식을 지혜창고에 잘 모으고, 정리하여 세상을 향해 공유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창고실의 목표입니다. <희망제작소 홈페이지 발췌>

양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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