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상형은 심은하였다?
한달 넘게 국내 신문의 스포츠면에 하루도 빠짐없이 이름이 오르내렸던 새신부 박리에씨는 미국에 처음 건너갔을 때 박찬호가 생각하고 있던 신부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1994년 4월 엄청난 벽을 느끼며 빅리그에서 며칠을 버티지 못한 채 마이너리그로 떨어졌던 박찬호의 아픔을 달래줬던 이상형은 그해 농구 드라마의 지평을 열었던 ‘마지막 승부’에 출연했던 ‘다슬이’(심은하)였다.박찬호는 포근하면서도 청초한 느낌을 줬던 심은하의 드라마 데뷔작이었던 ‘마지막 승부’의 다슬이를 배우자의 첫번째 결혼 조건으로 여겼다. 이 같은 생각은 박찬호가 텍사스 레인저스 이적과 동시에 갑자기 찾아온 슬럼프에 빠졌을 때까지 변함이 없었다.현지 신문과 방송에서는 연일 ‘먹튀’라며 비난을 퍼부었고, 심지어 일부 팬들은 구단을 향해 ‘방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박찬호가 동양인이라는 점도 비난의 강도를 높이는 요인이었던 것은 틀림없다.아무튼 신문을 펼쳐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극심한 마음고생을 겪으면서 박찬호의 여성관도 바뀌었다.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라는 흘러간 대중가요의 노랫말처럼 박찬호는 자신을 낳고 길러준 어머니 정동순씨의 모습을 오버랩시켰고, 외모 보다는 다정다감하면서도 이지적인 여성을 반려자로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국내외 매스컴에 박리에씨의 사생활이 알려진 것이 없어 박찬호의 평소 여성관에 어느 정도 부합한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일부 공개된 그녀의 프로필과 이들의 만남을 곁에서 지켜본 지인들의 소감을 모아보면 공통점은 있다.박찬호가 우리 나이로 서른셋에 장가를 갔지만 그동안 혼담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해마다 시즌이 끝난 뒤 귀국했을 때마다 미모와 학력, 재력 등을 두루 갖춘 일등 신부감들이 박찬호의 중매 리스트에 올랐고, 더러 만남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모든 만남이 불발에 그쳤지만 박찬호 본인이 거부한 것도 있었지만 어머니 정동순씨가 갖고 있는 며느리 자격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면도 없지 않다.그러나 박리에씨는 박찬호와 이제 시어머니가 된 정동순씨의 마음에 들만한 매력이 있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박찬호는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단정하고 차분한 외모가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박찬호와 박리에씨의 첫 만남은 1년여전 일본 도쿄에서 이뤄졌다. 이미 지인을 통해 박씨에 대한 신상파악이 끝났던 박찬호는 박씨의 아버지가 딸의 맞선 상대가 세계적인 운동선수라는 이유로 교제를 주저한다는 말을 듣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영화배우 박상원 정준호와 함께 자신과 호형호제하는 탤런트 차인표를 대동했다.
차인표는 박찬호의 맞선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회원들만 출입하는 멤버십 레스토랑을 예약했고, 좀 떨어진 자리에서 둘의 만남을 지켜봤다. 차인표는 당시 “첫 인상이 수수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고 박리에씨에 대한 첫 인상을 소개했다. 이날 만남이 무난하게 이뤄지면서 박찬호는 그때부터 일본을 오가며 사랑을 엮어나갔다.출신지만 보면 박리에씨는 박찬호의 아내감은 아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는 재일동포 3세로 일본 조치대(上智大) 문학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전공은 엉뚱하게도 요리였다. 그녀는 요리학교인 CIA에서 전문적으로 요리를 공부했고, 프랑스 리옹의 레스토랑에서 실습을 하기도 했다.
피로연 음식도 직접 장만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는 요리교실을 운영하면서 음식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요리 전문가답게 결혼식이 끝난 뒤 저녁까지 이어진 피로연에서 쓸 음식을 직접 장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가 한국인이라기 보다는 일본인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또다른 단서는 이름이다. 처음 국내에 알려진 그녀의 이름은 ‘리애’였다. 하지만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밝혀진 그녀의 이름은 한자로 배리(梨)에 은혜혜(惠)자를 쓴 ‘리혜’. 하지만 그녀는 리혜의 일본식 발음인 ‘리에’로 불러주길 요청했다.박리에씨의 집안은 작고한 할아버지 때부터 일본에서 상당한 부를 쌓았다. 아버지 박충서(63)씨는 도쿄에서 부동산 전문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98년에는 일본 전체에서 개인 납세액 76위(2억8,170만엔)에 오르기도 했다. 박씨는 부친의 이름 딴 ‘박용구 재단’의 이사장직도 맡고 있다.
박충서씨가 상당한 재력가라는 사실은 박찬호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었다. ‘돈과의 결합’으로 비쳐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박찬호는 박리에씨와의 만남이 계속되면서 예비 처가가 밖으로 알려지는 것에 신경을 무척 썼다. 데이트를 주로 실내에서 했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그러나 이 같은 비밀 데이트는 올 시즌 국내 언론을 통해 박씨의 실명과 함께 공개됐고, 박찬호는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3월 약혼한 사실과 11월29일 결혼날짜를 밝혔다.박찬호는 스스로 결혼날짜를 발표했지만 적잖게 부담을 느낀 나머지 “결혼 보도 때문에 운동에 집중을 못해 두게임 정도 놓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많은 사람들은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로 성장한 박찬호가 결혼설 보도로 흔들렸다는 것에 의문을 나타냈지만 박찬호의 내성적인 성격을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결혼 소식을 털어놓으면서도 장소와 시간 등 세부적인 일정을 비밀에 부쳤던 것도 내성적인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얼마나 보안에 신경을 썼는지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도 가족과 친지, 그리고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해줄 수 있는 지인 등 30여명에 불과했다.
심지어 박찬호는 한국에서 출발하는 하객들을 한국 항공사가 아닌 일본항공편을 이용하도록 조치했다. 참석자 가운데 연예인으로는 박상원이 유일했고, 초청장을 받은 정준호와 차인표는 촬영 때문에 동행하지 못했다. 야구인으로는 공주중동초등학교부터 공주고까지 같이 지낸 고향친구 홍원기(두산)가 참석했다. 미국 야구관계자로는 박찬호가 처음 빅리그와 인연을 맺었던 LA다저스 구단주였던 피터 오말리씨가 참석, 박찬호의 결혼을 축하했다. 아들 둘을 두고 있는 오말리 전구단주는 지금도 박찬호를 “셋째 아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박찬호도 올해 초 오말리 전구단주의 집을 찾아 예비신부를 인사 시켰다.예부터 ‘새 며느리 하나가 집안을 흥하게 할 수도 있고,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 있다.
올해 4년만에 두자릿수 승수인 12승(8패)을 올리며 재기에 성공한 박찬호가 내년 시즌에 완전히 부활하기 위해서는 박리에씨의 내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박찬호도 결혼식이 끝난 뒤 아내의 내조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을 밝혔다. “행복하다”는 말로 운을 뗀 박찬호는 “앞으로는 안정을 되찾아 더욱 편안하게 야구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흡족해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엿볼 수 있는 소감이기도 했다.박찬호-박리에 커플은 비공개 결혼을 의식해 오는 1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지인들을 초청, 별도의 피로연을 개최할 예정이다. 메이저리그 개인 통산 100승 달성 축하연을 겸한 이날 피로연에는 야구인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친분이 깊은 연예인들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철통보안 속 하객 30명
인기 MC인 김승현 정은아가 사회를 맡고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정준호가 게스트 MC를 맡는다. 축가는 ‘기억상실’ ‘날 그만 잊어요’를 부른 가수 거미가 맡기로 했다.박찬호 커플은 이미 LA에 있는 박찬호 집에 신방을 꾸며 놓은 상태. 하와이에서 허니문을 보낸 박찬호의 이번 귀국에는 또 다른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박찬호가 그동안 번 돈으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짓고 있는 13층짜리 건물이 곧 완공될 예정인 것. 이 건물은 지하 4층, 지상 13층 규모로 시가 100억원대를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자신의 국내매니지먼트사인 팀61 사무실과 박찬호 장학회 등이 들어선다. 돈과 명예에 이어 평생의 반려자를 맞은 박찬호의 두번째 인생은 시작됐다.
권정식·스포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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