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달리는 기관차…명문 맨체스터 차세대 각광
‘한국인 1호 프리미어리거’. 박지성이란 이름이 언론에 거론될 때마다 따라붙는 수식어다. 박지성은 지난 6월22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U)에 당당히 입성했다. 그러나 박지성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만 해도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유망주들에게 곧장 붙곤 하는 ‘천재’나 ‘신동’과 같은 수식어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세울만한 경력이라고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받은 ‘차범근 축구상’이 전부였다. 그런 그가 ‘꿈의 리그’라고 불리는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박지성의 지인들은 천성적인 부지런함과 지칠줄 모르는 체력이 비결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체적 핸디캡을 후천적인 노력으로 극복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박지성의 한 지인이 언론을 통해 털어놓았던 일화 한토막. “운동선수들은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한번 마시면 일반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박지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는 맥주 한 잔이 주량입니다.
그러나 소속팀인 교토 퍼플상가가 2부로 추락할 때는 술을 많이 마시더군요. 이날 만큼은 박지성에겐 술이 아닌 물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술병의 양도 늘어갔고, 날이 훤하게 밝아왔습니다. 숙소에서 곯아 떨어진 후 오후에 일어나 보니 박지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래층 경비실 아저씨로부터 운동을 나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렇듯 박지성은 신체적 핸디캡을 천성적인 부지런함으로 극복했다. 이런 박지성에게도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명지대 1학년 재학 시절 시드니올림픽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 참석하게 된 것. 이 자리에서 허정무 당시 국가대표 감독의 눈에 뜨인 박지성은 올림픽대표팀에 발탁하게 된다. 물론 첫출발은 쉽지 않았다. “체구도 작고 별 특징도 없는 선수를 왜 뽑느냐”는 비난여론이 적지 않았다. 이때가 박지성의 첫 번째 시련기였다. 그러나 ‘반드시 대성할 선수’라면서 전폭적인 믿음을 보낸 허정무 감독 때문에 박지성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박지성의 기량이 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다.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터트린 결승골은 아직도 축구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PSV 아인트호벤으로 둥지를 옮겼다. 아인트호벤에서의 2년6개월은 오히려 박지성에게 시련과 극복의 세월이었다.
이적 초반만 해도 전혀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릎 부상까지 겹치면서 팬들의 원성까지 받아야 했다. 박지성이 공을 잡을 때마다 ‘우~’ 하는 야유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동양에서 온 이상한 선수가 팀을 망친다”는 욕설까지 흘러나왔다. 그러나 박지성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특유의 성실함과 끈기로 버텼다. 그리고 2004~2005 시즌에 오른쪽 측면 공격수를 맡아 입지를 굳혔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팀을 4강행에 올려놓으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주목, 전격적으로 잉글랜드 맨U에 입단했다. 박지성은 현재 치열한 주전경쟁을 벌이고 있다. 루드 반 니스텔루이,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 등 세계적인 스타들과 함께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 최근에는 노르웨이 출신 노장 스트라이커 올레 군나르 솔샤르까지 가세, 주전을 노리는 박지성을 위협하고 있다.
물론 솔샤르는 장기 결장으로 인해 컨디션 회복이 쉽지 않고, 나이도 많아 명성만큼 위력이 대단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호나우두 등과 치열한 주전경쟁을 벌여야 하는 박지성으로서는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박지성은 에버튼전 85분, 아스톤 빌라전 60분, 뉴캐슬전 9분 등 시간이 흐를수록 출전시간이 줄고 있다. 국내 언론들이 “하루 빨리 데뷔골을 쏘아올려 입지를 굳건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박지성의 지인들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박지성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무사히 맨U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 한솥밥을 먹던 이영표가 최근 프리미어리그 토튼햄에 입단한 터라 박지성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이들은 기대하고 있다.
영표 드리블의 마술사… 토튼햄 희망으로 부상
“정말 멋진 일입니다.” 마침내 ‘꿈의 무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첫발을 내디딘 ‘초롱이’ 이영표. 지난 9일 토튼햄 훗스퍼의 홈구장 화이트레인 스타디움에서 입단식을 가진 그는 긴장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영표는 지난달 31일 토튼햄 구단 입단 계약서에 사인했다. 그러나 취업비자 발급이 늦어 예정보다 늦은 7일 오전에야 영국땅을 밟았다. 뒤늦게 합류해 동료들과 호흡을 맞출 기회조차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첫 훈련에서 활기 넘치는 플레이로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그러면서 “프리미어리그는 더 빠르고 더 강하며 더 역동적”이라면서 “토튼햄은 PSV 에인트호벤과는 분명히 다르다. PSV가 볼을 소유하며 경기를 이끄는 것과 비교해 볼 때 토튼햄은 빠르고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것 같다”며 나름대로 분석까지 내놓았다.
사실 이영표는 축구선수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케이스가 아니다. 주변에서 평가하는 이영표는 한마디로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 전부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꿈의 무대’라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할 수 있었을까. 이영표가 처음 축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이다.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축구를 처음 접했다. 당시를 기억하는 동료들은 하나같이 이영표를 ‘지독한 연습벌레’라고 회상한다. 그가 이렇게 억척을 떨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이영표는 축구선수로는 다소 왜소한 176cm, 66kg의 체격조건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같은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몇배의 노력을 기울여야했던 것. 이영표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허정무 사단에 들어가면서부터다. 허정무 올림픽대표팀 감독에 의해 발탁된 이영표는 좌측 미드필더로 오버래핑과 수비를 오가며 종횡무진 누볐다.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던 2000년에는 드래프트 1위를 차지하며 안양LG에 입단했다. 당시 이영표가 받은 몸값은 신인으로서는 최고 대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영표는 프로에 입단해서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동료 선수들이 모두 잠든 야밤에도 드리블 연습이나 체력 연마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평생 있을까 말까한 국가대표 선수로 월드컵 무대에 서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이영표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계기가 됐다. 월드컵 4강 신화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기 때문이다. 조별리그인 포르투갈전에서 선보였던 박지성의 그림같은 골을 어시스트한 주인공이 바로 이영표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안정환이 터트린 연장 골든골도 바로 이영표가 어시스트했다. 월드컵이 끝난 후 이영표는 가장 먼저 히딩크의 부름을 받았다. 네덜란드 리그의 적응도 순조로웠다. 동료인 박지성이 적응기에 어려움을 겪은데 반해, 이영표는 단숨에 주전자리를 꿰찼다. 지난달 31일 토튼햄 핫스퍼에 입단한 이영표가 이곳에서도 큰 어려움 없이 주전자리를 꿰찰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욜 감독도 현재 이영표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욜 감독은 평소 공격적인 축구를 선호한다. 때문에 그는 이영표의 강한 체력과 스피드가 돋보이는 공격 가담능력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리그에서 벌어진 26개 경기 가운데 19개 경기를 소화할 정도로 강한 체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수비수임에도 기회가 날 때마다 공격수의 몫까지 해낼 수 있는 공격 가담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 실제로 욜 감독은 “공격에 가담하면 윙과 같고 수비를 할 때에는 풀백의 역할을 다 한다. 프리미어리그에도 이영표 만큼 활발한 공격력에 수비능력까지 갖춘 선수는 없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번 프리미어리그 진출은 그의 축구인생에 있어 최고의 기회임이 틀림없다. 이영표 스스로도 토튼햄에서의 생활이 자신의 인생에서 중대한 전환점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만큼 그의 각오는 유난히 남다르다. “잉글랜드에서 뛰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는 그는 자신에게 기회를 준 욜 감독에게 감사하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특히 이영표는 “토튼햄 이적은 유럽 챔피언스리그 출전과 함께 나의 유럽 생활에서 가장 큰 전기가 될 것”이라며 “많이 배워 한차원 수준높은 경기를 펼치겠다”는 야무진 각오를 내비쳤다.
이석,이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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