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요직 두루 섭렵
1944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난 김 장관은 순천 매산고를 졸업할 때까지 고향에서 지냈다. 68년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70년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73년부터 군 법무관으로 병역을 마친 김 장관은 75년 광주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검찰에 입문했다. 이후 김 장관의 검찰 생활은 탄탄대로였다. 서울지검 형사5부장, 수원지검 차장, 서울지검 남부지청장, 대검 감찰부장, 수원지검장, 광주고검장, 법무차관, 대검차장, 부산고검장 등 검찰 요직을 두루 거쳤다.서울지검 형사부장 시절 주먹구구식으로 관리되던 벌금 징수업무를 전산화해 직원들의 부정부패 소지를 없애는 등 검찰행정 업무에도 정통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검 감찰부장 시절에는 대전 법조비리 사건을 진두지휘하면서 선후배 검사를 조사해야 하는 ‘악역’을 맡아 눈물을 쏟았다는 일화도 있다.
또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인 2000년 검찰 고위직 인사때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서울지검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개인 사정을 이유로 고사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검찰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고 권력 등 주변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던 김 장관의 성격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사례다.김 장관의 모범적인 법조인상은 현 정부 출범이후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집권에 성공한 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기치로 비검사 출신인 강금실 변호사를 참여정부 첫 법무장관에 발탁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강 전 장관이 취임하자 당시 부산고검장이었던 김 장관은 사시 12회 동기인 한부환 법무연수원장, 이종찬 서울고검장과 함께 용퇴를 결정했다. 김 장관은 용퇴 당시 “국민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지 못하는 실추된 오늘의 검찰 위상을 되새기면 슬픔과 부끄러운 마음에 가슴이 저려온다”는 의미 심장한 퇴임사를 남기기도 했다.
법무장관에서 국정원장 직행
이처럼 마음 한 구석에 서운함과 비통함을 숨기고 검찰을 떠났던 김 장관은 지난해 7월 강 전 장관 후임으로 화려하게 친정으로 복귀했다. 용퇴 당시 그와 검찰의 인연은 이제 끝이 났다는 지배적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검찰 최고위직에 등극한 것. 김 장관이 예상을 깨고 법무장관에 발탁되자 법조계 주변에선 한때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고사성어가 떠돌기도 했다. 사시 동기생 중 선두그룹을 형성하지 못했던 김 장관이 가장 먼저 법무장관에 발탁됐기 때문이다. 동기생인 사시 12회중 선두주자는 김각영 전 검찰총장, 신광옥 전 법무부 차관, 이종찬 전 서울고검장, 임휘윤 전 부산고검장, 한부환 전 법무연수원장, 윤동민 전 법무부 보호국장 등이었다. 하지만 이들 선두그룹은 정치적 이해관계 및 비리 연루 등으로 중도에 탈락한 이후 현재까지 공직 진출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 장관이 법무장관에 이어 국정원장으로 직행하는 등 뒤늦게 관운이 따르고 있는 것은 권력과 일정거리를 유지하는 등 비 정치성향의 무색무취한 성격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실제로 김 장관은 국민의 정부 시절 법무부 차관, 대검 차장 등 요직을 역임했으나 서울지검장을 건강을 이유로 동기에게 양보했다. 또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도 제의 받았으나 고사했다. 호남 출신인 김 장관에게 DJ 정권이 물밑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그는 정권 핵심부와 항상 일정거리를 유지했다.김 장관이 당시 민정수석직을 받아들였다면 국정원장은 말할 것도 없고 법무장관 발탁도 힘들었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해 7월 법무장관에 취임한 김 장관은 강 전 장관시절 법무부와 검찰간에 쌓였던 보이지 않는 앙금을 털기위해 노력했다. ‘서열파괴’로 시작됐던 참여정부 검찰인사도 연공서열 중심의 안정적 인사로 돌려놨다.
하지만 현 정부가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는 검찰 개혁과 관련해서는 이렇다할 성과물 없이 자리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아니 오히려 김 장관 입장에서는 친정인 검찰권을 축소하는 방향의 개혁안이 자신의 임기내에 처리되지 않은게 다행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실제로 김 장관은 취임이후 검찰의 자존심인 ‘대검 중수부 폐지론’ 중심에 있었고, 지금까지 검찰 권한 축소 등과 관련해 사개추위, 법원, 경찰 등으로부터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김 장관이 청와대측으로부터 차기 국정원장을 제의 받고도 고사한 배경에는 검찰과 법무부가 처한 작금의 민감한 현안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기존 검찰 수사 및 재판제도의 급격한 변화가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것을 주무 장관으로서 잘 조정하고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16일 인선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청와대 인사추천회의의 추천절차를 거쳐 김 장관을 새 국정원장 후보로 지명했다.
정치권 입김 구설수
청와대측은 차기 국정원장 내정 배경과 관련해 김 장관이 국정원의 ‘탈(脫) 정치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국정원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국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이라는 점을 감안, 김 장관이 오랜 공직생활을 통해 철저한 검증을 받았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한나라당 등 야권 일각에서는 호남 출신인 김 장관을 발탁함으로써 호남민심을 다잡기 위한 여권의 정치적 포석이 인선 배경에 깔려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고 원장이 사의를 표명하자 청와대 관계자들은 노골적으로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을 후임자 1순위로 거론하는 등 사실상 권 보좌관이 내정됐음을 암시했다. 그러자 열린우리당은 즉각 제동을 걸었다. 정치인 발탁 등에 좀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후 청와대는 권 보좌관을 포함해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윤영관 전 외교부장관 등 후보군을 추가하며 검증작업에 돌입했다. 국정원장 인선을 둘러싼 당-청간 기 싸움이 물밑 진행됐던 것. 또 이 과정에서 차기 대권주자들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펼쳐졌다는 후문이다. 차기 국정원장은 내년 지방선거는 물론 상황에 따라 차기 대선정국을 관장하는 최고 정보기관 수장 역할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정원장 인선 과정에서 온갖 구설수와 음해성 루머들이 난무했던 것도 차기 국정원장의 역할론과 무관치 않다. 실제로 여권 주변에서는 노 대통령이 김승규 카드를 최종 선택한 것은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의 강력 추천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 의장과 김 장관은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으로 지난해 4·15 총선때도 문 의장은 김 장관에게 고향(전남 광양 구례)에서 출마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우여곡절 끝에 차기 국정원장으로 내정된 김 장관이 ‘정치적 인선’이라는 정치권 일각의 시각을 불식시키고 국정원 혁신을 원활하게 이끌어갈 적임자로 거듭날지 주목된다.
# 미리 보는 차기 국정원장 내정자 지상청문회
특별한 결격사유 없어 무난 평가…지역 안배 차원 인사는 논란 일 듯
몇 차례의 번복을 거듭하던 고영구 국정원장의 후임으로 마침내 김승규 전 법무장관이 최종 낙점됐다. 올해로 61세인 김승규 내정자는 전남 광양 출신으로, 순천 매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사시 12회에 합격한 뒤, 수원지검장, 광주고검장, 법무부차관, 대검 차장 등을 무난히 수행했다. 때문에 정부나 여권 안팎에서는 이번 인사를 놓고 특별한 결격사유 없는 비교적 무난한 인사라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는 김 내정자의 경우 국정원의 정치적인 색깔을 없애고자 하는 노 대통령의 코드에도 딱 맞는 인사였다고 말한다.
김완기 청와대 인사수석은 “검찰 및 법무부의 주요 직위를 두로 역임하면서 안정적인 조직관리 능력을 보였다”면서 “청렴 강직한 성품을 바탕으로 탈정치, 탈권력을 진행하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혁신을 원활하게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내정자의 인선을 놓고 적지 않은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호남 출신’이 후보 요건에 포함된 것은 호남지역의 ‘반여 정서’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지역적 배려가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김 내정자는 변호사 시절 호남출신 정치인의 변호활동을 많이해 왔다. 친형인 김명규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검찰에 기소됐을 때도 김 내정자가 직접 변론을 맡았다.
때문에 한나라당을 포함한 야당에서는 향후 이 점에 대해 집중포화를 퍼부을 것으로 정치권은 전망하고 있다. 법조인 출신인 김 내정자가 정치색이 짙은 국정원을 무난하게 이끌 수 있을지도 변수다. 여당에서는 그동안 정치색이 옅은 ‘관리형’보다 여권 내 정보 공유를 원활히 할 ‘정치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김 내정자는 ‘정치형’이라기보다는 ‘관리형’에 가깝다. 때문에 다음달 5일 있을 청문회에서 여당이 어떻게 나올지도 주목을 끌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 내정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질을 평가하는 청문회를 앞두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겸손하고 정직한 자세로 받아들이겠다”고만 말했다.
홍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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