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브랜드 ‘주·영’뜨다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주·영’뜨다
  • 김재윤 
  • 입력 2005-06-14 09:00
  • 승인 2005.06.1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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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열렸던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 대 우즈베키스탄전. 경기종료직전까지 한국은 0-1로 우즈베키스탄에 뒤지고 있었다. 패한다면 최종전까지 치러봐야 본선 진출여부를 알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지난 3월 26일 사우디 원정경기에서 0-2로 패한 ‘담맘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경기종료직전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다. 승점 1점을 획득함으로써 본선진출에 한 발 다가선 그야말로 ‘천금같은’ 골이었다.그리고 지난 9일, 본선진출 여부를 결정지을 운명의 쿠웨이트전. 전반 초반 쿠웨이트의 거친 공세에 고전을 면치 못하던 한국은 번개같은 역습으로 선제골을 터뜨렸다. 그 골로 인해 경기 주도권을 단숨에 거머쥔 한국은 쿠웨이트에 4-0의 대승을 거두며 월드컵 6회 연속 진출의 금자탑을 쌓았다. 위의 두 골의 주인공은 박주영이었다. 청소년대표팀에서 보여준 그의 발군의 실력은 성인대표팀에서도 그대로였다. 한마디로 이번 원정 2연전은 그에 의한, 그를 위한 무대였다.

열아홉 청년, ‘신드롬’ 넘어 ‘신화’ 를 만들다.

이번 원정 2연전은 박주영의 ‘천재성’ 이 다시 한 번 발휘된 무대였다. 박주영은 우즈베키스탄전에 이어 쿠웨이트전에서도 단 한 번 찾아온 득점 찬스를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시키는 ‘킬러 본능’ 을 과시하며 골잡이란 이런 것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의 활약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발에서 축구공을 놓지 않으며 천재성과 킬러 본능을 키워왔다.유년시절 그의 환경은 축구를 할만큼 넉넉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 ‘맨발의 축구선수’ 였다. 한번 축구화를 잃어버리면 당장 살만한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축구화를 잃어버린 후 그는 늘 맨발로 축구를 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볼 터치와 볼 감각을 익히는데 도움이 됐다.

또, 마땅히 공을 찰만한 장소가 없었던 그는 주위 환경을 축구장으로 이용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재래시장에서 드리블 연습을 했다. 이는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도 돌파력을 높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슈팅연습은 벽에 붙여진 포스터에 축구공을 명중시키는 놀이를 통해서 익혔다. 슈팅 연습을 하다 남의 집 유리창을 박살낸 적도 부지기수며, 이때마다 집 전화번호만 남겨놓고 사라져 동네에서 박주영 집 전화번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천재성에 노력을 더한 박주영은 고교와 대학을 거치면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박주영 신드롬’ 은 시작됐다. 고교 3학년 때인 지난 2003년에는 4개 대회에서 득점왕에 올랐다. 그 해 그는 33경기에서 47골을 쏟아냈다. 또, 작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는 6골을 넣어 한국에 통산 11번째 우승을 안기며 득점왕, MVP를 독식했다.

그리고 아시아축구연맹 선정 아시아 신인상을 수상했다.지난 1월 카타르 8개국 청소년축구대회에서 매경기 골을 터뜨리며 총 9골을 작렬, 팀 우승을 견인하며 득점왕과 MVP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그의 기량은 이미 ‘청소년급’을 넘어섰다. 3~4명을 가볍게 제치는 환상적인 드리블,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면서 어떤 위치에서도 슛을 날리는 골 결정력, 빈 공간을 향해 찔러주는 날카로운 패스와 폭발적인 스피드 등 이전 토종 킬러들과 차원이 다른 ‘괴물’의 출현에 축구팬들은 열광했다.

이에 축구관계자들과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박주영을 성인 대표팀에 기용해 대표팀의 골 결정력을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박주영은 곧 한국 축구의 희망이자 미래였다. 축구계는 대표팀 골잡이였던 차범근, 황선홍의 계보를 이을, 혹은 그를 넘어설 만한 재목을 발굴했다며 야단법석이었다. 순진한 얼굴과 기도하는 모습은 그를 더욱 아름답게 포장했다. 심지어 그는 광고모델로까지 데뷔하기에 이르렀다. 광고주들은 “박주영은 신선하고 역동적인 그러나 순수한 이미지를 가졌다” 며 앞다퉈 그를 섭외했다.

프로 입문, 시련통해 거듭난 계기돼

어린 나이에 화려한 이력을 쌓은 박주영. 그는 스카우트의 표적이었다. 고려대 입학 이전부터 박주영을 잡기 위해 11개 프로구단은 물론 일본 J리그 팀들도 그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영입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박주영은 지난 3월 고려대를 중퇴하고 ‘FC서울’과 전격 입단계약을 맺으며 성인무대에 등장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시련의 시기가 닥쳐왔다.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언론과 팬들의 과도한 관심과 성인무대에 대한 중압감, 상대팀 수비수의 거친 수비로 제 기량을 다 발휘하지는 못한 것이다.

축구인생에서 처음 맛본 좌절이었다. 재능 많고,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된 선수들이 대부분 겪는 슬럼프였지만 그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비판도 거셌다. 프로 데뷔 이후 박주영을 지켜 본 본프레레 감독의 시선도 점차 싸늘해졌다. 본프레레 감독은 공식 석상에서 “개인 기량은 뛰어난 것 같지만 훅 불면 툭하고 쓰러질 정도로 몸싸움에 약하다”고 평가절하했다.언론들도 앞 다투어 본프레레 감독의 발언을 보도했으며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박주영을 국가대표에 차출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는 설문이 등장하기도 했다. 프로 입문 이후 언제부터인가 그는 ‘축구천재’ 보다 ‘미완의 대기’ 로 불렸고, 성인무대에서 뛰기는 아직 어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유망주들처럼 쉽게 좌절하거나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프로 경기를 거듭하면서 자신의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했고 자신에게 어울릴 플레이 스타일을 연구해냈다. 상대 수비수의 집중 견제로 운신의 폭이 좁은 최전방 공격수보다는 특유의 개인기와 돌파력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섀도 스트라이커(처진 스트라이커)로 변신한 것.섀도 스트라이커로 변신한 이후 그는 헤트트릭과 4경기 연속골 포함, 총 9골을 몰아치며 다시 특유의 골 퍼레이드를 펼쳤다. 그를 못미더워하던 본프레레 감독도 그의 경기를 일일이 챙겨보며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또, 박주영의 실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박주영의 대표팀 차출이후 청소년팀의 골 결정력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이젠 월드컵이다

프로무대를 통해 거듭난 박주영은 이번 최종예선 ‘지옥의 원정 레이스’를 통해 전환점을 맞았다. 우즈베키스탄, 쿠웨이트전으로 이어지는 원정 2연전을 앞두고 그를 못미더워했던 본프레레 감독으로부터 드디어 호출을 받은 것. 본프레레 감독은 원정 2연전을 앞두고 박주영-이동국(안정환)-차두리로 이어지는 3톱 라인을 구상하면서 박주영에게 기회를 줬다.박주영은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자신을 믿지 않던 본프레레 감독에게 무언의 시위라도 하듯 연이어 결정적인 골들을 터뜨렸다. 우여곡절 끝에 본프레레호에 발탁됐지만 이번 원정 2연전을 통해 안정환, 이동국 등 국내 최고의 공격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이번 원정 2연전을 통해 본프레레 감독도 박주영을 신뢰하고 있다.

어떤 포지션에 놓아도 잘 소화하며 골을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아직 그에게는 숙제가 남아 있다. 박주영이 속한 공격수 포지션은 대표팀에서도 가장 주전 경쟁이 심한 자리다. ‘반지의 제왕’ 안정환, ‘본프레레호의 황태자’ 이동국, 정경호 등 쟁쟁한 선배들과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훅 불면 툭하고 쓰러질 것 같다’ 고 평가절하하던 본프레레 감독의 믿음이 지속될 수 있도록 강인한 인상을 남기는 것도 숙제다.연이어 출전하는 2005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도 이번 원정 2연전의 상승세가 이어질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하지만 그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성인 무대에서 시련을 겪으면서 겸손함도 배웠고, 기량도 한층 성숙해졌다.

이제 그는 ‘축구천재’를 넘어 ‘대한민국 축구의 구세주’라고 별명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성장했다. 이제 그는 단순한 축구천재를 넘어 한국축구의 희망이자 미래가 됐다.청소년 대표팀과 프로리그, 그리고 대표팀에서도 골폭풍을 몰아치며 가는 곳마다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박주영. 이제 그에게는 모든 축구선수들의 꿈인 ‘월드컵’이 기다리고 있다. 천부적 실력은 물론이요, 천운까지 따른 그에게 세계무대는 또다른 신화창조의 장이 될 전망이다.

# 박주영, 최순호-김주성의 계보 잇는다

천재 킬러들의 등장은 언제나 범상치 않았다. 대한축구협회가 집계한 공식 기록상 최순호, 김주성, 정재권, 이천수 등 단 네 명만이 기록했던 ‘A매치 데뷔 2경기 연속골’ 명단에 박주영은 다섯 번째로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올렸다. 그런만큼 박주영에게 A매치 데뷔 2경기 연속골은 한국축구의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A매치 데뷔 2경기 연속골 기록은 최순호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18세 189일의 나이로 1980년 7월 18일 포르투갈 보아비스타와의 친선경기를 통해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최순호는 그해 쿠웨이트에서 벌어진 아시안컵 말레이시아전에서 ‘A매치 데뷔전=데뷔골’ 공식을 만들며 한국 축구의 대표 스트라이커로 떠올랐다.

최순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이어 벌어진 카타르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전에서 연속적으로 골을 터뜨리며 A매치 데뷔 4경기 연속골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최순호에 이어 A매치 데뷔 2경기 연속골의 영광을 차지한 선수는 ‘야생마’ 김주성이다. 김주성은 1985년 7 월21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인도네시아와의 멕시코월드컵 2차 예선에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하고 7월30일 인도네시아 원정으로 벌어진 리턴 매치에서 A매치 데뷔 2경기 연속골을 터뜨렸다.김주성 이후 한동안 나오지 않던 기록은 7년 후 정재권으로 이어졌다. 정재권은 1992년 8월 26일 중국에서 벌어진 다이너스티컵 중국과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 골을 기록한 다음 3일 후 벌어진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골을 뽑아내 정재권 바람을 일으켰었다.

정재권 이후 나오지 않던 A매치 데뷔 2경기 연속골은 8년 후 이천수가 다시 한번 기록하며 그 명맥을 이어갔다. 이천수는 자신의 A매치 데뷔전이었던 2000년 4월 5일 동대문운동장에서 벌어진 라오스와의 아시안컵 예선에서 골을 기록한 뒤 4월 7일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몽골과의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해 A매치 데뷔 2경기 연속골을 기록했었다. 그 후로 5년 뒤 박주영은 쟁쟁한 선배들의 대를 이어 A매치 2경기 연속골을 터뜨렸다. 박주영이 전인미답의 고지인 A매치 3경기 연속골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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