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 살해장소 청와대 지하실 아닌 제 3국에 주목
김형욱 살해장소 청와대 지하실 아닌 제 3국에 주목
  • 이석 
  • 입력 2005-04-19 09:00
  • 승인 2005.04.1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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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5·16혁명의 최전방에서 거사를 성공시키며 일약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제3공화국의 실세로 권세를 누리던 그였다. 그가 권력암투에 의해 이슬처럼 사라진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그동안 김 전 중정부장의 죽음과 관련한 가상시나리오들은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최근 한 시사잡지가 이 사건과 관련한 의혹 중 하나를 들춰냄으로써 다시 한번 이 사건은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정부도 과거사 진상조사 차원에서 ‘김형욱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요서울>은 정부 차원에서 ‘김형욱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있는 오충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상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이하 조사위) 위원장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갖고 현재 조사위의 조사상황 및 내막을 들어보았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5가에 위치한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 이곳에서 어렵게 오충일 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오 위원장은 일단 과거사 7대 의혹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그는 “그동안 문건 속에서 헤엄을 치고 다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면서 “자료 조사가 어느정도 마무리된 만큼 조만간 사건과 연관된 모든 증인이나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핵심자료다. 자료는 많은데 핵심자료는 모자라다는 얘기인 것이다. 특히 김형욱씨 관련 사건의 경우 관련 자료나 증인이 부족해 접근에 애를 먹고 있다.

그는 “현재 상황에서는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관련자들의 진술이 절실하다”면서 “필요하다면 위원장인 내가 나서서라도 면담을 돕겠다”고 말했다. <일요서울>을 만난 오충일 위원장은 최근 한 시사잡지에서 제기한 ‘김형욱은 파리의 한 지역에서 분쇄기로 갈아 죽였다”는 보도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같은 주장은 조사위에서 파악하고 있는 여러 개의 시나리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오히려 그는 “시사잡지에서 보도한 내용(분쇄기에 갈아 죽였다)을 우리도 이미 파악하고 나름대로 조사했지만, 그같은 장면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다는 또다른 증인을 찾지 못했다”며 “때문에 (조사위에서는) 오히려 (김형욱이) 제3국에 건너가서 호화롭게 살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오 위원장은 “시사잡지에 문제의 사실을 제보한 이모씨에 대한 조사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모든 주장이 익명을 전제로 제기됐기 때문에 별도로 만날 생각은 없다. 다만 본인이 역사와 국민 앞에 떳떳하게 나타난다면 충분한 조사를 통해 보호해줄 용의는 있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이와 함께 최근 제기된 ‘파리 살해 가능성’외에도 조사위가 파악하고 있는 6개의 또다른 시나리오를 전제로 집중 조사 중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가 밝힌 6개 시나리오는 ▲‘회고록’ 중단 대가로 100만달러를 받기 위해 파리로 건너갔다가 파리의 어느 지역에서 살해됐거나 누군가에 의해 마취된 뒤 KAL기 화물편을 통해 서울로 보내졌을 가능성 ▲파리가 아닌 서울 모처에서 살해됐을 가능성 ▲차지철에 의해 청와대 지하실에서 처형됐을 가능성 ▲일본 오사카의 유명 한국계 폭력배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 ▲돈을 노린 단순 강도 가능성 ▲북한의 개입 가능성 등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내용을 상세히 밝힐 수는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 다만 그는 “지금까지 조사된 내용과 정황으로 미뤄볼 때 김형욱의 살해장소가 한국이 아닌 외국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했다.

- 위원장직을 맡게 된 계기는. ▲ 지난해 10월 부여 장례식에 갔다가 시민단체 대표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고영구 국정원장을 주축으로 각계 종교단체 및 시민단체가 참석하는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됐으니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얘기였다. 물론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러나 시민단체 대표들이 고 원장을 만나 여러차례 활동방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확신을 얻었다.

- 위원회 구성은 어떻게 되나. ▲각계 종교단체 및 시민단체로 구성된 민간 위원 10명과 국정원 직원으로 구성된 원내 위원 5명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가 민간 위원회 간사를, 김만복 국정원 기조실장이 원내 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다.

- 조사 진척상황은. ▲그동안은 자료에 의존해 왔다. 일각에서는 자료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의외로 자료가 많았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과거의 검찰조사 기록만 1~2만장에 달한다. 마이크로필름도 상당하다. 바다위에서 헤엄을 치듯 문건속에서 헤엄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현재는 문건 검토가 어느정도 마무리된 상태다. 때문에 조만간 사건 관련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어려움은 없었나. ▲문건은 많은데 핵심자료가 모자라 어려움이 많다. 특히 김형욱씨 실종 사건의 경우 관련 문건이나 증인이 부족해 접근에 애로사항이 많다. 당시 사람들의 증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특별히 주목하고 있는 곳이 있다면. ▲국정원 퇴직자들의 모임인 ‘양지회’다. 이번에 구성된 조사위는 국정원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 모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양지회의 경우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조사위에서도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의 증언이 사건 해결에 있어 결정적인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국정원의 반응은. 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구태여 나서서 자신의 허물을 들춰낼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번 기회가 자신들의 과오를 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어찌보면 이들도 피해자다. 진실을 고백하는 용기와 그걸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김형욱 사건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다고 말했는데. ▲사실이다. 다른 사건의 경우 어느 정도의 기록이 남아있다. 당사자 가족이나 관련돼 있는 분들의 생생한 증언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김형욱씨 사건은 관련 문건이라든지, 증인이 부족하다. 때문에 사건에 관련된 사람 위주로 수사를 계획중이다.

- 최근 한 시사잡지에 김형욱 살해와 관련된 보도가 있었는데. ▲알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조사위에서 파악하고 있는 여러개의 시나리오 중 하나일 뿐이다. 일례로 이씨는 분쇄기에 넣어 시신을 없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모습을 봤다는 사람은 아직 없다. 때문에 오히려 제3국에 건너가서 호화롭게 살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제보자로 알려진 이모씨를 조사할 의사는 없나. ▲모든 주장이 익명을 전제로 제기됐기 때문에 별도로 만날 생각은 없다. 다만 본인이 역사와 국민 앞에 떳떳하게 나타난다면 충분한 조사를 통해 보호해줄 용의는 있다.

- 그렇다면 위원회에서 파악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어떤 것이 있나. ▲현재 6가지로 파악하고 있다. 이번에 불거진 내용은 그중 하나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현재 조사위가 파악하고 있는 시나리오의 상당수는 김재규 전 중정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에 집중된다. 회고록이 집필될 당시 박정희 정권은 여러차례 측근을 보내 김형욱과 협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김형욱은 회고록 출판을 포기하는 대가로 150만달러를 받기로 약속했다. 이중 50만달러는 미리 받고, 나머지 100만달러는 파리에서 받기로 했다. 김씨가 나머지 돈을 받기 위해 파리로 건너갔다가 살해됐을 가능성이 첫 번째 시나리오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김형욱이 마취된 상태에서 KAL 화물편을 타고 서울로 보내졌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조사위에서는 현재 이같은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정황이 파리보다는 국내쪽에 더 쏠려있다. 김씨의 맏며느리인 김경옥씨도 최근 시아버지가 프랑스 파리가 아닌 서울에서 살해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아직 밝히기는 곤란하다.

- 송진섭 안산시장이 전 중정의전과정인 박선호 대령과 통방 과정에서 차지철이 청와대 지하실에서 처형되는 장면을 보았다는 주장도 있다. ▲그 부분도 들어서 알고 있다. 필요하다면 관련자를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 그렇다면 파리에서 살해된 쪽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인가. ▲일단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 중이다. 분명한 사실은 청와대에서 살해됐을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 나머지 시나리오는 어떤 것이 있나. ▲김재규 전 중정부장과 차지철 전 경호실장의 충성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거사를 진행했을 가능성이다. 이 경우 두 사람이 박 대통령에게 “알아서 하겠다”고 해놓고 현지에 직원을 보내 살해했을 가능성이다. 일본 오사카의 유명한 한국계 폭력배가 동원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밖에도 돈을 노린 단순 강도 가능성과, 북한의 개입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 김형욱씨 사건과 관련해 면담한 인물은 있나. ▲아직은 없다. 현재 조사팀마다 위원이 포함돼 있다. 면담 일정은 거기서 판단할 문제다. 나는 조사관이 미칠 수 없는 인물을 만날 예정이다.

- 사건이 복잡하고 오래전 일이어서 진실규명이 쉽지 않을텐데.▲위원장을 맡은 후 주변에서 이런저런 말을 많이 듣고 있다. “변했다느니” “왜 그런 일을 맡았느냐”는 둥 때론 본심과는 다른 말들이 있어 속도 많이 상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조사과정에 ‘사심’은 없다. 모든 조사를 마무리 지은 뒤 산에나 들어가 푹 쉬고 싶다. 허허.

오충일 위원장 인선 뒷얘기

지인들 “왜 노무현당 돕느냐” 핀잔 주기도

오충일 위원장은 인터뷰 중 위원장 인선 전후 상황을 설명하는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과거 사회활동가에서 국정원이 주도하는 조사위의 위원장으로 들어간데는 정치권 진입을 위한 중간단계가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 때문이다. “두 주 전인가. 사회운동 시절 친하게 지내던 지인을 만나기 위해 울산에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대뜸 ‘왜 노무현을 돕느냐’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한나라당 죽이기’라는 것이죠.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그렇게까지 생각할 줄은 몰랐거든요.”그도 그럴 것이 그는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살아있는 화석 중 하나다.

그는 4·19 시절 시위대에 합류하면서 민주화 운동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유신 시절. 87년 민주화 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 겸 사무차장을 역임했다. 89년에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의 공동의장을 맡았다. 그는 문민정부가 탄생하면서 민주화 운동보다는 사회 운동에 공을 들였다. 그는 군산으로 내려가 전국실업극복연대를 조직했다. 현재는 전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 회장, 이한열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명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였기 때문에 주변의 지인들은 ‘우려반 기대반’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특히 그가 소속된 곳이 바로 국가정보원이라는 점에서 자칫 정권의 들러리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이번 조사를 끝으로 세속과 인연을 끊고 산에 은거할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는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국정원 내부에서조차 우려를 표시할 정도니까요.”국정원이 이제와서 과거사 규명을 추진하는 데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사실 위원장직을 생각하면서 이 부분을 우려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향후 활동을 위해 여러차례 모임을 가지면서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구성된 조사위는 민간인 주도로 돼있기 때문에 정권의 들러리는 아닙니다. 국정원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청산한다는 순수한 의미에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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