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의 손녀’에서 ‘비리정치인’이라는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는 김희선 의원, 과연 그는 누구인가.
◆ 걸어온 길김희선 의원은 재야 여성운동가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평범한 주부였던 김 의원은 미아동 통장이었던 시아버지를 도우며 지역주민운동에 관심을 갖게된 이후 YWCA 소비자모니터회장, 크리스천 아카데미 실무간사를 거치며 여성운동가로 변신하게 된다. 84년 여성의 전화 모체인 ‘한국여성의 전화연합’을 설립해 초대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여성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86년에는 권인숙 성고문사건과 관련해 수배중이던 장기표씨를 숨겨준 이유로 구속기소돼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또 90년 범민족대회 부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을 당시에는 3년 동안 수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80년대 후반 대학생들 사이에서 그는 ‘통일 아줌마’로 불렸다.
이와 관련, 그는 지난 2001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재야운동가로서의 왕성한 활동은 자연스레 정치권으로 이어졌다. 95년 민주당 당무위원 및 대외협력위원장으로 정당에 첫발을 내디딘 김 의원은 99년 국민회의 여성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정당 활동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김 의원은 96년 15대 총선때 현 지역구인 동대문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16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그는 지난 대선때 노무현 후보 중앙선대위 여성본부장, 신당 창당 과정에선 신당추진모임 여성분과장 등을 역임하면서 여권에서 입지를 굳혀왔다.17대 국회에선 지역구 여성의원이라는 흔치 않은 이력을 무기로 상임위원장 ‘빅3’라 할 수 있는 정무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 의원은 정치권에서 ‘여걸’로 통할 정도로 재야운동가로서의 치열함을 보여주곤 했다. 탄핵안 가결, 단식농성, 공정거래법 등 여야가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을 당시 상대당 남성의원들에게 삿대질을 하며 호통을 치던 여성의원이 바로 그였다. 지난 연말정국 당시 여당 지도부가 사퇴한 직후 출범한 임시집행위원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던 그가 돌연 사퇴를 결정한 것은 또다른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오는 4월2일 치러질 전당대회 상임중앙위원 경선 출마를 염두에 둔 정치영역 확대를 위한 일련의 행보였던 것. 하지만 김 의원은 ‘잇따른 의혹’으로 전당대회 출마를 접은 상태다.
◆그녀를 둘러싼 의문들김 의원의 정치위기는 이미 몇 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그는 ‘조상 사칭 의혹’으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가계’를 둘러싼 김 의원과 <월간조선> 사이의 ‘진실 게임’이 그것이다.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김 의원은 당시 적잖은 타격을 입었던 게 사실이다. 공방전의 쟁점은 김 의원은 친조부인 김성범과 작은 할아버지인 김학규 장군의 족보가 호적상 각각 의성 김씨와 안동 김씨로 다르고 김 의원 부친이 광복 전 만주국 경찰로 근무했다는 것. 한치의 양보 없는 반격에 반격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김 의원은 자신의 가계를 둘러싼 의혹이 정쟁의 대상으로 둔갑했음을 주장했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독립운동가의 손녀’라는 배경을 정치입문 전면에 내세워왔기 때문이다. 그는 의정활동에 있어서도 이를 최대한 부각시켜 정치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김 의원의 정치 입문후 이력은 ‘친일진상규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야 의원 70여명으로 구성된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을 2001년 발족, 지금까지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친일 인명사전 발간 및 친일진상규명특별법 제정 등을 주도해 왔다. 그러나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어졌다. 43년 만주 봉천 출생으로 본적은 평남 평원이지만 그가 밝혔듯이 김 의원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어머니는 재가했고 김 의원은 친척집에서 성장, 학력은 중학교 중퇴. 조상 사칭 의혹과 맞물려 학력 위조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처럼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던 ‘조상 사칭’ 의혹은 지금까지 미궁 속을 헤매고 있으나 그를 둘러싼 일련의 의혹은 여권에 적잖은 부담을 안겨줬다.
2003년 8월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을 대표 발의, 지난 해 3월 국회를 통과토록 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김 의원과 조상사칭 의혹은 묘한 대조를 이루며 김 의원과 여권을 동시에 압박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김 의원은 역경을 이겨냈다. 일제강점하 ‘문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정황은 김 의원의 분노와 눈물의 대국민 호소와 견줄만 했다. 또한 과거사 정립에 있어 그 누구보다 김 의원이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결과론적 해석은 독립운동가의 손녀를 자처해온 김 의원의 진정성 여부를 따지는 잣대보다 앞서 있었다. 그러나 ‘공천장사 의혹’은 그의 정치생명에 최대의 타격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지난 2002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동대문구청장 선거 당시 민주당 경선후보 송모씨로부터 공천 대가로 2억원 안팎의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번 사건과 관련, 두 번의 검찰 소환에도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돈을 건넸다는 송모씨 등과의 대질신문까지 요구했다. 게다가 이번 사건에 앞서 김 의원의 회계책임자는 한 비리 연루 벤처기업으로부터 지구당 사무실 인테리어비용 3천만원을 제공받고 선관위에 허위 회계보고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김 의원의 정치자금 회계처리 과정에서 김 의원 사위의 가짜 영수증이 동원된 사실도 드러난 상태다.
◆그의 미래금품수수 의혹이 김 의원에게 치명타인 이유는 정치입문 전과 후를 장식하고 있는 그의 화려한 이력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여성의 전화 초대원장, 민주쟁취국민운동 서울본부 상임의장,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 공동대표 등 재야운동가로서 정계에 입문한 그의 경쟁력은 ‘도덕성’에 있었다. 또한 17대 총선 직전 ‘총선 물갈이연대’는 ‘청렴과 신의성실의 원칙 준수’, ‘최대한의 투명성 원칙 준수’ 등의 기준에 적합하다고 판단, 김 의원을 지지후보에 선정한 바 있으며 모대학 국제관계학과 학생들은 ‘거짓말 안하는 정치인 베스트5’에 그의 이름을 올려놓은 바 있다. 독립운동가 손녀 사칭 논란을 이겨냈던 김 의원이 이번에는 위기를 모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정치권의 때 이른 판단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영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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