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 경영 구사하는 ‘다이너 마이트 2세’
공격적 경영 구사하는 ‘다이너 마이트 2세’
  • 김영민 
  • 입력 2005-02-24 09:00
  • 승인 2005.02.2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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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재계 핫이슈로 떠오른 대한생명 인수와 관련, 최근 김승연 회장이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으면서 사법처리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일단 재계에서는 김 회장이 사법처리는 면할 것을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그가 정·관계에 걸쳐 두터운 인맥라인을 구축하고 있는데다 검찰이 결정적인 증거를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계의 시선을 받고 있는 김승연 회장은 누구인가.지난 81년부터 한화그룹의 수장을 맡아온 김승연 회장은 부친인 김종희 회장의 타계로 29살의 젊은 나이에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 총수가 된 인물이다.

그는 회장에 오르기 전 그룹 계열사인 태평양건설 해외담당 사장과 한국화약기업 본부장 등 주요 직책을 맡으면서 나름대로 경영수업을 받았다.그러나 부친이 갑작스럽게 타계함에 따라 경영수업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과정을 거치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당시 그가 총수에 오르자 재계 일각에서는 과연 그가 제대로 그룹경영을 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김 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특유의 ‘꼼꼼함’으로 그룹 전반에 걸친 업무를 파악해 성공적으로 데뷔했다는 평이다. 특히 그는 한화그룹 창업주인 고 김종희 회장의 경영마인드를 이어받아 공격적이고 능동적인 경영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헤엄친다’라는 김 회장의 좌우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능동적인 마인드를 강조한다. 한화그룹 창업주의 별명 ‘다이너마이트’처럼 그는 아버지의 경영스타일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아버지가 화약사업으로 일으킨 사업을 화학·유화·에너지 등으로 확대하고 그룹의 핵심 사업에 대해 공격적인 경영을 서슴지 않았다.

그의 경영스타일은 그야말로 저돌적이다. 성격도 활달한 편으로 운동에 유달리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는 집무실에서도 러닝머신을 놓고 운동을 할 정도이며, 골프를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평균 타수는 80대 중반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대한생명 인수 후 여의도 63빌딩 회장실 옆에 사우나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내부공사를 추진하는 계획도 있었다는 얘기가 있다.김 회장은 그룹 총수로 취임한지 1년 만인 지난 82년에 한양화학을 인수하고 83년에는 경인에너지의 합작사인 유니언오일 지분 인수에 나서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통해 그룹의 핵심사업을 키워나갔다. 이즈음 그는 명성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콘도사업을 인수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이러한 공격적인 경영으로 김 회장은 아버지의 별명에 이어 ‘다이너마이트 2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김 회장의 그룹 몸집불리기는 1980년대 후반 경향신문을 인수하고,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하면서 정점에 달했다. 그러나 그가 그룹 규모에 버금가는 대한생명을 인수한 것이 2005년 현재 그가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외환위기를 전후해 구조조정 한파가 불어 닥쳐 쟁쟁한 그룹사들이 공중분해됐지만 한화그룹은 ‘대마불사’의 신화를 이어갔다. 당시 김 회장은 한화그룹에 대해 자발적인 구조조정에 착수, 상당수의 계열사를 매각했다.외환위기 직전인 96년 구조조정을 시작해 수익성이 높았던 한화바스프우레탄도 과감히 매각했고, 이후 한화NSK정밀, 한화GKN, 한화자동차부품 등을 매각했다. 또 한화베어링을 독일의 FAG에 넘기면서 3,000억원대의 자금을 확보했고, 99년 한화에너지플라자를 현대정유에 매각하는 등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약 3조원대의 부채를 털어내고 부채비율을 200%대로 줄인 것.김 회장은 계열사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매각금액을 줄이더라도 고용은 100% 승계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 아직도 재계에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김 회장을 ‘의리파 총수’로 칭하기도 한다.

또한 한화그룹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김 회장의 체중이 8㎏이나 빠질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재계 한 고위관계자는 “평소 김 회장의 경영스타일이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IMF 당시에도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타 그룹사보다 외환위기 극복에 더욱 유리했다”며 “재계에서 김 회장을 평가할 때 꼼꼼함과 결단력을 빼놓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전했다.이후 김 회장은 계열사 매각으로 생긴 여유자금으로 다시 공격적인 경영을 시작해 지난 2002년 대한생명 인수에 ‘올인’하면서 금융부문을 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정착시켰다. 최근 김 회장이 검찰에 소환된 것도 바로 이 대한생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가지 의혹 때문이다.한화가 대생 인수를 위한 한화 컨소시엄 구성 당시 맥쿼리생명과의 이면 계약 체결과 정관계 로비 의혹이 불거지면서 여기에 김 회장이 관여했는지 여부에 대해 최근 검찰의 소환조사까지 이뤄졌다.

지난해에도 김 회장은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곤욕을 치렀고, 지난해부터 이어진 대생 인수 관련 비리 의혹으로 재벌총수로서 다시 한 번 심판대에 서게 된 것이다. 현재 재계는 이번 검찰의 대생 인수 비리 수사에 있어 김 회장의 사법처리 여부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지만 일단은 안심하는 분위기다.검찰이 김 회장의 관여 여부에 대해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법처리권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김 회장은 이번 소환조사에서 비리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어 앞서 구속된 김연배 한화증권 부회장을 비롯한 그룹 관계자들이 김 회장의 연루 부분에 대해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 불구속기소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회장이 그동안 불법 대선자금이나 대생 인수 등 굵직한 재계 이슈에 연류된 것만 봐도 그의 정·관계 인맥라인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김 회장의 장인인 서정화 전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해 한화의 불법대선자금과 연루된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 등 정계 주요 인사들과 인맥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김 회장은 미 부시 대통령의 부친과 친분이 두터운 데다 한국과 미국 정계 모임인 ‘한미교류협회’를 통해 미 정계 인사들과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어 ‘미국통’으로 정평이 나 있다. 김 회장이 직접 설립하고 회장직까지 맡고 있는 한미교류협회는 주로 한국과 미국 정계 인사들로 구성돼 양국의 정치, 사회, 문화에 걸친 교류를 목적으로 설립된 민간 우호단체다.김 회장은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당시 미국내 인사들과 노무현 대통령을 연결하는 핵심 고리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회장 장남 경영승계 ‘순항 중’

김 회장은 부인 서영민 여사와 슬하에 3남을 두고 있다.부인 서영민 여사는 한나라당 의원과 내무부 장관을 지낸 서정화씨의 딸로 그동안 김 회장이 정계 인맥을 구축하는데 장인의 힘이 컸다는 후문이다.김 회장은 일찌감치 아들들에게 (주)한화 지분을 매각하면서 승계 작업에 착수했다.올해 20세가 된 장남인 동관씨는 그동안 (주)한화 자사주를 매입, 김 회장에 이어 (주)한화의 3대주주로 최근 급부상했다.동관씨의 동생들로 현재 각각 75만주씩 보유하면서 (주)한화의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김 회장의 아들들이 한화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인 (주)한화의 지분을 보유하게 됨으로써 경영승계에 시동을 걸어놓은 상황.결국 김 회장은 그동안 (주)한화와 한화증권의 지분을 아들들에게 매각하면서 향후 지주회사 체제로 갈 것을 대비, 그룹 지배권을 확보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이미 한화그룹은 (주)한화를 지배하는 주주가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도록 구조가 재편됐다.

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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