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명 검찰총장이 화가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다. 법조브로커 김홍수 사건이 불거진 이후 검찰과 법원의 ‘명예’가 크게 실추된 탓이다. 브로커에게 놀아난 검사와 판사의 잘못이 1차적인 원인이지만, 수사 책임자로서 잇따라 터진 브로커 사건을 마냥 두고 볼 수만도 없는 일이다. 이에 따라 대검 범죄정보 담당파트를 중심으로 브로커 정보를 수집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윤상림 등 이미 신분이 노출된 브로커 외에 법조계 안팎에서 암약(暗躍)하는 이른바 ‘해결사’들을 찾아내라는 것이다. 검찰이 이미 보고된 브로커 정보를 토대로 사실 확인 작업을 벌일지는 미지수지만, 향후 유사사건 발생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는 상당해 보인다. 본지에도 최근 서초동 일대에서 브로커로 활동 중인 K씨, N씨 등에 대한 내용이 제보된 바 있다. 검찰 움직임이 빨라진 이유는 법원과의 신경전에서 자체 정화의지를 먼저 피력하려는 의도도 담겨있는 듯하다. 특히, 공직자부패수사처 등 외부견제 장치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내우외환’(?)의 상황에서도 검찰과 법원의 ‘법조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법조브로커 김홍수씨 사건을 두고 검찰과 법원의 신경전이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의 형상이다. 물론, 이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의 시선은 ‘기가 차고도 남을’ 일이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브로커의 금품 제공에 놀아난 검찰과 법원의 ‘제살 깎기’는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과거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등에서도 보여지듯, 양자 중 어느 한 쪽은 구조적으로 보다 무거운 책임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사안의 핵심인 브로커 근절을 위한 검찰의 수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브로커 김홍수씨 사건이 법조계 전반에 걸쳐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게 만든 계기가 된 만큼 향후 유사 사건을 차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브로커 겨냥한 기획수사설
7월 말,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최근 대검 수뇌부 회의를 통해 암약하고 있는 브로커들의 명단을 제출하라는 지시지시가 내려졌다”면서 “이미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안은 물론, 법조계 안팎에서 거론되는 브로커들의 리스트를 만들려는 것 같다”고 전했다. 조만간 법조, 금융 브로커에 대한 기획수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유다. 그러나, 한편에선 법원과 대립하고 있는 검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먼저 ‘정화운동’에 나섬으로써 법원과 차별성을 두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는 것이다. 검찰과 법원의 갈등이 표면화된 계기는 서울고법 J부장판사 부인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거부되면서부터다.
검찰은 지난 7월 31일, 브로커 김씨로부터 사건 청탁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J판사의 부인이 김씨를 통해 민사소송 당사자로부터 수백만원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J판사 부인의 추가 돈거래 가능성 확인을 위해 계좌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영장 청구 계좌가 너무 포괄적”이라는 이유로 기각했다. J판사 부인은 최근 검찰에 나와 지난 2003년경 브로커 김씨로부터 100~200만원을 받았지만 남편은 모르고 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직후 검찰 수사팀이 ‘발끈’하고 나섰다. 특히, 전직 검사 부인에 대한 5년치 계좌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직후였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선 것. 법원의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이 쇄도한 것도 이 때부터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이 수사 진행 상황을 ‘교묘하게’ 흘리면서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오히려 비난하고 나섬에 따라 양측의 기싸움은 ‘확대일로’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검찰과 법원 식구들이 연루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은커녕 서로 치고 받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브로커들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자체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이날 J판사의 부인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다시 청구키로 하는 한편, J판사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형평성을 고려해 전직 검사와 경찰 관련자들도 함께 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도 언급했던 의정부 법조비리 당시 법원측 인사들 대부분이 벌금형 처벌에 그친 반면 검찰 인사들은 대부분 구속된 전례가 있다. 검찰측은 이 부분에 대해 “이번에 불거진 브로커 사건은 공정하게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법원의 권위가 최대한 존중돼야 하겠지만,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법원·검찰, 브레이크 필요
법원도 검찰의 수사에 대해 불쾌감을 느꼈을 법하다.
검찰이 법원 부장판사를 정식으로 수사한다는 것 자체가 과거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드문 일이다. 사법 시스템 상, 검사가 향후 옷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하더라도 법원의 막강한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과거 박정희 정권 당시 부장급 판사가 보안법 사범을 잇따라 선처하는 바람에 ‘표적수사’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법관 150여명이 한꺼번에 사표를 제출한 1971년 사법파동 사건을 떠올리며 우려를 나타내는 이도 있다. 일부 법관 사이에선 “검찰이 양형기준이 모호하다고 월권을 하는가 하면, 폐쇄적 조직이라 견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그럼 검찰이 수사에서 판결까지 모두 관여하겠다는 것이냐”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검찰과 법원의 ‘법조전쟁’이 우려감을 낳고 있는 대목이다.
잠잠했던 ‘공직자부패수사처’(공수처) 설치 논란이 재연된 것도 이러한 상황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경실련 주최로 열린 ‘법조비리 원인과 해법 모색’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김상겸 동국대 교수는 “공수처는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이 소속이 명시되지 않은 독립조직이어야 한다”며 “업무 성격상 감사원에 준하는 지위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로커 사건이 계속됨에 따라 검찰과 법원을 외부에서 견제할 강력한 부패방지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대로, 또 다른 관료화를 부추길 뿐,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다.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은 “공수처 등 상설수사기관을 설치하면 그 역시 관료화된다”고 말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해법을 모색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법조계가 브로커 근절을 위한 자체 정화운동을 추진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향후, 법조브로커에 대한 기획수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시점이다. 검찰 관계자는 “시중에 활동하고 있는 브로커들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면서 “지난 주 초까지 10여명 이상의 명단이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본지 취재 결과, 서초동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부 브로커에 대한 실상이 포착되고 있다. 서초동 법조타운 일대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브로커 K씨, N씨를 비롯 검찰 수사가 예고된 일부 사건에도 브로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한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K씨의 경우 서초동 일대에서 상당한 법조인맥을 구축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사망에 걸려든 적이 없다”고 말했다. 브로커에 대한 정보 수집은 정상명 검찰총장의 지시로 이달 초까지 범죄정보 담당 파트를 중심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쯤 되면, 또 다른 대형 브로커 사건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게 마련이다. 검찰이 곧바로 기획수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렇지만, 향후 유사사건에 대비하기 위한 차원으로 이 같은 조치가 내려졌을 것 같지는 않다. 브로커 단속은 역시 검찰의 수사의지에 달려 있다.
판·검사 외부 견제 필요 의견
‘희대의 브로커’로 불렸던 윤상림 사건에 이어 김홍수 사건까지, 검찰과 법원의 이미지는 추락할 대로 추락했다. 과연 법조계 스스로가 썩은 환부를 도려낼 수 있을 지가 자못 궁금해진다. 이러한 노력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에는 외부에서의 견제장치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가 법무부에 비리 연루 변호사 9명에 대해 업무정지를 요청한 대목에서도 이러한 기류가 읽힌다. 변협은 또, ‘비리 변호사’의 인적 사항을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해 주목된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김씨로부터 금품을 받고 사건을 청탁한 혐의로 현직 J판사를 비롯 이번 사건에 연루된 법조인, 경찰의 신병 문제를 이달 말까지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 법무장관 임명 논란에 담긴 정치 논리 분석
“문재인 카드가 정국지형 바꾼다”
노무현 대통령이 ‘레임덕’ 현상으로 국정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경우, 논문 표절 의혹 등 계속된 문제제기로 전격 사퇴했다. 청와대 이병완 비서실장의 말을 빌리자면 ‘구태적 정치문화의 폐습’, ‘여론재판’ 등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한 부총리가 취임 13일 만에 쫓겨난 격이 됐다. 또, 임명조차 안 된 문재인 법무장관 카드는 이미 여권에서 ‘불가’ 의사를 전달함에 따라 대통령의 ‘운신의 폭’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특히, 문재인 전민정수석의 법무장관 기용 여부는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측근인사의 법무장관 기용은 ‘코드인사’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문 전수석은 정권 초기부터 청와내 민정수석→시민사회수석→민정수석을 거친 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문 전수석을 법무장관에 앉히는 것에 대해서 한나라당, 민주당, 민노당 등 야당은 물론 여당 지도부도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문 전수석은 사시 22회 출신이지만 사법연수원 졸업 직후부터 변호사 활동을 시작해 법원, 검찰 경험이 전무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활동은 꾸준하게 해왔다.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도 “인품이 훌륭한 분이지만, 적절치 않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가 발끈하고 나섰다. 이병완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인사권은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면서 여당에서 인사권에 개입하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 실장의 주장은 곧바로 열린우리당 문병호 의원, 박원순 변호사 등에 의해 “인사권에는 민심이 반영돼야 한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문재인 법무장관 카드를 두고 열린우리당과 청와대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이 유시민 장관, 김병준 부총리를 임명했듯이 문재인 카드를 밀고 나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럴 경우, 현정국은 분열로 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여론의 벽에 부딪혀 문재인 카드가 불발될 경우, 차선책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파격적 인선이기는 하지만 이종백 부산고검장의 발탁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 법무장관, 검찰총장이 모두 사시 17회 출신으로 메워지는 셈이어서 실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일각에선 김성호 청렴위 사무처장이 거론되기도 한다. 논란의 ‘핵’으로 부상한 신임 법무장관 임명 건은 정국 지각변동의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
김대현 dh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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