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20일 어떤 이유인지 단식투쟁을 시작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단식 8일째에 쓰러져 병원에 긴급 후송되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단식투쟁을 이어가겠다고 호언을 했지만, 가족들과 담당의사의 강권으로 결국 하루 만에 단식 종료를 선언하고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정치인의 단식투쟁으로서는 시작도 끝도 미덥지 못한 것이 초짜 정치인의 한계를 또다시 드러낸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정치인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을 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목숨을 담보로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황교안 대표의 정치적 생명은 그만큼 줄어들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정치적 센스로는 황교안 대표보다 몇 단계 위인 영원한 대통령 후보 허경영이 ‘국민혁명배당금당’이라는 신당을 만들겠다고 나선 기자회견 자리에서, “야당 대표가 청와대 앞에 몰려가 삭발을 하고 단식투쟁을 하는 게 정상적인 정치인지 모르겠다. 아마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정치를 보며 다 같이 웃을 것”이라며, “아주 한심하기 그지없다. 100년은 후퇴한 정치 방식”이라고 비아냥거린 것은 놀랍도록 정곡을 찔렀다. 이러한 허경영의 발언이 허경영과는 대권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황교안 대표가 단식을 끝낼 수밖에 없는 이유의 하나였을 것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정치권에서 허경영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황교안 대표의 단식투쟁이라는 고전적 방식의 정치투쟁은 끝났다. 과거 김영삼, 김대중이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얻은 정치적 성과에 비하면 황교안 대표의 단식투쟁의 정치적 성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굳이 성과를 따진다면, 당내 입지를 강화하는 데 조금 기여를 했고, 청와대 앞에서 천막을 치고 철야농성을 하는 것이 위법하다는 사실의 각인이다. 법무부장관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황교안 대표의 단식투쟁을 내년 4월15일 실시 예정인 21대 총선의 전략적 측면에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되었고, 심사기일도 지나 언제든지 국회에서 표결이 가능한 상태에 있는 심상정 의원 대표발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모든 동원 가능한 수단으로 결사 저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자유한국당 의원들 모두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저지하는 데에 있어서는 운명공동체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홍준표 전 대표가 황교안 대표의 단식투쟁 농성장을 찾아 공수처법은 받고 공직선거법을 막아내라고 한 것은 정치선배로서의 조언이기도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이익을 지켜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의 가장 기본적인 구도는 보수와 진보 진영 간의 세 대결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진보진영 내에서 단일화나 연대론을 꺼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온 것이 원팀 전략이다. 당내 주류, 비주류, 친문, 비문을 넘어 하나로 뭉치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반해 보수진영의 전략은 통합 전략이다. 문재인 대통령에 반대하는 모든 보수 세력들이 뭉치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러한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생각만큼 빨리 진행되지 않고 있고, 의외의 복병도 있어 보인다. 그래서 꺼내든 카드가 단식투쟁이었다. 황교안 대표가 단식투쟁을 통해 얻으려고 했던 것은 자신의 순정을 다 바친 단식투쟁을 통해 새로운 당파를 세우는 전략, 수당순정(樹黨純情)전략이었다. 그의 진정성을 과연 몇이나 알고 있었을까? 그것이 문제이기는 하다.
이경립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