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과 손잡고 일낸다”
정계개편 큰 그림 구상중
“고건과 손잡고 일낸다”
정계개편 큰 그림 구상중
  • 이금미 
  • 입력 2006-08-03 09:00
  • 승인 2006.08.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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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개편’이라는 거대한 담론이 정치권을 빨아들이고 있다. 7·26 재·보궐선거가 남긴 후폭풍이다. 특히, ‘성북을’에서 형성된 ‘조순형 기압골’은 시간이 갈수록 위력을 드러내고 있다. 이른바 조순형발(發) 정계개편이다. 조순형 전대표의 귀환이 정치판 새판짜기의 물꼬를 튼 셈이다.

정치권은 조 전대표와 민주당이 그리는 ‘반(反) 노무현, 반 한나라당’ 연대 구축이라는 향후 구상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손익계산도 분주하다. 특히, 당청기류에 한랭전선이 드리운 지 오래된 여당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방선거 직후부터 지금까지 당청은 사사건건 엇박자를 쳐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 전대표와 고건 전총리의 ‘회동설’이 감지되면서, ‘여권 핵분열’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기압골이 다가오면 정치 기상은 흐려지기 마련이다.


조 전대표의 당선을 놓고 손익을 계산하는 정치권의 시각은 혼란스러울 뿐이다. “스스로 정계개편을 주도할 수 있을까”, “큰 그림은 그릴 수 있는 인물”이라는 의혹과 신뢰의 평가는 조 전대표를 바라보는 여야의 일치된 시각이다. 게다가 이번 재·보선 투표율은 30%에도 못 미쳤다. 호남색이 짙은 한 선거구 결과를 놓고 정계개편으로까지 확대 해석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조 전대표를 포함해도 민주당 의원은 12석에 불과하다. 정계개편의 속성상 철저한 원내중심으로 얼개가 구성돼야 그 효력을 발휘한다. 조 전대표와 민주당엔 막강한, 그리고 수적인 권력과 수단은 없다. 게다가 호남 정서를 나눠 가진 열린우리당은 여전히 142석의 거대한 몸집을 가진 집권여당이다.

조순형 당선에 정치권 ‘술렁’

이는 정계개편이라는 담론에 앞서 정치권이 술렁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권정당으로 가는 험난한 가시밭길에 조 전대표의 정치적 무게가 어느 정도 버팀목이 돼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다. 그렇다면 조 전대표와 민주당의 자신감에 근저를 이루는 축은 무엇일까. 바로 고건 전총리다. ‘차기 대통령감’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전서울시장과 박근혜 전대표와 함께 ‘빅3’를 형성하고 있는 고 전총리라면 얼마든지 민주당의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시간이 갈수록 고 전총리의 지지세력도 호남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 호남 표심의 흐름에 따라 정계개편의 강도와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다. 또 호남 표심의 향배가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좌우할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민주당과 고 전총리가 주도권을 확보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다시 말해 정계개편의 주도권이 우리당을 벗어나는 그림이다. 특히 이번 재·보선에서 조 전대표는 통합을 위한 명분에서 다양한 인사들의 지지를 얻었다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인제 의원, 홍사덕 전의원, 김진홍 목사(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장기표 새정치연대 대표 등 계파와 정파, 정당과 시민단체를 뛰어 넘는 큰 그림의 청사진이라는 해석도 나온 상태다. 물론, 조 전대표와 고 전총리는 아직까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조 전대표의 승리에 대해 고 전총리는 “한나라당의 오만에 대한 성북을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 “훌륭한 경륜을 가진 조 전대표가 향후 우리나라의 새로운 정치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했다.

조 전대표 역시 “고 전총리와 가까운 사이는 아니나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며 존경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말을 내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민주당 주변에선 ‘고건-조순형 회동설’이 벌써부터 흘러나온다. 사실, 대선 국면에서 고 전총리의 경쟁력에 대해 ‘갸우뚱’하는 정치권 인사들도 상당수다. 안정감과 클린 이미지라는 장점에 견줘 무색무취, 우유부단이라는 이미지는 그의 단점으로 지적되곤 한다.

때문에 여권에선 제3의 대권 후보가 바람을 탄다면, 대선주자 판세는 뒤집힐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렇다 해도 이제는 대선국면이다. 민주당이나 고 전총리나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다시 말해, 민주당 일각에선 명분과 원칙을 중시하는 조 전대표가 고 전총리의 단점을 보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17대 총선 이후 당 결속과 재건에 누수 현상을 보여 온 민주당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계개편 시기 놓고 우리당 ‘시끌’

‘큰 그림’에서 호남 민심을 빼고 얘기할 수 없다. 민주당은 조 전대표의 당선을 놓고 내년 대선을 위한 수도권 지역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자체 평가를 내리고 있다. 게다가 지난 5ㆍ31 지방선거에선 호남 민심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전남ㆍ광주지역에서 만족할만한 수준의 성과를 거뒀던 터다. 6선 고지에 오른 조 전대표의 정치적 무게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조 전대표 역시 정치권의 이러한 자신에 대한 평가를 꿰뚫고 있다. 지난 7월27일 여의도 민주당사. “민주당이 전국정당, 수권정당으로 가는 대장정이 시작됐다.” 조 전대표의 정치 복귀 일성은 정권재창출에 대한 강력한 의지 일색이다. 정계개편의 또 다른 축인 우리당에 번지고 있는 커다란 동심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17대 총선 이후 크고 작은 선거에서 연패를 거듭했지만, 동요의 진동폭이 이만큼 컸던 적은 없었다.

당장 우리당 내부에선 정계개편의 시기를 놓고 시끌벅적하다. 민주당과의 통합문제 등을 논의할 때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미뤄야 한다는 주장, 또 아예 정계개편에 반대하는 주장까지 나와 그야말로 백가쟁명 형국을 연출하고 있다. 짚어볼 대목은 시기는 다르지만 논의의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일각에선 노 대통령의 탈당 요구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김근태 의장이 나서 “정치권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권력게임의 유혹에 빠져 국민이 처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조기 정계개편론에 쐐기를 박고 있으나, 사정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우리당 한 중진의원의 재보선 결과 진단도 심상치 않다. 지역구가 수도권인 그는 “지방선거 이후부터 당력은 원심력보다 구심력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이대로 가다간 우리당 내부에서 이탈자가 나와도 대응책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작은 구심력들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의 진단은 조 전대표로 인해 이들의 움직임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에까지 이른다.

우리당 통합 위한 명분 축척중

물론, 조 전대표는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도한 인물이다. 부활한 그는 여전히 ‘대노무현 투쟁 모드’다. 노선도 분명하다. ‘반노(反盧)다. 그럼에도 조 전대표의 정치 복귀가 ‘탄핵 정당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짚어볼 대목이다.

따지고 보면 지분과 주도권 확보라는 계산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당이든 민주당이든 정계개편의 필요성은 인정하는 셈이다. 다만 방식과 방향이 다를 뿐이다. 개혁세력이든 평화세력이든 최종 꾸려지는 판은 결국 ‘범여권대결집’이다. 또한 대선국면에서 통합의 동력은 정권재창출의 명분과 대선주자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일정량의 지분과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당 내부에서 완전 국민참여경선제와 노 대통령의 탈당에 대한 요구가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는 작금의 현상은, 명분 축적의 과정으로 읽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당의 열두번째 국회의원이 됐다. 일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열두척의 전선으로 삼백여척의 왜군을 무찔러 나라를 구했다“는 조 전대표의 당선과 복귀를 자축하는 인사말의 의미심장한 대목은 곱씹어 볼 일이다.


#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의 앞과 뒤“수줍은 성격에 ‘정계개편’은 무슨…”

고희를 갓 넘긴 정치인의 재기에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다. 바로 조순형 전민주당 대표다. 선수로 쳐도 국회 최 다선인 6선, 김원기 전국회의장과 동기다. 원칙적이고 강직한 성품으로 20여년의 의정활동을 화려하게 수놓은 그의 이력도 또 다시 회자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그는 바른 말 잘하는 정치권의 ‘미스터 쓴소리’로 통했다. 특히, 김대중 전대통령을 향한 그의 거침없는 직언은 정치권의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김현철씨 사면 유보를 건의하는가 하면, 특검제 도입과 사직동팀 해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를 말하는 데 있어 화려한 가족사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조 전 대표의 선친은 유석 조병옥 박사이며 친형은 고 조윤형 의원이다. 또 조병옥 박사가 1956년 민주당의 대표최고위원을 역임한 지 47년 만에 대를 이어 민주당 대표 자리에 올랐다. 그럼에도 정치적 굴곡과 파란을 겪은 데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조 전대표다. 11대에 무소속(성북 갑), 12대에는 신민당(도봉)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13대에는 한겨레민주당을 직접 창당해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그 뒤 14대에 선친과의 인연으로 당시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민주당에 합류해 내리 3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민주당 대표로서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도한 16대 국회, 민주당과 그는 민심의 냉혹한 심판을 받아야 했다. 몰락하는 민주당을 위해 최후 수단으로 대구행 기차에 몸을 실었으나, 탄핵 심판의 민심은 지역주의 극복에 앞서 있었다. 그렇다 해도 16대 국회까지 조 전대표의 의정활동은 초선의원들의 모범사례로 인식될 정도였다.

국회도서관을 가장 자주 이용하는 정치인, 가장 신사적인 의원에게 주어지는 ‘백봉신사상’의 단골 수상자가 바로 그다. 시민단체가 선정하는 최우수 의정활동 의원에 자주 뽑히기도 했다. 또 법사위원 및 교육위위원장으로서 그가 국회 상임위장에 쏟아낸 말은 초선의원들에게 교과서나 다름없었다.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도 그는 유명한 인사였다.

거침없으면서도 정확한 표현, 거기에 속사포 같은 말솜씨는 중견기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가 재·보궐선거에 나서며 출마 의미에 대해 “25년의 정치행적과 19년의 의정활동에 대한 총체적 평가의 기회”라고 내세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경륜과 화려한 이력이 뒷받침하고 있음에도 정치권 일각에서 ‘조순형발(發) 정계개편’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 전대표를 잘 아는 여권의 한 인사는 “손 꼭 마주 잡고, 존대 말 깍듯이 쓰고 그것도 모자라 눈도 맞추지 못하는 수줍은 성격 탓”으로 돌렸다. <이>

이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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