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성·개혁성으로 차기대권 꿈꾼다
청렴성·개혁성으로 차기대권 꿈꾼다
  • 이인철 
  • 입력 2004-11-29 09:00
  • 승인 2004.11.2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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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의 꿈은 이뤄질 것인가?’2002년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지만 중도포기, 한 차례 실패의 쓴맛을 맛보았던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은 2007년을 향해 뛰고 있는 여권의 대표적인 차기주자다. 김 장관은 17대 총선을 통해 대거 입성한 여권 386 의원들을 등에 업고 청렴성과 개혁성을 무기로 대권을 향해 진군중이다. 본지가 정치부(국회·정당출입)기자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7 대선관련 설문조사에서 선호도 1위를 차지한 김 장관은 대표적인 재야운동권출신의 정치인이다.

‘신사’ ‘투사’이미지 교차

이 때문에 김 장관은 매년 정치부 기자들이 뽑는 ‘백봉 신사상’단골 수상자이지만 한편으로는 ‘강인한 투사’이미지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오랜 재야활동에서 비롯된 이미지가 굳어진 측면이 강하다. 경기고-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인 그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민주화 운동에 투신해 잦은 수배생활과 고문과 투옥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김 장관은 1971년 박정희 정권시절 이른바 서울대생 국가내란 음모사건과 학생 시위 배후 조종이라는 혐의를 받고 7년여 동안 수배생활을 했다. 83년엔 민청련 결성을 주도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경관 이근안으로부터 모진 고문을 받기도 했다.

당시 고문사실은 미국 언론에 크게 보도됐고, 정부는 세계 인권단체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이후 부인 인재근 여사와 함게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공동 수상했고, 독일의 함부르크 재단은 김 장관을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했다. 특히 케네디가(家)와의 일화는 아직도 유명하다. 그가 15대 총선 직전까지 복권되지 않아 출마 자체가 불투명했을 무렵 공안기관이 복권을 반대해 김영삼 대통령이 마음이 흔들렸지만 미국방문에서 만난 에드워드 케네디가 강력히 복권을 요구해 사면복권을 받고 총선에 출마, 당선될 수 있었다는 전언이다. 출소 후 그는 88년 전민련을 결성해 집행위원장을 맡으며 민주화·인권·통일 운동을 펼쳤지만 90년 다시 투옥돼 2년여 동안을 다시 옥중에서 보냈다.

DJ 권유로 제도정치권 입문

오랜 재야생활은 지난 95년 김대중 전대통령의 권유로 제도권 정당에 참여하면서 끝을 맺었다. 김 장관은 2002년 대선경선과정에서 자신의 제도권 진출에 대해 일부에서 “문익환 목사처럼 재야세력 정신적 지주가 돼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만큼 재야 운동권 세력의 입지적인 인물 중 한 명이었다는 평이다. 그러나 김 장관은 민주정통세력이 집권하는 사상 최초의 정권교체가 절실하다는 판단아래 함께 활동하던 재야인사들과 함께 국민회의 창당에 참여, 부총재직을 맡았다.

김 장관은 1997년 대선당시 수도권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과 파랑새 유세단 단장을 맡아 정권교체의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민주당 내 ‘동교동계’해체를 요구하는 등 주류보다는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이 때문에 당내 지지기반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는 곧 2002년 경선과정에서 중도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결과를 낳았다. 대선과정에서 당내 후보단일화론에 맞서 끝까지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며 참여정부 탄생에 기여했다. 민주당 분당과정에선 단식농성까지 하며 당의 분열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분당이 되면서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다.

행정경험 쌓기 위해 복지부행

김 장관은 대통령 탄핵사태를 거치며 열린우리당이 지난 4·15 총선에서 과반을 넘은 제1당으로 변모하자, 행정경험을 쌓기 위해 원내대표직을 내놓고 보건복지부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의 약점 중 하나인 행정경험을 보완하기 위해 김 장관 스스로가 희망했던 입각이었다. 그러나 입각과정에서 차기를 놓고 경쟁관계에 있는 정동영 장관과 갈등설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 모두 통일부 장관직을 희망했던 것. 북핵문제와 남북정상회담 등 굵직한 현안이 많아 주목을 받기 쉬울 뿐만 아니라 처리결과에 따라 차기를 확고히 다질 수 있다는 점에 서로 통일부장관직의’적임자’임을 자처해 눈총을 사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청와대가 정-통일 김-복지로 결정하면서 내부 갈등은 봉합됐다.

당시 김 장관은 자기 홈페이지를 통해 “많은 고민 끝에 입각을 결심했다”며 “두려운 마음으로, 겸허한 자세로 일하겠다. 따뜻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심경을 밝혔다. 현재 김 장관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무난하다는 평이다. 김 장관 역시 취임 100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복지부는 신경을 써야 할 ’작은 일’이 많고 ‘사고’도 많다”며 “PPA나 혈액등 사고가 잇따랐지만 ‘잔병치레’는 있었어도 대과없이 할 수 있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그의 말처럼 아직까지 큰 허물은 없다. 그렇다고 큰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무난한 행정경험만으로 부족함이 있다. 그 부족함을 김 장관이 어떻게 채우고 당의 차기주자로 자리를 굳히게 될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이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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