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 선출 결과에서 드러나듯이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이재오 최고위원이지만, 투표 결과는 박심(朴心)을 등에 업은 강재섭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 따라서 공정성 시비가 없는지 검토해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 진영의 때늦은 경선 틀에 대한 문제제기는 지방선거와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박근혜당’으로 쏠림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현주소와 무관치 않다.
물론, 지난 2년간 견고했던 ‘박근혜 체제’에서 박심이 미치는 곳곳에 박 전대표의 사람을 심었다는 게 문제제기의 원천적인 이유다. 이 전시장과 손 전지사의 불만은 ‘완전 국민참여경선제’를 향하고 있다.
“기존의 경선 제도로 치러지는 대선 경선 역시 특정세력의 입김에 좌우될 것이다.” 지난 7월11일 전당대회 결과에 대한 이 전시장 한 측근의 촌평이다. 민심에 앞서더라도, 당심에 의해 판세가 뒤집힐 것이라는 우려다.
민심보다 당심이 판세 좌우
현행 한나라당 당헌·당규상 대선 경선 방식은 대의원(20%)과 책임당원(30%)을 중심으로 한 당심, 국민 참여 선거인단(30%)과 여론조사(20%)를 중심으로 한 민심을 절반씩 반영해 대선 후보를 선출하게 돼 있다. 문제는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민심에 앞서는, 다시 말해 경선 후보 선출시 본선에서 경쟁력이 있는 후보가 당심에 의해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것. 이 전시장과 손 전지사 진영의 전당대회 판세를 통한 당심 분석은 전체 234개 지역구 중 박 전대표의 사람들이 60%를 차지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이는 지난 2년간 수 차례의 선거 과정을 거치며 박 전대표의 사람들에게 공천이 주어졌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이 전시장측과 손 전지사측은 당심 보다 민심의 비중을 키워야 한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안으로는 박 전대표를 견제하고, 밖으로는 본선 경쟁력에 무게를 싣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양 진영에서 국민 참여선거인단만으로 대선 후보를 뽑는 ‘완전 국민참여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 이유다.
이 전시장과 손 전지사의 계산은 완전 국민참여경선제를 놓고 마지막 점검 작업을 벌이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적극적인 움직임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우리당은 당헌·당규상 기간당원 30%, 일반당원 20%, 일반국민 50% (여론조사 포함 가능)를 반영해 대선 후보를 선출하도록 돼 있다. 우리당의 문제의식은 외부인사 영입에 있다. 기간당원이 확보돼 있지 않은 외부인사에게 ‘불공정한 게임의 룰’이라는 판단이다.
지난 2년간 수 차례 바뀐 여당의 지도부다. 때문에 어느 대선 주자가 자기 사람을 심고, 누가 누구의 사람이고는 경선 방식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당적을 갖지도 않은 외부인사를 위해 ‘공정성 시비’를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민주화 이후 감동과 눈물, 도전과 실험정신, 명분으로 무장해 두 번이나 대선 승리를 거머쥔 여당은 ‘흥행’과 ‘이벤트’에 능한 대통령 선거 선수들이다. 또 지방선거 이후 총체적인 위기에 몰린 여당의 정권재창출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결사적이다. 이 전시장과 손 전지사가 노리는 틈새는 바로 이 지점이다.
“박근혜 주장은 기득권 고집”
물론, 경선 방식에 대한 박 전대표의 계산도 이미 끝났다. 9개월 동안 당원들의 뜻을 모아 만든 경선 방식이기에 개인적인 유불리는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 박근혜 체제 당시 최종안이 결정되기까지 수 없이 많은 내홍을 겪은 터다. 박 전대표에게 이는 ‘원칙’이다. 이는 자신을 중심에 두고 주판알을 튕겨도 마찬가지다. 7·11 전당대회에서 확인된 ‘박근혜당’을 기반으로 한 대리전에서 박 전대표는 신승을 거뒀다. 여기에 대선 경쟁력을 키운다면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게다가 대선 주자와의 친소관계를 떠나 대선 경선 방식 고수가 ‘원칙’이라는 당내 시각이 많은 상황에서 신임 강 대표 역시 경선 방식과 관련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돼주고 있다. 강 대표는 “시행하지도 않은 룰을 바꾸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그러나 이 전시장과 손 전지사의 계산은 박 전대표의 그것에 앞서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방식을 좇아 지금의 경선 방식을 택한 선례도 있다. 지난해 혁신안을 통해 그나마 일반국민이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선출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완전 국민참여경선제는 여당이 미리 선점했다고 하나, 눈치가 보이더라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이 전시장과 손 전지사의 계산이다. “‘이벤트’를 위해서라면 국민참여를 늘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번 전당대회 결과, 2년간 당권을 쥐고 있던 박 전대표의 영향력을 확인한 이상, 변방에 머물러 있던 이 전시장과 손 전지사를 배려해야 한다는 당내 일각의 주장도 심상치 않다. 한 중진의원은 “박 전대표가 이같은 경선 방식을 고수한다면 ‘기득권 고집’으로 읽힐 것”이라고 장담했다. 특히 이번 전당대회에서 독자세력화에 실패한 소장개혁파의 움직임 역시 이 전시장과 손 전지사의 움직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들의 동력은 전당대회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철저한 분석에서 시작된다. 이들의 결론 역시 ‘민심의 왜곡’ 가능성이 농후한 대선 후보 경선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여당과 보조, 국민적 공감대 형성 나서
때문에 당내에서는 경선방식 변경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전시장과 손 전지사는 아직까지 전면전을 피하고 있다. 낮은 포복 자세로 변방에서 북소리만 울리고 있다. 측근세력을 통해 각개전투 양상으로 완전 국민참여경선제에 대한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을 뿐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가지 기다리겠다는 복안이다.
지난 20일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성북을 지역에 나선 이 전시장은 아예 “(완전 국민참여경선제를) 제안한 적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현재의 방식도 전혀 불리하지 않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시장과 손 전지사는 여당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춰 ‘공동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다.
<이금미 기자> nicky@ilyoseoul.co.kr
# 이재오가 산사(山寺)로 간 까닭은?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동선이 정치권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산사에서 짧은 칩거를 마치고 정치 전면에 나선 이 최고위원이 택한 지도부 활동 반경은 철저한 ‘마이웨이’다. 대표를 비롯한 다른 최고위원들과 함께 참석하는 행사에도 가끔 모습을 보일 뿐이다.
당 지도부 및 강재섭 대표의 지시와는 무관한 어긋난 일탈 행동이다. 당무 복귀 첫날인 18일에는 김영삼 전대통령과 이회창 전총재를 예방했다. 전당대회 결과를 두고 구구한 억측과 논란이 양산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당대표가 아닌 최고위원의 당무 복귀 인사치고는 이례적인 행보로 비칠 뿐이다. 이 최고위원측에선 “불공정한 전당대회 결과를 받아들인 이후 나름대로의 위상 찾기 과정이며, 당직 인선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데 대한 불만 표출이 아니겠느냐”는 해명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이 최고위원이 자신의 돌출 행동이 당내 갈등으로 비쳐질 것을 모를 리가 없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이 최고위원이 이명박 전서울시장의 향후 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전당대회 ‘대리전’ 논란 이전부터 이 최고위원은 이 전시장의 복심으로 통했던 인사다. 게다가 이 최고위원의 석패는 향후 벌어질 대선 후보 신경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의치 않을 경우 이 전시장이 따로 살림을 낸다고 했을 때 민심과 당력의 향배를 가늠하기 위한 예행연습이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주지스님과 함께 하는 모습, 또 이어 뉴라이트 전국연합 김진홍 목사와의 만남은 이 전시장의 대권 로드맵과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당무에 복귀한 이후에도 이 최고위원은 현재 각계 인사들과 현정국 및 한나라당의 방향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또 재보선 현장에도 독자적으로 적극적인 지원 유세에 나서고 있다. 결국, 전당대회 이후 불거진 ‘도로 민정당’이라는 외부의 시각에 자극을 주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지도부의 ‘폐쇄성’이다. 이는 이 전시장이 완전 국민참여경선제 주장을 전면 부정하면서도, 대선 후보 경선 방식의 불공정성을 설파하는 구도와 맥이 닿아 있다. <미>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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