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쫌! 내버려두면 안 되겠니”
“쫌! 내버려두면 안 되겠니”
  • 이금미 
  • 입력 2006-07-13 09:00
  • 승인 2006.07.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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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둘 시점이다. 정동영 전의장은 7월26일 재보궐선거 출마 요구를 물리치고, 외유에 나설 계획이다. 여권 대선 주도권에서 한 발 물러나 있겠다는 복안이다. 물론, 정치권 일각에선 정 전의장의 행보에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화려한 원내 복귀의 기회를 걷어 차버린 정 전의장의 속내를 예측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 전의장의 정치 스타일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칼’을 갈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는다. 지방선거 이후 잠행에 나선 정 전의장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과연 정 전의장의 잠행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우선 거론되는 것은 서울 성북을과 우리당 후보 출마 요구에 대한 심리적 압박설이다.

‘일본여행’설 난무

한 때 정 전의장의 성북을 출마가 관전 포인트로 부상하기도 했다.하지만 지방선거 뒤 백의종군을 선언한 그다. 출마와 관련, 정 전의장의 답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현역의원이 아니기에 언론의 조명도 그를 추적하는 데 소홀했다. 그의 잠행과 동선에 대해선 아는 여권 인사들도 드물었다. 오죽했으며, 의도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관측까지 등장했을까.

지방선거 직후부터 한 달 가량 모습을 보이지 않은 그를 향해 외국 여행에 나선 게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다.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선 ‘일본’이 유력 여행지로 거론되기도 했다. 아무튼, 성북을 출마 요구는 정 전의장에게 상당히 부담을 안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정 전의장은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정치권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길지 않은 시간, 심리적인 압박에 시달렸다는 후문이다. 특히, 지난 3일 정 전의장이 이례적으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표명한 사건은 그의 심리적 압박감의 강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권 한 핵심인사는 “‘출마하겠다’ 공식 입장은 들어봤어도, ‘출마하지 않겠다’는 공식 선언은 듣던 중 처음”이라고 했다.

출마 요구에 ‘반발’

앞서 인사는 정치권에서 ‘이례적’이라는 데는 분명 사연이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차기 유력 대권주자의 이례적 행보는 최고 권력과의 갈등도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라는 것.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추측은 사실로 드러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정 전의장에게 성북을 출마를 권유했다는 것이다.

김근태 의장 역시 “노무현 대통령이 정 전의장을 직접 만난 자리에서 출마를 권유했고 이후 정 전의장이 깊은 고민에 빠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우리당의 참패’라는 지방선거 이후에도 여당을 바라보는 민심은 호전될 기미가 없다. 어려운 때에 나서 당과 개인을 살리라는 노 대통령의 배려는 정 전의장에게 부담스런 요구로 받아들여졌을 공산이 크다.

결국, 정 전의장의 이례적인 행보는 노 대통령에 대한 공식적인 ‘항명’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점을 풀기 위해선 그동안 여권 내부에서 벌어졌던 논의 과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의 요구와 동시에 당 차원에서도 정 전의장에게 출마를 요청했다. 대통령 주변 인사는 물론 당내 인사들도 최근까지 정 전의장 설득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패장 첫 경험

이와 관련, 짚어볼 대목은 또 있다. 지방선거 직후 여권을 중심으로 퍼졌던 ‘정동영 차차기 대권 도전설’이 그것이다. 우리당 일각에선 정 전의장이 5·31 지방선거의 패배의 상처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 대세였다. 큰 싸움에서 진 패장, 정치 입문 후 정 전의장이 입은 첫 번째 큰 상처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당선, 정풍운동, 2002 민주당 대선 경선, 우리당 창당, 17대 총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인 정동영 개인의 정치사는 굵직한 사건의 연속이었고, 항상 중심에 서 있었다. 때문에, 그의 첫 실패를 지켜보는 여권 내부에서도 그의 향후 행보와 관련, 이러쿵 저러쿵 많은 말이 쏟아졌다.

정화되지 않은 말들은 그대로 정 전의장의 귀에 전달됐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원내 인사들 중엔 17대 총선 당시 실질적인 공천권을 행사했던 정 전의장이 특별히 배려했던 인사들도 포함돼 있다고 전해진다. ‘애정’이든 ‘관심’이든, 차기를 노리는 정 전의장의 상처의 깊이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소탐대실’ 피하기 위한 전략

여기서 또 다른 정 전의장의 복안이 등장한다. 내년 3월 전당대회 출마가 그것이다. 이른 바, ‘소탐대실’을 피한다는 것이다. ‘대중’으로부터 멀어진다는 부담은, 대선 전의 또 한번의 ‘당권장악’을 위해 잠시 접겠다는 판단이다. 우리당에 대한 민심이 여의치 않다고 하더라도, 정 전의장은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임에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 성북을은 예로부터 호남색이 짙은 곳이다. 게다가 그의 출마는 개인보다 우리당의 ‘얼굴’이라는 상징성의 의미가 크다. 정 전의장 입장에서는 가장 쉬운 정계복귀의 기회일 수 있었던 셈이다.
<이금미 기자> nicky@ilyoseoul.co.kr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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