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까지 거세게 부는 악조건 속에서 누구의 승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박성현의 활은 10점 과녁을 거뜬히 뚫어버리며 8점을 맞힌 이성진을 110-108로 제쳤다. 꿈에 그리던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 것. 유도 이원희에 이은 2번째 금메달을 조국에 안겼다. 박성현의 금메달은 84년 LA 올림픽부터 6개 대회 연속 여자양궁 개인전을 제패하는 위업이라 더욱 빛을 발했다. 박성현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전 국민에게 더없이 기쁜 소식이었다. 특히 이날 전북 군산에서 경기를 지켜본 박성현의 가족들은 기쁨에 복받쳐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박성현의 가족들은 이날의 감동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전했다. 박성현의 맏언니인 미화씨는 “너무 기뻐서 도저히 뭐라 설명할 수 없다”며 “경기 초반까지만 해도 불안해보여 조금 걱정했는데 끝까지 침착하게 경기에 임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내가 오히려 우승한 기분일 정도”라고 소감을 말했다.
그녀는 또 “성현이는 평소 묵묵하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이”라며 “뭔가 큰일을 해낼 줄 알았다. 그동안 너무 고생했는데 이제야 빛을 본 내 동생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박성현이 아테네 현지에서 받는 언론의 관심만큼이나 그녀의 집도 연일 취재진과 축하객들로 문전성시다. 또 각지에서 걸려오는 축하전화로 인해 전화기는 거의 매일 불통일 정도. 특히 각종 언론사의 취재 열기는 인기 연예인 못지않다. 미화씨는 “취재진들의 인터뷰 공세에 가족들이 뭔가 근사한 말들을 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고 털어놓는다. 세계무대의 정상에 우뚝 선 박성현이지만 가족들에게 그는 단순히 ‘과묵하고 조용한 아이’로 통하기 때문.
건축업을 하는 박정복(52)씨와 강순자(48)씨 사이의 4녀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박성현은 여느 ‘막내’들과는 다른 성격이다. 어머니 강순자씨는 “딸만 넷인 집안의 막내딸이라 애교가 만만찮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면서 “내성적이라 말이 별로 없었고, 어리광을 부린다거나 새침데기처럼 굴지도 않았다. 항상 침착하고 예의바른 모습이, 막내지만 늘 듬직했다”고 박성현의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강씨는 이어 “양궁을 시작한 뒤에는 더욱 차분해졌다. 어린 나이에 훈련이 고되고 힘들었을 텐데 엄마한테 눈물 한번 보이지 않는 강한 아이였다”고 덧붙였다. 이에 맏언니 미화씨는 “모든 게 ‘힘’ 덕분”이라면서 말을 거들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성현이가 힘이 셌다”면서 “또래 친구들에 비해 손발도 크고 힘도 세서 언니들을 이길 정도였다. 아마도 그런 건강함이 정신적 강인함으로 연결된 것 같다. 올림픽 같은 큰 경기에서 빛을 발할 줄 알았다”고 막내 동생 자랑을 늘어놓았다.
박성현이 활을 잡게 된 것은 너무나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정원초과로 걸스카우트에 가입하지 못하자 궁여지책으로 활을 잡게 된 것. 평소 과묵한 성격인 박성현에게 침착성을 요구하는 양궁은 ‘제 몸에 맞는 옷’이나 다름없었다. 군산월명여중과 전북체고를 거쳐 2001년 전북도청에 둥지를 튼 박성현은 그해 3월 종별 선수권에서 생애 처음으로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 두각을 나타내며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5월에는 첫 국제무대인 제4회 코리아국제양궁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고, 7월 유럽그랑프리 3차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하는 선전을 보였다. 그리고 9월 제41회 세계양궁선수권에서 96년 애틀랜타올림픽 2관왕 김경욱을 결승에서 물리치고 국제무대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제패했다.
하지만 이후 한 살 어린 윤미진에게 번번이 우승을 내줘 2인자의 자리에 머물러야만 했다. 아테네올림픽 출전을 앞두고도 윤미진에게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에 비해 박성현은 다소 뒷전이었던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맏언니 미화씨는 “사실 (윤)미진이를 미워했던 적도 있었다”며 속내를 살짝 드러냈다. 미화씨는 “무슨 인연인지 몰라도 성현이가 미진이와 경기를 하면 계속 우승 자리를 내주고 2등만 했다”면서 “그 때문에 미진이를 미워하기도 했었다. 한번은 너무 얄밉고 싫어서 직접적으로 흉을 본적이 있다. 그랬더니 성현이는 ‘착한 애니까 그런 말 하지 말라’ 며 오히려 두둔하고 감싸는 모습을 보여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박성현이 소속돼 있는 전북도청의 한 관계자 역시 “평소 연습에 임할 땐 상당히 과묵해 냉정해보일 정도지만 후배들을 자상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면 역시 팀의 언니답다는 생각을 한다”며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뭔가 돼도 크게 될 줄 알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70cm, 72㎏의 체격에서 뿜어 나오는 묵직한 파워슈팅과 주변 환경에 잘 흔들리지 않는 우직함이 장기인 박성현. ‘만년 2인자’의 그늘을 털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섰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항상 초심을 잃지 않기”를 당부한다. 어머니 강씨는 “겸손함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했기에 지금의 결과가 있는 거라 생각한다”며 “아테네에서 돌아오면 성현이가 가장 좋아하는 김치볶음과 참치 김치찌개, 계란말이를 실컷 해주고 싶다”며 흐뭇한 미소로 말을 맺었다.
<인터뷰>전북도 체육회 라혁일 차장
“활 교체후 실력 부쩍”대표팀 서우석 코치가 발탁
- 박성현의 금메달 소식에 분위기가 어땠나.▲두 말할 것도 없다. 모두가 너무나 기뻐했으며 각지에서 축하전화가 북새통을 이뤘다.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전라북도의 자랑이다.
- 평소 박성현의 모습은 어떤지.▲묵묵하고 차분한 성격이다. 가끔 나이답게 활달한 모습도 보이곤 하지만 침착하고 과묵한 모습은 한결같다. 경기에 임할 땐 냉정해보이기조차 할 정도다.
- 항상 윤미진의 그늘에 가려 ‘만년 2인자’ 소리를 듣곤 했었는데. ▲그건 사실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박성현은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서우석 대표팀 코치가 발탁해 키우면서 재능이 제대로 발휘되기 시작했다. 서우석 코치가 박성현을 테스트 한 뒤 가장 먼저 바꾼 것은 활이었다. 힘이 좋은 박성현에게 적합한 활로 교체한 뒤 실력이 부쩍 늘었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아테네로 떠나기 전, 서우석 대표팀 코치는 박성현의 우승을 이미 예견했었다.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성격이나 결단력 부분에서도 박성현이 윤미진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 전북도청에 함께 소속돼 있는 다른 선수들에게도 영향이 있을 것 같은데. ▲상당히 고무된 표정이다. 자신들도 영광의 순간을 누리기 위해 예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 실력 있고 훌륭한 양궁 선수들이 더 많이 배출되길 기대한다.
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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