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계파간 노선대립은 성장통”
“당내 계파간 노선대립은 성장통”
  • 이상봉 
  • 입력 2004-07-01 09:00
  • 승인 2004.07.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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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출(학생운동권 출신) 노동자들이 ‘얼굴마담’ 역할을 했던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권영길 대표의 국회의원 당선으로 새로 김혜경씨가 민노당 대표로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신임 김 대표는 대학 출신도 아니고, 노동자 출신도 아니다. 평생을 서민과 살아온 빈민운동가 출신이다. 게다가 여성이다. 민노당은 지금 겉보기와 달리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 당의 노선 갈등도 증폭되고 있고, 또 워낙 큰 기대를 안고 있기에 그에 따른 부담도 뒤따른다. 민노당 김 대표를 만나 구체적인 당내외 사안을 물어본다.

-김 대표에게 ‘사라 할머니’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는가.▲내가 원래 천주교 신자이다. 세례명이 ‘사라’이다. (웃으며)아브라함 마누라 사라 말이다. 그래서 ‘김혜경’이라는 이름보다는 ‘김 사라’라고 사람들이 불렀다. 그래서 ‘사라 할머니’가 되었다.

-빈민운동에 전념하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노파심이겠지만 나는 내 개인사가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한다. 자칫 민노당이라는 공당의 대표가 아니라 ‘김혜경 개인’이 부각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부각되면 민노당 당원 동지들이 아무래도 부담스러워 할 것 아닌가.

-그래도 공당의 대표니까 유권자를 위해서라도 나름대로 공개해야 한다고 보는데.▲나는 황해도 해주 출생이다. 44년생이다. 주민등록증에는 45년생으로 되어 있다. 여섯 살 때 한국전쟁을 만났다. 그래서 백령도나 연평도를 떠돈 끝에 어린 시절 대부분을 인천에서 보냈다. 당연히 가난했다. 형제 자매가 많았기에 정규 학력은 중학교 졸업이 전부이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독서는 열심히 했다. 혜화동에 있는 가톨릭 교리대학원을 다녔다. 거기서 종교적으로 깨달음을 얻었고, 그 때부터 신앙적 관점에서 사회봉사를 하기로 결심했고, 지금까지 그 길만을 걸어왔다. 이후 69년에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조직화하는 활동을 고민했고, 평생을 빈민 지역에서 먹고, 자면서 주민들과 함께 현안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기독교 신앙관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다가 97년 <국민승리 21>에 참여하게 되었고, 여성위원장과 민주노동당 부대표를 거쳐 이번에 대표가 된 것이다.

-민노당의 ‘2012년 집권 로드맵’을 주장했다. 과연 실현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한나라당과 비슷해졌다.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치, 노동자 서민의 정치에 대한 기대치가 이만큼의 지지율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러한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 명의 의원이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민생을 챙기는 새로운 정치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지지율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본다. 두 번째는 생활정치에 대한 투자이다. 지역과 여성에 투자하겠다는 말은 국민들의 생활 속에 민주노동당을 뿌리내리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앙정치 무대에서 그리고 국민들의 생활 속에서 민주노동당이 뿌리를 내린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민노당 간판스타는 서울대, 연고대 출신의 인텔리 노동자 출신이다. 단병호 의원 같은 현장 노동자들이 당의 간판으로 뜰 수 있는 시스템과 가능성을 준비하고 있는가. 또 어느 조건이 충족되어야 그런 상황이 오리라고 보는가. ▲한 사람의 의원을 보기보다는 민노당 의원단 전체를 보아 달라. 국회의원들 중에 대학 나온 의원의 비율이 가장 낮은 정당이 민주노동당이다. 엊그제 강기갑 의원을 만났더니 집에서 키우는 소가 아파서 돌보러 내려가야 하는데 국회가 언제 열릴지 몰라 못 내려가고 있다고 울상이더라. 민노당에는 진짜배기 농사꾼, 노동자, 그리고 재야 운동가까지 폭넓은 인물군이 포진해 있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이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당의 NL-PD간에 노선이 대립되고 있는데. ▲당이 성장통을 앓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성장하기 위해 거치는 통과의례라고 볼 수 있다. 정당 안에, 특히 진보정당 안에 다양한 노선이 경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러한 노선 경쟁이 한 분파의 이익이나 당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 서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국민의 이익을 실현하기에 합리적인 방법을 찾기 위한 경쟁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노당은 정책정당이다. 따라서 노선간의 경쟁은 당의 강령과 당헌, 당규, 정책을 풍부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영호남 지역감정을 어떻게 보는가.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민노당 간부가 대부분 영남 출신이기 때문에 영남에서 민노당 지지도가 높고, 반면 호남에서 민노당 지지도가 낮은 이유는 민주당이 농민을 위한 정책을 폈기 때문에 굳이 노선이 비슷한 민노당을 찍을 필요가 없다” 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민노당의 생각은 무엇인가. ▲지역감정의 틀로만 정치를 바라보다 보니 생기는 착시현상이다. 우선 지적해야 할 것은 호남지역 민노당 지지율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이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호남지역은 약15%의 지지율을 보여주었고, 이번 총선에서도 광주는 13.1%, 전남북은 11%대의 지지율을 보여 전국평균 득표율 13%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민노당은 전국 모든 광역단위에서 10%대 이상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인천과 경남, 울산 지역은 15% 이상의 지지를 받았는데, 이것은 노동자 밀집지역이라는 특수성이 반영된 것이지 지역감정에 의한 득표는 아니다.

-민노당 안에도 뿌리 깊은 여성 차별의식이 존재한다는 비판이 있다. 과연 남성의 마초적 혹은 남성 우월적 시각은 노동당 차원에서 고쳐질 수 있는가. ▲민노당 안에 ‘뿌리 깊은’ 여성차별의 실상이 있는가? 어떤 현상을 보고 ‘뿌리 깊다’는 표현을 썼는지 이해할 수 없다. 민노당은 모든 정당들 중에서 가장 여성 친화적인 정책과 제도를 가지고 있다. 모든 당직에 대한 여성할당 30%가 철저히 지켜지고 있으며, 지난 2002년부터 누구보다도 먼저 비례대표후보에 여성 50%를 할당하고 지켜온 정당이다. 물론 성차별적 사건이 발생한 적은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오히려 조직을 떠나야 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일이 처리된 적은 없다. 오히려 당기위원회에서 아주 엄하게 다스려 왔다.

-서구 노동당이나 사회민주주의의 타락과 모순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 모순을 민노당이 답습하지 않기 위한 주객관적 대안은 무엇인가. ▲서구 사회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식으로 되어있는 무상의료, 무상교육조차도 실현하지 못한 형편에서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타락과 모순을 얘기하는 것은 너무 앞서나간 것일 수 있다. 다만 영국 노동당의 경우 이라크 파병이나 사회복지의 축소 등을 보았을 때 진보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런던 시장 켄 리빙스턴처럼 모범을 보이고 있는 노동당내 좌파들도 있는 만큼 그들이 진보정당 본연의 모습으로 영국 노동당을 돌려놓기를 기대한다.

-조선일보를 어떻게 보고, 얼마 전 노회찬 의원의 조선일보 노조강연 파문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앞으로도 조선일보 강연을 거부할 것인가. ▲조선일보는 제몫을 찾아야 한다. 한 사회에 진보와 보수, 그리고 좌우 편향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진영이 사회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이, 그런 수구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의 비율을 넘어서서 과도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제 감성적인 접근을 넘어서서 소유지분 제한 등 언론개혁의 본론으로 넘어가야 할 때이다. 조선일보 인터뷰는 아직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노회찬 의원의 조선일보 노조 강연에 대해서, 나는 조금 신중치 못했다고 생각한다. 의도와 달리 해석될 소지가 있는 일은 좀 더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 노동자 신분과 국회의원 신분과의 연속성과 단절성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는가. 민노당 의원의 세비 180만원 사용이 과연 바람직한가. ▲괜히 인기나 끌어보려고 하는 충격요법이 아니다. 도시근로자 평균임금이 올라가면 세비는 자동적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의원들이 세비를 더 받기 위해서라도 노동자들의 월급봉투가 두툼해져야 하는 것이다. 좋은 의미로 이해해 달라.

-중산층과 재벌 등을 어떻게 볼 것인가. 노동당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중산층 일부를 흡수해야 하는데,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재벌체제는 바뀌어야 한다. 한국주식이 저평가 되어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재벌 체제에서 연유한 황제식 경영, 문어발식 경영 때문에 기업의 투명성이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경영으로는 경쟁력도 가질 수 없다. 업종을 전문화하고 그 업종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주식의 단 몇 퍼센트만 가지고 이리저리 편법을 동원해서 총수 일가의 재산만 불리고 세습하는 식의 경영으로는 어렵다는 얘기이다.

-민노당은 서울대 폐지를 약속했다. 서울대의 투쟁 전통을 계승 발전시킬 방안은 없는가. ▲학벌사회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는 폐지하고,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고뇌하고 온 몸으로 실천하는 지성은 북돋워줘야 한다. 지금 서울대가 실천하는 지성의 산실이 되고 있는가? 또 연구중심의 상아탑으로서 만족스러운 역할을 하고 있는가? 미흡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서울대는 학벌중심 사회 시스템을 재생산하는 정점에 있다. 국공립대 통폐합을 통해 서울대에 집중된 자원을 각 대학이 공유하고, 각 대학별 특성화를 통해 전문성을 높여가며, 서울대는 연구중심 대학원으로 바꾸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서울대 외에도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각종 패거리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교에 대한 자부심과 추억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그러나 정당한 실력으로 승부하기 보다는 학연을 매개로 사회적 기득권을 누려보자는 끼리끼리 의식은 정당하지 못하다. 역사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배니까 괜찮다는 생각은 심각한 역사의식의 부재이다. 스스로 모교를 자랑스럽게 하기 위해서는 평가할 것은 평가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는 열린 사고 방식이 필요하다.

-북한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민노당 차원의 입장은. ▲당연히 개선되어야 하고 향상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 사회는 그 사회 나름의 역사와 논리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러한 비판은 언제나 그 사회의 맥락을 이해한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이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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