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마이젯 프린터’ CF에서 뇌쇄적인 테크노춤을 추던 그를 아직도 많은 사람은 잊지 못한다.그러나 그가 연기자로 성공하지 못했다면 ‘CF 퀸’의 자리를 이렇게나 오랫동안 유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드라마 <내 마음을 뺏어봐>(1998) <해피투게더>(1999)와 영화 <화이트 발렌타인>(1999) <시월애>(2000)를 거쳐 출연한 2001년작 <엽기적인 그녀>는 전지현의 매력에 여러 가지 독특한 색깔을 덧입히는 결과를 낳았다. 섹시함과 도도함에 터프함과 말괄량이 이미지까지 더해졌다. 남자를 쥐락펴락하며 장악하는 영화 속 그는 남성팬 뿐만 아니라 뭇 여성의 사랑을 받는 충분한 이유가 됐다. 그는 한국을 넘어 이미 아시아대륙의 ‘한류열풍’ 주인공이기도 하다.전지현은 “제 성격 저도 잘 모르겠어요”라고 한다.
“솔직히 완전히 개조하고 싶을 정도로 제 성격이 싫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주위 분들로부터 칭찬 열 마디쯤 들으면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하죠. 열등감은 전혀 없어요. 그런 것은 약한 사람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그는 고등학생 시절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는 바람에 친구가 거의 없는 편이다. 현재 일본에 있는 중학시절 친구가 유일한 단짝이다.“요즘은 친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아요. 아마도 처음부터 친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일 거예요. 그러다보니 저 스스로 그 부분을 마음속에서 도려낸 것 같아요. 지금은 그게 익숙해졌어요. “연예계 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터. 하지만 그는 연예인 중에도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이가 없다.
차태현, 이정재, 박신양 등과도 스크린에서는 명콤비를 이뤘지만 개인적으로 가까워지진 않았다. “함께 영화를 찍은 남자배우들은 한결같이 매력적이었어요. 특별히 어느 한 분을 지목할 수 없을 만큼요. 제 이상형요? 특별한 남성상은 없어요. 다만 제가 만약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람으로 인해 저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부모님과 함께 살고, 얼마 전 오빠가 결혼해 새언니가 생겼다고 즐거워하는 그는 “연예인이어서 무척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일을 하며 부쩍 성장하고 있음을 자각한다”고 했다.“전 지금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역을 두루 해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건강하고 여유 있는 삶을 영위해야겠죠. 흰 도화지가 어떤 색깔의 물감을 풀어놓아도 그 색상 그대로 흠뻑 머금는 것처럼, 저도 맡는 역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신할 거예요.” 전지현은 6월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여친소)>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여친소>에서 전지현은 떠나간 남자친구를 잊지 못하는 여순경 ‘경진’으로 분한다.
그의 상대역은 장혁. 장혁은 이 영화에서 사랑하는 경진을 끝까지 지켜주려는 ‘명우’를 연기한다. 전지현에 따르면 두 사람은 전지현이 연기자가 되기 위해 처음 매니지먼트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동고동락한 사이다. 두 사람 다 정훈탁 사이더스HQ 대표에게 ‘발견’돼 정 대표가 당시 운영하던 EBM에서 훈련을 받았다. “혁 오빠와는 열일곱 살에 사무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함께 연기수업을 받았어요. 돌이켜보면 그때 저희 모습이 우스워요. 늘 오빠와 함께 작업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어요. 하지만 둘 다 연기경험이 어느 정도 축적된 지금 호흡을 맞추게 돼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에요. 적어도 제가 지금은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제가 제몫을 제대로 해내야 상대 배우도 빛날 수 있잖아요. 좋은 연기로 그동안 오빠가 보여준 우정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요.” 곽재용 감독과 <엽기적인 그녀>에 이어 두 번째 호흡을 맞춘 것에 대해서도 전지현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곽재용 감독님과 하는 작업은 늘 즐겁고 행복해요. 무엇보다 마음이 통해서 좋거든요. 감독님 덕분에 전 완벽한 경진이가 될 수 있었어요. 감독님이 극중 남자주인공인 명우로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곽 감독님 영화의 중요한 코드는 행복과 청춘, 사랑이에요. 감독님은 이 모든 것을 소유한 분이기도 하죠. 그 속에서 전 자유롭게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인물을 표현했어요. 훗날 나이가 들어 감독님의 이런 코드를 소화하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 벌써 아쉬움이 밀려들어요.”홍콩 에드코필름이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여친소>는 한국영화 최초로 한국을 비롯해 중국-홍콩-대만-말레이시아-태국 등 아시아 6개국에서 동시 개봉한다. 촬영기간 내내 아시아판 타임, 요미우리, 마이니치 등 일본 언론과 중국공영방송팀, 홍콩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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