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안겨주는 보이지 않는 정치적 혜택이 이러한데 정치인이 빠질 리 없다. 특히 대망을 품은 정치인의 월드컵 활용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독일 현지에선 유력한 대권주자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월드컵 특수로 일약 대권후보 반열에 오른 전설의 정치인, 바로 대한축구협회장 정몽준 의원이다.
정 의원이 2006 독일 월드컵 직후 “일을 낼 것”이라는 관측은 결코 섣부르지 않다. 2002년에도 정 의원은 월드컵 효과로 재미를 봤다. 당시 정 의원은 월드컵의 기세를 몰아 순식간에 유력한 대선주자로 부상했다. 특히 성공적 개최와 함께 4강 신화를 만들어낸 한국 대표팀의 선전은 정 의원의 약진을 부추겼던 게 사실이다. 온 국민의 관심은 독일 현지에 집중된 가운데, ‘축구 대통령’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다니는 정 의원은 세계의 축구명사들과 함께 월드컵 무대를 누비고 있다.
‘붉은악마’ 집안 단속 철저
주목할 대목은 4년이 지난 현재의 분위기가 2002년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드라마틱한 역전승으로 토고를 물리친 한국 대표팀에 쏠리는 관심, 그 언저리에서 다시 축구 대통령 정몽준의 이름 석자가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월드컵에 임하는 정 의원의 자세다. 4년 전 월드컵 열풍을 타고 대권후보 반열에 오른 그였지만, 사실 ‘붉은악마’와 ‘거리응원전’에서 태동한 ‘대중의 힘’은 정 의원의 것이 아니었다.
대한축구협회장이었음에도 정 의원은 대중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결국, 2002년 월드컵의 정치적 효과는 모조리 노무현 후보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는 지난 한국-토고전을 앞두고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휴대폰을 통해 한나라당 소속 의원 모두에게 “월드컵 관전은 거리에서”라는 긴급 문자메시지를 날린 이유일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연유에서 일까.
정 의원은 독일 현지로 원정에 나선 붉은악마 응원단의 안전에도 무척이나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지난 16일에는 한국-프랑스전 응원에 나선 붉은악마의 안전을 위해 FIFA(국제축구연맹·회장 블래터) 차원의 조치를 취해줄 것을 건의했다. 경기가 열리는 라이프치히가 옛 동독의 도시로 외국인들에게 상당히 배타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월드컵 기간 정 의원의 활약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월드컵 개막식과 폐막식을 비롯한 전 경기가 위성을 통해 북한에 중계되고 있는데, 그가 직접 나서 FIFA 블래터 회장에게 협조를 요청, 북한 지역의 중계권을 확보하는 데 조력했다.
사실, 월드컵이 개막되기 전부터 정 의원의 행보는 정가의 이목을 집중시켜 왔다. 비록 2002년 대선 전날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를 철회, 심경변화를 일으킨 정 의원의 속내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으나, 여전히 대중적 인지도가 높고 고정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데서 그는 분명 ‘거물급 정치인’으로 통하고 있다.
‘중도보수-영남-CEO’ 이미지
그가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의 ‘맹주’라는 사실도 짚어볼 대목이다. 또 ‘무소속’인 정 의원은 기존의 굳어진 정당 이미지에서 멀찌감치 빗겨나 있으면서도, 영원한 ‘중도보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정 의원은 각 당의 크고 작은 정치행사를 앞두고 ‘영입인사’로 거론돼 왔다. 17대 국회 상반기에는 참여정부 국무총리,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한나라당 차기 당대표 후보 영입설 등이 정 의원의 행보를 예측하는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 그리고 또 다른 흐름은 대권주자들을 중심으로 한 ‘카운터 파트너’다.
7월 신당의 모태가 될 모임을 준비하고 있는 고건 전국무총리를 비롯해 ‘중도보수-영남-CEO’ 이미지가 필요한 대권주자들에게 큰 일을 도모할 거래 대상자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월드컵 기간 중에 형성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하나의 흐름의 대선도전이다. 물론 그 동력은 월드컵 혜택이다. 2002년 대선 이후 야인 아닌 야인 생활을 해왔던 정 의원이 지난 12월을 기해 정치활동을 재개했다는 것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작년 12월은 월드컵 조추첨 행사가 있었던 때다. 조추첨 행사 참석차 독일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그는 홈페이지를 새롭게 단장하는가 하면, 지방선거 출마자 격려 및 각당 대표들과의 회동 등 본격적인 대외활동에 나섰다. 당시 정치권에선 “정치재개를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등장했다. 이른 바 ‘어게인 2002’, 월드컵 감동의 재연이다.
독일 행 전 사전준비 완료
실제로, 정 의원과 가까운 정치권 인사들도 정 의원의 대선 레이스 그 출발선은 ‘독일 월드컵’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다시 한번 선전(16강 또는 8강 진출)한다면 2002년의 ‘정치적 실수’를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나보고 있다. 이와 관련 정 의원 주변에선 2002년 대선 당시 캠프 관계자들이 전열을 다듬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정 의원 주변에서도 “정 의원이 곧 정당 소속으로 활동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 회자되곤 한다. 교섭단체에 버금가는 현역의원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대선 도전이 요원하다는 것을 지난 2002년 대선을 통해 절감했다는 얘기다. 때문에 곧 다가올 정계개편의 소용돌이가 몰아칠 때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관측이 압도적이다. 이와 함께 그 역시 카운터 파트너 물색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정 의원의 한 핵심측근 역시 정 의원의 대선도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17대 국회 하반기 각당 제세력을 중심으로 정치판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며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적극적인 정치활동 뿐”이라고 전했다.
한 마디로 축구에서 최선의 방어가 공격이듯이, 적극적인 정치활동으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지금의 월드컵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두 번의 월드컵 특수로 인해 배가된 ‘정몽준 효과’가 각당 대권주자들의 손익계산에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레 카운터 파트너 ‘정몽준’의 ‘몸값’도 치솟을 전망이다.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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