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친노그룹들은 살길을 찾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하지만 청와대의 분위기에 비하면 이들의 몸부림은 미미한 수준이다. 최근의 청와대 분위기와 관련해 친노소장파 핵심인사로 통하는 한 386 비서관은 “대책이 없다”고 심경을 토로한다. 이어 그는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내부적으로 권력을 분점하는 문제를 고심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권력핵심의 정국돌파 카드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백약이 무효’라고 백안시하고 있지만 청와대 내부에서는 충격을 추스르는 모습이 역력하다. 특히 친노핵심으로 분류되는 386그룹을 중심으로 대안마련을 위한 숙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다.
정치권 질서 재편 도모차원
일단 이들은 난국타개를 위해 권력을 나누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당장 떠오르고 있는 대안은 정부통령제나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추진이다. 하지만 아직 이들은 드러내 놓고 이를 말하지 않고 있다. 지금과 같은 판세에서 청와대가 나서서 개헌을 논하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사실을 이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하지만 정치는 살아서 움직이는 생물이다. 여권에서 일고 있는 지방선거 후폭풍이 어느정도 정리되면 정치권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 개헌추진을 모색하는 이들의 생각이다.
현실적으로 정계개편은 확실한 대세이다. 정계개편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면 자연스럽게 개헌논의가 부상할 공산이 크다. 이합집산으로 정치권의 질서가 재편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정부통령제나 이원집정부제는 짝짓기를 부를 수 있는 큰 동력을 지닌 카드이다. 특히 통치권력이 대통령과 총리에게 이분화되어 있는 이원집정부제는 자기 색깔이 확실한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여러 정치세력의 이합집산을 가능케 할 수 있다. 청와대 핵심그룹이 노리는 키 포인트가 여기에 있다.
또 대통령 선거가 현행대로 치러지더라도 정계개편의 폭에 따라서는 엉뚱한 인물이 급부상할 수도 있다. 정계개편은 이해관계에 따라 세력과 세력이 헤쳐모이는 양상을 띠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여론의 흐름은 판 자체를 바꿔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현재 익숙하게 거론되고 있는 인물 이외에 제3의 인물이 다크호스로 뜨는 게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판도는 바뀔 수도 있다.
여야 대상 물밑 의사타진
여권핵심에서 이원집정부제를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지방선거 결과 주도권을 쥐게 된 고건 전총리와 민주당 한화갑 대표를 겨냥하고 있다. 최근 대권도전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한 한나라당 강재섭 의원도 타깃으로 삼고 있다. 여권핵심은 일정 세력을 지닌 이들 3인의 정치리더가 이원집정부제에 긍정적인 것으로 자체 판단하고 있다.
고 전총리의 경우 지방선거 전까지만 해도 이곳저곳에서 러브콜을 받았으면서도 뜸만 들이면서 입장표명을 유보해 왔다. 때문에 판세를 지켜보다 무임승차를 하려한다는 비난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해 왔다. 민주당 한 대표와 한나라당 강의원 역시 권력구조문제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하지만 청와대 일각에서 모색하고 있는 권력구조개편과 개헌문제에 대해 고 전총리는 한발 물러선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고 전총리측의 한 인사는 “이원집정부제를 언급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하고 “현행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임기만 달리하는 것에는 동의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그는 “내각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전제한뒤 “개헌반대가 기본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그간의 유연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진 태도이다.반면 민주당 한 대표측은 “개인적으로는 내각제를 선호한다”면서도 “공식적인 입장은 4년 중임의 정부통령제”라고 권력구조개편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한 대표측은 이에 대해 “변형된 내각제로 일종의 이원집정부제”라고 부연 설명했다. 한나라당 강의원측 역시 “개헌에 대해서는 일단 찬성”이라면서 “권력구조개편문제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표 입장이 변수
한편 청와대 소장그룹 일각의 이런 논의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의원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3선의 한 중진의원은 “당이 깨지느냐 마느냐 하는 마당에 무슨 권력구조개편이냐”면서 “당을 추스르는 게 우선”이라고 논의 자체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어 그는 “정치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라면서 “그동안 머리로 하는 정치가 가져다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이처럼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선거참패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방안 모색소식에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 핵심세력들은 아직도 ‘노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다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청와대 소장참모그룹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추진의 실현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이다. 개헌논의의 가능성을 언급한 정동영 전의장은 일단 선거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이다. 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개헌논의에 대해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청와대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헌추진에 대한 연구는 애드벌룬 띄우기 수준에 머물 공산도 없지 않다.
김충교 kck196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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