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 ‘기증형식’ 반환에 서울대 ‘오케이’
“약탈 문화재 기증받는 것은 국치”
도쿄대 ‘기증형식’ 반환에 서울대 ‘오케이’
“약탈 문화재 기증받는 것은 국치”
  • 김대현 
  • 입력 2006-06-14 09:00
  • 승인 2006.06.1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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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의해 약탈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국내로 반환될 예정이다. 하지만, 문화재 반환 방식을 두고 불교계, 시민단체 등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섬에 따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불교계, 시민단체, 국회의원 등으로 구성된 환수위원회에 따르면, 오대산 사고본의 경우 일본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벌여 과거 잘못된 행적을 비판할 수 있는 유일한 사안이었다. 소송 당사자, 약탈 경위, 소장처, 소장목록 등이 완벽하게 확보된 상태였다.

도쿄대와 일본 외무성은 법적 여건을 갖춘 환수위의 접근에 위기감을 느꼈다. 자국내에 소장돼 있는 우리 문화재가 아직도 수 천여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수위의 소송 제기로 약탈 문화재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면 국제적 위상도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도쿄대는 환수위의 소송을 지연시키는 대신 서울대에 친서를 보내 실록을 기증하겠다는 이중적 자세로 돌변했다. 물론, 서울대는 그동안 환수위가 추진해온 운동을 뒤로한 채 정운찬 총장 임기 내에 반환받기로 합의했다. 조선왕조실록 환수운동과 서울대의 반환 과정을 역추적해 봤다.





일본에 의해 강탈된 국보 제151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史庫)본이 93년만에 국내로 반환된다. 이를 소장하고 있던 일본 도쿄대(동경대)가 지난 5월 중순, 과거 서울대와의 인연(?)을 새삼 거론하며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온 것. 서울대는 1924년 일제에 의하여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을 모체로, 1946년 8월 ‘국립종합대학안’이 확정·공포됨에 따라 국립 서울대학교로 정식 발족했다.

서울대-도쿄대 질긴 인연(?)

그러나, 국가적 행사로 받아들여져야 할 조선왕조실록 반환을 앞두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국보급 문화재를 약탈해간 일본이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고 한국에 기증하는 형식을 취한 것은 ‘국가적 자존심’을 훼손하는 행각이라는 지적 때문이다. 일본은 이를 통해 국내 민간단체의 문화재 반환운동을 조기에 차단하는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잃어버린 우리 문화재가 반환된다는 점은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한일협정 당시와 유사한 기증 형태로 반환받는 것은 역사의식이 결여된 행각”이라고 비판했다.유네스코 등 국제 규정에 따라 약탈 문화재에 대한 반환을 정당하게 요구하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일제 강점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어야 한다는 논리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우리 정부는 일부 약탈 문화재를 기증받는 대신 더 이상 정부차원에서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 협정 때문에 정부는 문화재 반환운동에 앞장설 수 없다. 오대산 사고본의 소유권을 갖고 있는 월정사가 소송의 주체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측에서도 이를 두려워했다는 후문이다.

노 의원은 “민간단체인 불교계가 앞장서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해 왔고 더 많은 약탈 문화재를 반환받을 수 있는 계기였지만, 서울대의 ‘오판’으로 아픈 과거의 전철을 밟게 됐다”고 꼬집었다. 조선왕조신록은 모두 1893권 88책으로 구성된 국보이자,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이번에 반환되는 오대산 사고본 47책은 조선왕조 600년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그동안 조선왕조실록 반환에 앞장서온 조계종 실록 환수위원회는 국제 규정상 소송을 통해 정당하게 환수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실록의 소장 위치, 약탈 경위, 소장목록 등 소송 요건을 완벽하게 갖춘 유일한 사안이라는 설명이다.1970년 제정된 유네스코 규정 중, ‘문화유산의 불법 반출·입과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에 따르면 “외국 군대에 의한 일국의 점령으로부터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강제적인 문화재의 반출과 소유권의 양도는 불법으로 간주한다”고 명시돼 있다.

불교계는 소송 과정을 통해 일본의 문화재 약탈 문제를 공론화하는 동시에 일본 내 소장돼 있는 수 천점의 문화재를 추가 환수하는 시발점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실록 환수위원회는 지난 2월 16일 조계종 총무원, 월정사, 봉선사 등 불교계를 중심으로 첫 활동을 시작했다. 오대산 사고본이 일본 도쿄대에 소장돼 있다는 것 자체도 불교계가 직접 발굴해낸 사실이다.

2004년 8월 경기도 남양주 봉선사 혜문스님은 도쿄대가 오대산 사고본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다. 이후 꾸준하게 기초조사를 벌여온 불교계는 지난 1월 26일 문화재청으로부터 ‘도쿄대가 오대산본을 소장하고 있다’는 공식 답변을 얻어냈다. 열린우리당 김원웅, 강혜숙, 김영춘 의원과 고구려재단 이이화 이사 등을 공동 위원장으로 하는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도 이 때부터다.

2004년 불교계가 첫 확인

혜문스님은 “실록이 도쿄대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듣고 환수위를 조직했지만, 문화재청 등 정부기관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며 “하지만, 강탈된 문화재를 반환할 수 있는 법적인 여건이 마련됨에 따라 각계 인사들이 동참 의사를 밝혀왔다”고 말했다. 환수위는 지난 2월 27일 현지 동포인 김춘식, 이춘희 변호사를 선임하고 5월 말까지 3차례에 걸친 반환협상을 진행했다. 협상 당사자인 도쿄대는 지난 4월 2차 협상 당시 “현재 대학 도서관측에서 조사를 진행 중이며 문무과학성, 문화재청, 외무성 등 관계당국과의 협의가 필요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는 입장을 환수위측에 전달한 바 있다.

문제는 도쿄대가 지난 5월 31일 3차 협상을 제안한 이후에 불거졌다. 도쿄대는 환수위의 법적 절차를 지연시키는 동시에 5월 17일 서울대와 접촉해 고이야마 히로시(小宮山宏) 총장의 친서를 전달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소송에 휘말릴 경우, 자국 내부에서 논란이 가중될 뿐만 아니라, 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 진출을 노리고 있는 일본이 국제적으로 ‘문화재 약탈국’이라는 오명을 쓸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한국 민간단체의 예봉을 꺾지 않으면 도쿄대는 물론 일본 당국이 지리한 법적공방을 벌여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대 부총장이 직접 전달한 친서에는 “서울대학교의 창립 60주년과 규장각 창립 230주년을 축하하고 동경대학과 서울대학교의 학술교류를 추진하기 위해 동경대학이 소장한 오대산본 조선왕조실록을 서울대학교에 증여할 결심을 했다”고 적혀 있다.

서울대 정운찬 총장은 곧바로 “도쿄대의 제안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입장의 답변서를 보냈다. 얼핏 보면, 조선왕조실록 반환을 한 번도 요청한 바 없는 서울대가 도쿄대와의 친교관계로 인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면밀하게 따져보면 서울대의 행동에는 여러 가지 논란의 소지가 있다. 환수위가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적 조치를 시작도 하기 전에 한일 우호교류라는 명분으로 서울대가 강탈된 문화재를 기증받는가 하면, 그동안 실록 반환에 앞장서왔던 환수위에 이렇다 할 논의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또, 시기적으로 정 총장의 임기 내에 반환키로 했다는 서울대의 발표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환수위원으로 참여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도 이 부분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임 소장은 “서울대가 원칙도 없이 실록을 받아들였고, 방법 상에도 문제가 있다”며 “민족 전체의 문제가 기관 이기주의로 인해 묻히게 됐다”고 비난했다.

그는 특히, “우리 근대사에 있어서 열강의 침탈로 아픔이 있었고, 문화재 유출도 수없이 많았다”며 “일본 등 주변국에 빼앗긴 문화재 반환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추진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환수위는 3차 협상에 앞서 소송을 대비해 소장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소장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 이후 태백산 사고, 적상산 사고, 오대산 사고, 강화도 사고의 4곳에 분산, 보관되어 오다, 일본의 조선 점령 이후인 1913년 조선총독 데라우찌(寺內)에 의하여, 오대산 사고본 일체가 동경대학으로 불법 반출됐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소송 당사자 적격문제, 강탈 경위, 현재 소장 목록 등이 충분하게 기술돼 있다. 반면, 서울대측은 조선왕조실록을 환수한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았다는데 중점을 두고 앞으로 이를 잘 보관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남혜경 홍보부장은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문화재가 반환될 예정이므로 잘 보관하는 문제만 남았다”며 “정운찬 총장 임기 내에 반환되는 것은 동경대에서 먼저 제안한 내용으로 안다”고 말했다.

남 부장은 또, “불교계와 사전 교감을 나누지 않은 것은 동경대 입장 때문이었다”며 “불교계가 심혈을 기울여온 노고를 충분히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대목은 환수위 주장과 전면 배치된다. 5월 31일 3차 협상 첫날 도쿄대측은 “조선왕조실록의 서울대 기증사실을 먼저 환수위원회에 통지한 후 기자회견을 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서울대측이 이를 깨고 먼저 발표해 우리도 매우 혼란스럽다”는 입장을 환수위 관계자들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교계는 실록 반환이 완료되면, 월정사에 원상복귀시켜야 한다고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환’의 의미가 원 위치로 되돌린다는 의미인데, 규장각에 소장하는 것은 일본측 입장에 동조하는 게 된다는 것이다.

불교계, 원상복귀 주장

월정사 법상스님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서울대가 대충 건수나 올리기 위해 도쿄대 입장을 수용했다면, 이것은 본질을 외면한 게 된다”며 “향후 소장처를 어디로 할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일본의 잘못을 알리기 위한 법적 조치가 차단됐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대 정운찬 총장은 이번 사안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지난 8일 서울대 홍보부서 관계자에 따르면, 정 총장은 이번 일에 ‘노코멘트’하고 있다고 한다. 김영식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장도 결제 등을 이유로 기자와의 전화통화를 기피했다. 한편, 혜문스님은 “아직도 의궤 등을 비롯해 수많은 우리 문화재가 일본에 있다”면서 “일부 당국자들이 실록 기증을 두고 ‘일본의 양식’ 등을 운운하는 작태로 볼 때, 문화재 반환운동은 앞으로도 쉽지 않은 길이 될 것 같다”고 토로했다.


#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 간사 혜문스님 인터뷰“서울대가 약탈 문화재 환수 어렵게 만들었다”


-도쿄대가 실록을 반환키로 했는데.
▲3차 협상(5월 31일)을 앞두고 5월 16일 도쿄대가 서울대에 기증의사를 전달했다. 우리도 언론보도를 통해 이러한 소식을 접하게 됐다. 환수위는 유네스코 등 국제 규정을 근거로 일본의 문화재 약탈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일본 등 각지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 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이중 플레이’를 서울대가 흔쾌히 수락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법적 소송 여건을 갖춘 유일한 사안이 사라진 것이다.

-앞으로 법적 조치를 강구할 수 있는 추가 사안은 없나.
▲약탈 문화재라고 하더라도 이를 환수하기 위한 법적 공방을 벌일 수 있으려면, 소송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은 이 부분에서 완벽에 가까웠다. 우선, 정부가 아닌 불교계(월정사)가 소유권을 주장함으로써 한일협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또, 소장처, 약탈경위, 소장목록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안이다. 일본측은 법적공방에서 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서울대에 ‘기증’이라는 방법을 동원,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했다.

-서울대에 이러한 입장을 전달했나.
▲정운찬 총장은 불교계와 한 마디 상의도 하지 않고 실록 반환에 합의했다. 우리는 그동안 실록 환수를 위해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던 서울대를 비판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정 총장 등과 만나 사안의 본질을 논의하고자 했다. 이번 사안은 민족적 자존심의 문제다.

-앞으로 계획은.
▲오대산 사고본이 반환되면, 월정사에 보관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또, 약탈 문화재에 대한 환수운동은 계속될 것이다. 일본에 의해 약탈된 문화재가 ‘기증’이라는 방식으로 돌아오는데, 이를 두고 안휘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장은 ‘일본의 양식’을 운운했다.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정부 당국자의 논리에 절대로 동조할 수 없다.

김대현  dh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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