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원은 SK건설 자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페이퍼 컴퍼니’로 실체가 불투명하다. 사업 실적이 없고, 등기 이사진도 대부분 SK 관련 인사들로 알려졌다. 골프장 부지를 매입한 측도 눈길을 끈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이자, 후견인을 자처해온 썬앤문그룹 문병욱 회장이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최영수 대표 이사와 문 회장의 가족으로 임원진이 구성된 SR레저개발이 골프장을 건설 중이다. 발파작업 사고가 발생한 남양주 S골프장 부지에 얽힌 사연을 취재했다. <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 일대 야산이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골프장 건설을 위해 포클레인과 작업 중인 인부들로 현장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취재진이 5월 30일 S골프장 공사현장을 찾은 이유는 27일 이곳에서 암반 발파 작업 도중 암석 파편이 70여m 떨어진 S아파트 단지로 날아들어 주민 하 모씨 등 3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건설업체 관계자는 “피해 주민과 보상작업을 원만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했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골프장과 아파트 인접
S골프장은 착공되기 전부터 시민들의 집단반발에 부딪혀 사업이 지연됐던 곳이다. 경기도와 남양주시에 따르면, S골프장은 2003년 3월 17일 골프장 및 스키장 허가를 받았지만, 주민들의 반발과 해당 부지가 매각되는 수난을 겪으면서 2005년 9월이 돼서야 비로소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S골프장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대목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암반 발파 작업의 파편이 아파트 가정집까지 날아든 사건도 흔한 일이 아니지만, 32만평에 이르는 대규모 골프장 부지 전·현 소유자의 이력이 눈에 띈다.
우선, S골프장 부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 산 164번지 일대 32만평 규모다. 현재 9홀짜리 골프장 건설이 추진 중에 있고, 18홀 규모로 확장하기 위해 관계기관에 용도변경 신청서를 접수해 놓은 상태다. 원 소유주인 (주)정지원은 인근에 또 다른 임야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건설 자회사인 정지원은 2003년 초 SK그룹의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골프장과 스키장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다.
물론, 애당초 계획했던 복합레저시설 건설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여년 전 매입한 토지를 평당 10만원 정도에 매각함으로써 막대한 부동산 소득을 올렸을 뿐이다. 정지원은 법인 설립 이후 이렇다 할 사업을 추진한 적이 없을 정도로 유령회사에 가깝다는 평가다. 정지원의 등기이사진도 대부분 SK건설 관계자들이 맡고 있다. 정지원 김영남 이사는 현재 SK건설 임업부문 사장을 맡고 있는 등 이사진 대부분이 SK그룹 전·현직 관계자다.
또, SK건설은 정지원의 최대주주로 지분의 4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사업실적이 전무한데다, 주요 구성원들이 모회사 임원이라는 점 등에서 정지원은 ‘페이퍼 컴퍼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업계 일각에선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부인 노소영씨가 운영하는 회사’라는 소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SK측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SK 홍보실 관계자는 “그런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안다”며 “처음에는 조경사업 등을 위해 만들어졌다고는 하는데, 그동안 별다른 사업을 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정지원에는 SK건설 등 그룹의 자금이 내부적으로 거래됐다는 첩보가 입수되기도 했다.
SK그룹은 2003년 초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에 휘말려 최 회장이 구속되면서, 페이퍼 성격의 위장 계열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지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법적으로 청산해야 할 부채 또는 자산이 남아 있을 경우 법인 해산이 불가능하다. 정지원은 SK건설이 채권최고액인 30억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해 놓았다. 또, 매입 주체인 SR레저개발에서 받아야 할 수십억원의 잔금도 미수 상태다. SK측은 이와 관련, “정지원은 없어질 단계에 와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정리된 것과 마찬가지”라며 “매각 부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는 등 절차상 시간이 걸리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썬앤문그룹측 “관계 없다”
SK건설 산하 ‘페이퍼 컴퍼니’가 소유한 부지를 매입한 주체는 노무현 대통령의 후견인을 자처해온 썬앤문그룹 문병욱 회장이다. SR레저개발은 문 회장의 최측근인 최용수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고, 그의 동생과 자녀가 임원으로 등재돼 있다. SR의 이사인 문 회장의 딸, 문 모씨는 현재 썬앤문그룹 홍보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썬앤문그룹 한 관계자는 “남양주 골프장 건설은 신규사업부에서 초기 설계에만 관여했을 뿐, 지금은 (그룹과)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골프장 부지를 매각하기 위한 양측 대리인으로, SR측은 최 사장이 나섰고 SK에선 그룹내 부동산 전문가로 알려진 김영남 사장의 채널이 가동됐다는 후문이다. SR 최 사장은 “SK건설에선 부동산 담당인 김영남 사장이 매각 주체였다”며 “아직 지급해야 할 잔금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양측은 그동안 부지 매매 작업을 은밀하게 추진해 왔다. SK측은 정지원이라는 회사가 부각되는 것 자체가 부담이고, SR도 문 회장이 거론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취재진이 접근하자, SK측은 “정지원은 사실상 없어진 곳이고, 계약은 완전하게 처리됐다”고 말한 반면, SR은 “잔금과 등기이전 절차가 남아 있다”며 온도차를 보였다. SR은 32만평 부지 매입을 위해 320억원의 자금을 제2, 제3 금융권에서 조달했다. 일명 ‘브리지론’을 이용해 부지 매입 대금 대부분을 충당한 것이다. ‘브리지론’은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1개 금융회사가 아닌 여러개 금융권을 공동으로 묶어 투자, 또는 대출을 받는 방식이다.
문 회장은 2004년 말 해당 부지를 매입할 당시 안양, 구리, 하남, 이천, 안산 등 경기도 소재 14곳의 상호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에서 평균 20억원씩을 대출받았다. 그 대신 32만평에 이르는 부지는 금융권 담보로 제공했다. 결국, 문 회장측은 계약금 30억원 정도를 투자해 골프장 부지를 매입한 것이다. 최 사장은 “부지 매입 작업은 전적으로 내가 추진하던 것이었지만 자금 마련이 어려워 문병욱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됐다”며 “문 회장은 레저사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문 회장은 현재 양평 TPC골프장을 사실상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TPC골프장은 지난해 군인공제회 등에서 매입하기 위해 검토를 했던 곳이다. SR레저가 부지 매입을 손쉽게 진행했지만, 사업성에 있어선 의문이 제기된다. 골프장 건설이 9홀에 한해 허가됐기 때문이다. SR측은 “9홀만으로도 수익을 내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하지만 브리지론, 공사비 등 막대한 부채를 떠 안을 것으로 보인다. SR레저가 18홀로 확장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민반발 거세 ‘곤혹’
관할 관청인 경기도와 남양주시는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9홀짜리 골프장 건설은 허가가 난 부분이라 부담이 없지만, 골프장 확장까지 허가하기에는 주민들의 반발이 너무 거세다. 또,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인 문 회장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SR의 골프장 건설이 지연돼 온 것도 골프장 확장 허가가 나지 않아서다.
SR 최 사장은 “30만평 대부분을 개발할 생각”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골프장 1홀당 1만평 정도가 소요되므로, 9만여평만 개발하면 된다. 아파트 등 주거지역과 가까워 스키장 건설도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SR측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한 대목이다. 한편, 남양주시는 발파작업 안전사고와 관련 SR측에 골프장 건설 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SR은 안전진단이 마무리될 때까지 집중호우 등에 대비한 공사 외에 발파공사는 할 수 없게 됐다.
# SR레저개발 최영수 사장 인터뷰“자금마련 어려워 문회장에게 도움 요청했을 뿐”
남양주 오남읍 인근에 건설 중인 S골프장은 SR레저개발이 추진하고 있다. SK건설 자회사인 (주)정지원으로부터 320억원에 매입한 32만평 부지 중 일부에 9골짜리 골프장을 건설하고 있는 것. 그러나, 발파작업 도중 파편이 인근 아파트로 날아드는 사건이 발생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만큼 골프장과 아파트가 인접해 있다는 증거다. S골프장 건설을 총괄하고 있는 SR 최영수 사장을 만나, 부지 매입과 발파사고 등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골프장 부지는 어떻게 매입하게 됐나.
▲ SK에서 소유하고 있는 골프장 부지가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매입을 추진하게 됐다. 30여억원의 계약금을 지급하고 (주)정지원 소유의 임야를 구입하려다가, 자금 마련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문병욱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해 SR레저가 골프장을 건설하게 된 것이다. 문 회장은 레저 사업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발파 작업 중 주민들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 발파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회사가 실수를 한 거지만 우리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피해자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 지금, 보상 문제 등이 처리 중에 있다.
-골프장 외에 스키장도 건설하나.
▲ 10월쯤 9홀 골프장이 완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스키장은 주거지역과 가까워 사실상 건설하기 어렵다. 18홀로 골프장 확장을 추진하고 있고, 다른 사업도 검토 중이다.
-(주)정지원과 계약은 종료됐나.
▲ 우리쪽에서 지급해야 할 잔금이 20억원 가량 남아 있다. 또, 필지가 많아 일부는 등기 이전이 되지 않은 상태다. 정지원 부지는 SK건설에서도 근저당권을 설정해 놨다. 정지원이라는 법인을 해산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정지원의 부동산 소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대기업, 일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부동산을 이용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정적’이다. 공명정대하게 돈을 벌고 사회에 환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대현 dh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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