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더 나아가 ‘당원에게 보내는 편지’를 즉석에서 써서 후보자들과 당원을 독려하며 ‘병상 정치’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극적인 반전카드가 준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퇴원과 더불어 입원시 보여준 국민들의 관심에 감사하는 차원에서 전국순회투어에 나설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지방선거 완승과 2007년 차기 대권주자로서 안전핀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복안이다.
이번 5·31지방선거는 집권 여당에 대한 심판 성격으로 한나라당의 압승이 진작부터 예고됐다. 접전지역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선거용 대표라는 박 대표도 뚜렷하게 할 일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5·20 정치 테러로 얼굴에 60바늘을 꿰매는 상처를 입은 후 상황은 급반전됐다. 박 대표에 대한 ‘동정론’이 확산되면서 ‘병상 유세’도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이로 인해 박근혜 어록까지도 생겼다.박 대표는 피습이후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지금은 선거 운동 기간 중이다. 당에선 흔들림 없이 선거운동에 임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수술이 끝난 직후에는 테러를 선거에 악용할 것을 염려해 “정치적으로 오버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이는 그동안 ‘리더십 부재’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던 박 대표에게 대권주자와 당대표로서 리더십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나아가 박 대표는 병상에서 당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대전은요’라고 관심을 보이면서 접전지역을 챙기는 모습도 보였다. 급기야는 입원한지 닷새만에 당원과 후보자들에게 보내는 친필 서신을 통해 ‘이번 선거에 함께 못해 죄송하다’, ‘투표일까지 법을 어기지 말라’고 독려했다.특히 서신 말미에 박 대표는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찾아 뵙겠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이는 여당이 가정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박 대표가 ‘붕대 투혼’을 발휘, 선거지원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읽혀질 수 있는 대목이다. 전북, 대전 등 최소 2곳을 노리고 있는 여당을 아연실색케 하는 문구이다.
서부권 벨트를 노려라
여당의 이런 우려감은 현실로 나타날 공산이 높다. 중앙당 핵심 당직자도 박근혜 대표의 컴백 시나리오가 준비되고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중앙당 선대위에서 준비하는 첫 번째 안은 서부권 벨트를 중심으로 박 대표가 붕대 투혼을 보여주는 안이다. 충남을 시작으로 대전, 전북, 광주, 전남을 잇는 빡빡한 일정이다. 접전지역인 대전과 호남 민심을 동요시킴으로써 지방선거 압승과 호남 지지기반 확보 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순회 일정이다.
하지만 ‘역풍’을 우려해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퇴원한지 얼마 안된 박 대표가 4~5곳 유세지원을 한다는 것은 ‘정치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우려감이다. 주치의도 아직 안정을 요할 것을 주문하고 있어 박 대표의 몸 상황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이에 선대위에서는 접전지역을 중심으로 도는 2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전과 제주 혹은 대전과 광주 두 곳만 박 대표가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박빙지역에서 어렵게 뛰고 있는 광역단체장 후보뿐만 아니라 열세 지역인 광주의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후보를 배려한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부연 설명이다. 하지만 이 역시 ‘피습을 선거에 이용한다’는 비판이 일 수 있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호남 민심, ‘5%를 잡아라’
중앙당 선대위의 이런 제안에 난색을 보이는 인사들은 박 대표의 핵심 측근들이다. 이들은 피습 사건 이후 선거 전략은 ‘당과 당 대표가 따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당은 취약 지역을 적극 공략하는 것이 맞지만 박 대표는 좀 더 커다란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얘기다.이에 박 대표 측근들은 3안으로 호남에서 상징성이 강한 광주·전남 지역을 전략지역으로 삼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호남 방문은 한나라당의 절대 열세 지역으로 정치적 쇼로 비쳐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내 상당수 인사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다. 또 박 대표가 그동안 보여준 ‘호남 공략’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덧붙이고 있다.나아가 가해자인 지씨가 박 대표를 습격한 이유를 ‘5공 정권 당시 억울한 옥살이’라고 밝힌 점도 일조하고 있다. 전두환 정권은 광주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이참에 박 대표가 광주에서 붕대 유세와 더불어 ‘반성’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호남 민심이 미세하게나마 한나라당쪽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 이회창 전총재가 두 번의 대선에서 1% 안팎의 지지를 받은 호남에서 5% 지지를 얻는다면 차기 대선에서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박 대표를 위해서라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방선거 압승보다 박 대표의 대권 가도에 더 무게를 실은 주장이다. 이럴 경우 지방선거 막판 분위기가 광주와 호남을 적극 공략하고 있는 정동영 의장과 박 대표간 ‘광주 혈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방선거 후를 노린다
박 대표의 또 다른 측근들은 호남 적극 공략안도 좋지만 지방선거전 붕대투혼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정치적 쇼로 비쳐질 수 있는 만큼 지방선거 이후 전국 순회안을 4안으로 제시하고 있다.박 대표의 ‘무리하지 않는 성격’을 들어 괜한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지방선거 이후 호남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지방선거 승리에 대한 감사 순회를 도는 것도 검토되고 있다.중앙당 선대위와 박 대표 최측근 주장 사이 중심에는 박 대표가 존재한다. 피습사건 이후 박 대표는 어떤 안을 선택하더라도 손해 볼 게 없는 처지다. 핵심은 타이밍이다. 주말에 퇴원을 할 경우 곧바로 선거 현장에 참여하는 데는 다소 무리라는 게 공통된 인식이다. 결국 박 대표의 선택이 가시화되는 시기는 현재로서는 명확하지 않다. 박 대표가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홍준철 mariocap@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